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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이동혁의 풀꽃나무이야기] 삼척 미인폭포 개발... 주변식물 구할 방법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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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있을지 모르는 곳! 그런 곳이 꽃쟁이에게는 더없이 매력적입니다. 사람의 발길과 손길이 닿기 어려운 오지일수록 그런 곳에 가깝습니다. 몇 번을 찾아가도 갈 때마다 새로운 식물을 보여주기에 기대를 저버리는 법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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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의 미인폭포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의 미인폭포도 그런 곳 중 하나입니다. 태백시와 삼척시의 경계 지점에 있는 이 폭포는 30~50m 정도 높이로 떨어지는 단출한 규모지만, 치성 드리는 무속인이 찾아올 정도로 한적한 숲 속의 오지입니다.

붉은 협곡과 옥색 물빛으로 유명해지면서 찾는 이가 점점 많아지는 추세이긴 합니다. 협곡이 붉은색인 것은 공룡이 살던 때부터 쌓인 퇴적암이 공기에 노출돼 산화했기 때문이고, 상감청자처럼 신비로운 물빛을 보이는 건 석회질 성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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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폭포의 옥색 물빛(2019.7.5)



그런데 제가 10년 전에 찍었던 사진을 보면 그때는 비교적 맑고 투명한 물이 흘러내렸기에 약간 좀 이상하다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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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의 미인폭포는 물빛이 맑은 편이었다(2009.6.24)




어쨌든 선녀가 고급 샴푸로 머리 감고 갔을 법한 물빛의 미인폭포가 있는 그곳은 통리협곡으로 불립니다. 약소(?)하지만 생성 과정이나 지질학적 특징이 그랜드캐니언과 비슷해서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으로 불립니다.

수직에 가까운 절벽인 데다 밟으면 바스러져 내리곤 하는 석회암지대라 잘못 미끄러지면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필자도 뭐 좀 볼 게 있나 하고 끙끙거리며 기어 올라갔다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미인폭포로 날개 없이 추락할 뻔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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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폭포 주변에서 많이 자라는 벌깨풀



볕이 잘 드는 석회암 절벽이다 보니 미인폭포에는 석회성을 좋아하는 식물인 벌깨풀이 많습니다. 블루드래곤이라는 영명에 어울리게 벌깨풀은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자세로 절벽 끝에 매달려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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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깨풀과 이름이 비슷한 벌깨덩굴



우리 주변에 흔한 ‘벌깨덩굴’과 이름이 비슷하고, 생김새는 수목원 같은 곳에서 흔히 보는 ‘용머리’와 닮았습니다. 셋 다 꿀풀과의 식물이라 비슷한 점이 있는 게 당연합니다. 그중 벌깨풀은 자생지가 제한적이다 보니 실물 보기가 쉽지는 않은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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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깨풀과 생김새가 비슷한 용머리



백리향도 미인폭포에서 자라는 식물 중 하나입니다. 향기가 백 리를 간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꽃뿐 아니라 몸 전체에서 그런 향기가 납니다. 손으로 만져보면 더욱 진한 향기가 묻어납니다.

그런 식물을 방향성식물(허브식물)이라고 부릅니다. 풀처럼 보이지만 백리향은 엄연한 나무입니다.

겨울에는 실처럼 가느다란 줄기만 남아 있다가 봄이 지나면서 잎이 나고 6월부터 연분홍색 꽃을 자잘하게 모아 피웁니다. 어떤 분은 백리향을 보고 혹시 ‘타임’이 아니냐고 묻습니다. 식물원에서 많이 심는 타임은 백리향의 원예품종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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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폭포 주변에 많이 자라는 백리향



벌깨풀이나 백리향은 미인폭포 아래까지 내려갔다 올라오는 수고를 해야 볼 수 있습니다. 주차장에서 불심(佛心)이라고 써 있는 불전함에 자비롭게 주차비 천 원 보시하고 경사진 길을 따라 적절히 브레이크를 잡으면서 내려가다 보면 ‘여래사(구 혜성사)’라고 하는 절 앞에 이르러 또 다시 불전함이 놓여 있는 철제 다리를 만나게 됩니다.

솟아오르는 불심을 억누르며 그 불전함을 무사히 지나쳐 여래사 대웅전 앞을 지나 더 아래로 내려가면 미인폭포를 바로 눈앞에서 올려다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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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폭포



그 수고로운 발걸음을 한발 한발 옮겨가며 걷다 보면 바위에 붙어 자라는 거미고사리를 많이 보게 됩니다. 거미고사리는 거미가 다리를 뻗듯 잎끝을 길게 내어 닿는 그 끝에 새로운 개체를 복제해 내는 습성을 지녔습니다. 수많은 ‘나’를 바위에 붙여대는 거미고사리를 보면 끊임없는 나의 확장을 보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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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자신을 복제하는 거미고사리



이번에 그곳에서 새롭게 본 식물은 말털이슬이었습니다.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기는 하지만 비교적 드문 편이고 이곳에 있는 줄 몰랐던 식물이기에 반가웠습니다.

식물명에 ‘말’자가 접두사로 들어가면 대개 기본종보다 큰 식물을 가리킵니다. 말털이슬도 그러해서 털이슬보다 크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입니다. 체구가 큰 것보다 꽃받침이 붉은색인 점으로 구별하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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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받침이 붉은색인 말털이슬



오지인 이 미인폭포도 이제 새로운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침체된 지역 경기의 활성화를 위해 삼척시가 정부 지역개발사업 공모에 미인폭포 스카이워크 조성 사업을 신청했기 때문입니다.

오는 2022년까지 350억 원을 들여 미인폭포 일대에 출렁다리, 유리잔도, 모노레일, 전망대 등을 만들어 대규모 관광지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이라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개발 과정에서 훼손이 발생하는 것은 물론이고, 많은 관광객들로 인한 생태계 파괴는 불 보듯 뻔합니다.

멸종위기 급의 식물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 계곡 주변에서 살아가는 동식물에게는 결코 반가운 소식이 아닙니다. 그건 야생화 꽃쟁이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관광 명소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야생화 명소를 빼앗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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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병방치에서의 풍경(2008.10.14)



강원도 정선군 병방치의 사례가 떠오릅니다. 한때 병방치는 동강 사행천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그 주변의 북방계 식물을 탐사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스카이워크와 짚와이어가 설치되면서 출입이 통제되어 맘껏 드나들 수 없게 됐습니다. 이른 아침에는 개장을 하지 않다 보니 안개구름 피어오르는 풍경은 돈 주고도 보기 어렵게 됐습니다. 여러 시설물을 만들고 길을 넓히는 과정에서 발생한 훼손은 둘째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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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워크를 통해서만 볼 수 있게 된 병방치에서의 풍경(2012.10.14)



보호구역과 낙후된 오지가 많은 강원도는 보호와 개발의 논리가 충돌하는 곳이 많습니다. 미인폭포에서 멀지 않은 대덕산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검룡소가 있는 대덕산 쪽이 생태경관보전지역이어서 사전예약제를 시행했는데, 사전예약 없이 두문동재 쪽에서 넘어오는 등산객들을 통제해야 하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두문동재 쪽에서는 금대봉 근처에 출입을 통제하는 게이트를 만들었습니다. 예약자가 탐방지원센터에서 받은 QR코드를 그곳에 설치된 리더기에 태그해야 입장할 수 있게 하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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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문동재 쪽 탐방객을 통제하는 게이트



그렇게 만드느라 출입문을 비롯해 울타리 등 여러 구조물을 설치해야 했습니다. 그 바람에 그 주변에 있는 꼬인용담 자생지가 훼손된 게 아닌가 싶었는데 출입 통제 울타리 때문에 정확히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산이라는 게 아파트 차량 통제하듯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통제하는 문을 빙 돌아서 들어가느라 생긴 듯한 샛길이 나 있는 것도 보였습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건 결국 식물이고 숲이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를 그냥 좀 내버려두면 안 되겠느냐고 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합니다.

이동혁 풀꽃나무칼럼니스트(freebowl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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