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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우지경의 여행 한 잔] 스코틀랜드에서 로컬비어 즐기기…"타이밍이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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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나는 여행 갈 때 볼펜을 꼭 챙겨 간다. 그냥 볼펜이 아니다. 몇 해 전 아일랜드 더블린 기네스 스토어하우스에서 매의 눈으로 발견한 검정 병따개 겸용 볼펜이다. 낮에는 취재노트에 메모할 때 쓰고, 밤에는 병맥주를 톡 딸 때 요긴하게 쓴다. 세계 어디를 가든 로컬 비어를 맛보는 건 여행지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스코틀랜드도 예외는 아니다. 에든버러에서 왕실 요트, 로열 브리타니아호를 둘러본 후 근처 로즈리프 카페에 들렀을 때다. 때마침 바에는 신문을 읽으며 테넌츠(Tennent's) 생맥주를 홀짝이는 노신사가 앉아 있었다. 그를 따라 스코틀랜드 대표 맥주라 불리는 테넌츠부터 한잔 주문했다. 카트린호수(Loch Katrine)의 깨끗한 물과 스코틀랜드산 몰트로 만든 '테넌츠 1885 라거'는 "한잔 더!"를 부르는 상쾌한 맛이었다. 병맥주로 사서 숙소에서 마시면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빡빡한 일정 때문에 맥주를 사러 갈 짬이 나지 않았다. 스코틀랜드 최대의 도시 글래스고에 도착했을 때, 늦은 저녁을 먹고 일행들과 마트에 들렀다. 맥주 판매대로 신나게 돌진하다, 마트 직원의 한마디에 멈춰 섰다. "규정상 오후 10시 이후에 마트에서 술을 팔지 않아요!" 시계를 보니 10시 7분이었다. 다음날은 아침식사 후 산책에 나섰다. 걷다 보니 마트가 보였다. 차라리 지금 맥주를 미리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자는 생각이 들었다. 맥주를 골라 계산대로 갔더니 계산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아침 10시 전엔 술을 팔지 않아요. 10시 이후에 오세요!"

글래스고를 돌아보며 병따개 겸용 펜으로 메모할 때마다 마트에 두고 온 맥주가 떠올랐다. 가이드가 점심을 먹자며 '드라이 게이트(Dry Gate)'로 일행을 이끌었다. 오래된 공장 건물 같은데, 여기가 레스토랑이라고? 어라, 실눈을 뜨며 바라본 드라이 게이트 입구에 양조장이라고 쓰여 있었다.

알고 보니, 드라이 게이트는 '두려움 없이 양조한다'는 신조로 맥주를 만드는 양조장 겸 펍이었다. 키위 맥주, 아웃 스페이스 애플 에일, 글루텐 프리 밀 맥주 등 이름부터 색달랐다. 그날 밤, 마침내 병따개 겸용 볼펜으로 맥주를 땄다. 유리잔에 콸콸 맥주 따르는 소리가 그 어떤 웃음소리보다 경쾌했다.

[우지경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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