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깡이마을 근로자 허재혜 씨, 부산상의 130주년 공로상 수상
부산상의 130주년 공로상 수상자 허재혜 씨 |
(부산=연합뉴스) 김상현 기자 = 부산 영도구 대평동(현 남항동) 일대는 언제나 '깡깡깡' 소리가 난다고 해서 '깡깡이 마을'로 불린다.
이 소리는 우리나라 근대 조선산업 1번지이자 수리조선업 메카인 영도 대평동 일대 수리조선소에 올라온 선박에 붙은 조개류 등을 쇠망치로 제거할 때 나는 소리이다.
이곳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를 일명 '깡깡이 아지매'라고도 부른다.
허재혜(80) 씨는 70∼80년대 부산 주요 산업이던 수리조선업에 38년간 종사하며 수리조선업의 호황과 불황을 함께 겪었다.
'깡깡이 아줌마'는 한 업체에 소속된 정규직이 아니라 일감을 따라 여러 수리조선소를 옮겨가며 일을 해 체계적인 근무기록 등은 남아 있지 않다.
당시만 해도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인해 난청과 이명으로 불면증에 시달리는 등 대부분 만성 질병을 지니고 살아왔다.
강원도 출신인 허 씨는 대평동 동네 반장이던 사돈이 살기 좋다며 영도로 오라고 해서 이사 온 뒤 1975년부터 깡깡이를 시작했다.
작업반장도 하며 2013년 퇴직할 때까지 38년을 한결같이 깡깡이 아지매로 살았다.
한창 일할 때 아파트 4∼5층 높이 배 위에 올라가서 임시 디딤틀을 타고 작업을 했다.
아찔한 높이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다리에 힘을 주다 보니 밤에는 잠을 못 잘 정도로 다리 통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부산상의 130주년 공로상 수상자 허재혜 씨 |
수리조선업이 호황이던 80∼90년대에는 배 한 척이 들어왔다 하면 30여명 정도가 붙어서 일을 했다.
당시 영도 앞바다에는 수리를 위해 조선소에 들어오려는 배들이 줄을 지었다.
200여명에 달했던 깡깡이 아지매들도 깡깡 망치로 철판을 계속해서 두드렸고 일감은 넘쳐났다.
허 씨는 "수리조선소마다 깡깡이 전담반이 있기는 하지만, 한 조선소에 소속돼 일하는 것은 아니었다"며 "다니는 조선소에 배가 들어오지 않거나 다른 조선소에 일손이 필요하면 가서 일하곤 했다"고 말했다.
깡깡이라는 말 때문에 주로 배에 매달려 작업하는 줄 알지만, 작업장소는 한정되지 않았다.
임시 디딤틀에 매달려 깡깡이를 하기도 했고, '갑바'라고 불리는 방수복을 입고 바닷물에 들어가 작업할 때도 있었다.
탱크 등 좁거나 위험한 선박 구조물 곳곳에도 들어가 펄이나 진흙, 윤활유 찌꺼기 등을 퍼내는 일도 했다.
허 씨는 "일을 하다가 깡깡 망치 소리 때문에 귀가 엉망이 됐지만, 내가 벌어야 가족이 먹고살고 아이들 공부도 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그 힘든 일을 38년이나 할 수 있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예전에 일했던 조선소 사장님들을 길에서 만나면 지금도 그때 일을 잘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데, 그 말을 들으면 뿌듯하고 그래도 잘 살아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산상공회의소는 창립 130주년을 맞아 산업 현장 최일선에서 묵묵히 자기 일에 종사했던 허 씨에게 근로 부문 공로상을 시상하기로 했다.
josep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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