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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 (일)

[허연의 책과 지성] 이저벨라 버드 비숍 (1831~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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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조선의 음악에서 아리랑의 위치는 밥상에서 쌀이 지닌 위치와 같다. 아리랑 이외의 모든 것은 부속물에 지나지 않는다. 아리랑의 음조는 한두 음절마다 목소리를 떤다…미묘한 우아함이 있다."

영국의 여행작가 이저벨라 버드 비숍은 1894년 조선을 방문해 아리랑을 듣는다. 그는 아리랑 선율에서 묘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아마도 한(恨) 같은 것 아니었을까 싶다.

영국 왕립지리학회 최초의 여성 회원이었던 비숍은 미국 중국 일본 사하라 티베트 등을 여행했고, 1894년에서 1897년 사이에는 조선을 네 번이나 방문했다. 그는 한반도뿐 아니라 선양, 만주, 블라디보스토크, 시베리아 등까지 돌아다니며 조선인들을 만난다. 비숍이 쓴 책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을 보면 그는 겉핥기로 조선을 둘러본 것이 아니었다.

비숍은 핍박받는 조선 민중들의 삶을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동시에 사치를 일삼으면서 그들을 착취하는 관리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담았다. 동학농민운동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전봉준 김개남 등 동학 지도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등장한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바람 앞에 등불과도 같은 조선 왕실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부분들이다. 비숍은 언더우드 여사의 소개로 왕실 가족을 세 번이나 만난다. 그중 세 번째 만남의 한 장면이 예사롭지 않다. 비숍은 조선 왕실이 그저 무능하지만은 않았음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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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알현했을 때 왕은 실용적인 정보에 대한 지적인 욕망을 보여주었다. 일본이 왕에게 압력을 가하는 문제도 거론되었다…그는 영국에서의 인재 등용 방식에 대해서도 캐묻기 시작했다. 영국 왕실과 내각에도 관심이 많았다. 왕의 질문이 너무나 많고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는 바람에 괴로울 지경이었다…내가 떠날 때 왕과 왕비는 일어나서 악수를 하며 배웅을 해주었다. 그들은 내게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다정하게 이야기했다…내가 9개월 후 조선에 돌아왔을 때 왕비는 이미 무참하게 살해당했고, 왕은 궁전에 갇혀 죄수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생생한 현장을 지켜본 외국인의 시각이기에 그의 묘사는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비숍이 보기에 무능하지 않기는 백성들도 마찬가지였다. 비숍은 관료들의 탐욕을 피해 러시아로 이주한 조선의 백성들이 얼마나 현명하게 살았는지를 소개한다. 낯선 땅에서 러시아 말을 배우며 부지런하게 삶을 일구고, 심지어 러시아 정교로 개종까지 해가면서 러시아 관리들과 관계를 유지하는 모습에 비숍은 감탄을 금치 못한다. 비숍은 그들에게서 성실함과 적응력이라는 조선의 DNA를 읽어낸다.

하지만 조선은 결국 망했다. 결과적으로 우리에게는 우리를 지킬 힘이 없었다. 비숍은 마지막 방문을 마치고 조선을 떠나면서 이렇게 적는다.

"조선을 떠나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 나는 눈이 내리는 날 조선의 가장 아름다운 아침 공기 속에서 서울을 마지막으로 보았다. 배가 증기를 내뿜으면서 서서히 나아갈 때, 나부끼는 조선의 깃발은 내게 묘한 의문을 던져주었다."

국가도 결국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는 생명체다. 분명한 것은 국가는 정의나 도덕, 혹은 민족감정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국가는 오직 자신을 지킬 '배타적 힘'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명멸할 뿐이다. 슬프지만 말이다.

[허연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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