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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올해 장마도 마른장마가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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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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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전국에 장맛비가 내렸습니다. 농사를 짓거나 물관리를 맡은 분들한테는 물론 폭염에 시달리던 모든 이들에게 ‘단비’였습니다. 예부터 가뭄 끝에 오는 비는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 하여 ‘희우’(喜雨)라 했답니다. 서울의 경우 장마가 지난달 26일 출사표를 던진 이래 보름 만에 이름값을 한 셈입니다. 올해 장마는 ‘마른장마’라는 형용모순을 벗어날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한겨레> 미래팀에서 기상·기후를 담당하는 이근영입니다. 기상청 도움을 받아 올해 장마를 톺아보겠습니다.

기상청이 발간한 <장마백서>에는 장마를 “동아시아 몬순 시스템의 일부로, 여름철 남쪽의 온난습윤한 열대성 기단과 북쪽의 한랭습윤한 한대성 기단이 만나 형성되는 정체전선의 영향을 받아 장기간 동안 많은 양의 비가 내리는 현상”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일본과 중국에서도 매실이 익을 무렵 비슷한 기상 현상이 일어나 각각 바이우, 메이유(梅雨)라 부릅니다. 일본 바이우는 고온다습한 북태평양고기압과 차고 습윤한 오호츠크해 기단의 만남에서, 중국 메이유는 온대 대륙성 기단과 열대 몬순 기단의 만남에서 생깁니다. 지정학적으로 이들 사이에 끼여 있는 우리나라의 장마는 네 기단에다 극 기단의 영향까지 받아 매우 복잡하게 형성됩니다. 중국과 일본의 장마는 2차 방정식인 반면 우리 장마는 4차, 5차 방정식인 격입니다.

올해 장마가 마른장마인지를 알려면 우선 뜻부터 새겨야겠지요. 하지만 기상청은 마른장마라는 말을 공식 용어로 쓰지 않습니다. 학술용어도 아니어서 정의도 공식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지난해 장마처럼 장마 기간이 평년(32일)의 절반 수준(남부 14일, 중부 16일)으로 짧고, 장마 때 전국 평균 강수량(283.0㎜)이 평년(356.1㎜)보다 적으면 누구라도 ‘마른장마’라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찾게 됩니다.

우리가 마른장마 정의를 내려볼까요? 이를 위해서는 장마 기간, 강수 일수, 강수량 등 세 가지 변수를 고려해야 합니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평년의 절반 이하일 때를 마른장마라고 규정해보죠. 기상청의 ‘평년’은 현시점 이전 기간 30년 평균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2011년부터 내년까지는 1981~2010년이 기준이고요, 2021년부터는 기준이 1991~2020년으로 바뀝니다.

우선 장마 기간을 살펴보죠. 보통 장마는 제주에서 시발해 중부지방까지 북상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올해는 지난달 26일 제주에서 중부지방까지 한날 장맛비가 시작했습니다. 제주는 평년보다 일주일, 남부는 사흘, 중부는 하루 이틀 늦은 것이어서 시작이 많이 늦어진 건 아닙니다. 장마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장마의 시작과 종료는 장마의 정의보다 더 복잡합니다. 기상청은 장마 시작일과 종료일을 장마철이 지난 뒤 장마전선(정체전선)의 형성 유무, 강수량, 한반도 부근 기상 상황 등을 분석해 정합니다. 첫번째 변수는 끝나야 끝난 것이겠지요.

둘째는 강수 일수입니다. 서울의 경우 장마 기간은 46년간 평균 31일, 강수 일수는 18일이었습니다. 전국적으로도 비 오는 날이 열흘에 닷새나 엿새 정도 된다는 얘기입니다. 올해는 보름 동안 장맛비가 두어 차례밖에 오지 않았으니 분명 이례적입니다. 12일 현재 중기예보(10일 예보)에 한두 차례 비소식이 들어 있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장마가 끝나지 않았으니 강수 일수로 마른장마라 하기에는 시기상조입니다.

마지막으로 강수량입니다. 그끄저께부터 내린 장맛비로 지난달 26일부터 11일까지의 전국 평균 강수량은 107.9㎜가 됐습니다. 평년(144.9㎜)의 75% 수준입니다. 이 기간 지역별 강수량은 제주는 186.7㎜, 부산·울산·경남은 220.0㎜, 서울·인천·경기는 12.8㎜로 평년의 각각 93.2%, 132.5%, 9.1%입니다. 장마 기간이 평년과 비슷하다면 이제 장마는 열흘 남짓 남았습니다. 현재의 예보로 보면 올해 장마도 지난해처럼 마른장마가 될 확률이 없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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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난해 장마전선은 티베트고원에서 형성된 고온건조한 대륙기단과 만나 ‘증발’해 장마가 일찍 끝난 데 비해, 올해는 양상이 다릅니다. 올해 장마가 맥을 못 추는 것은 오호츠크해 기단이 북태평양고기압의 북상을 억누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장마전선이 일시적으로 북상했다 다시 제주와 일본 남쪽에 머물러 있었지만 이달 중하순에 조금씩 북쪽으로 올라올 수 있다는 게 기상청 전망입니다. 지난해와 달리 5㎞ 상공의 찬 공기가 중국 대륙까지 뻗어 있어 장마전선이 소멸할 가능성도 적습니다. 지루한 늦은 장마가 닥칠 경우 우리가 정의 내린 ‘마른장마’ 기준에 하나도 해당 안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근영 미래팀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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