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53360827 0182019062653360827 03 0301001 6.0.8-hotfix 18 매일경제 0

"원전 호황 때 130억에 산 기계…5천만원짜리 고철로 전락"

글자크기
◆ 추락하는 원전산업 / ③ 300여 개 원전업체 밀집한 창원…脫원전 후 초토화 ◆

매일경제

경남 창원시 원전부품 임가공업체인 삼부정밀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일감이 끊겨 제2공장 신축 계획이 물거품이 됐다. 신축 예정 용지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다. [창원 = 최승균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 이후 그동안 어렵다고 얼마나 하소연했나요. 이제 다 끝났습니다. 더 이상 원전에 대해 말해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지난 20일 오전 11시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산단 내 원전부품 가공업체인 삼부정밀 공장 안. 700평 규모의 널찍한 공장 내부 한편에 가동을 멈춘 자동화 밀링기계 'MCT(Machining Center Tooling System)'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작업자들의 부상을 막기 위한 '추락 주의' 문구가 적힌 주황색 띠가 기계 주변에 둘러쳐졌다. 이 기계는 지난해 초 2억5000만원을 주고 새로 들였지만 일감이 없어 6개월째 놀리고 있다.

반대편 라인에도 10대의 금속가공 절삭기들이 줄줄이 서 있으나 이 중 절반이 가동을 멈춘 상태였다. 이날 이 회사 대표인 최형오 사장(67)은 일부 가동 중인 기계 앞에서 가래떡처럼 생긴 기다란 쇠의 표면을 다듬는 작업을 직접 하고 있었다.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매출이 줄면서 인건비를 한 푼이라도 건지기 위해 직접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최 사장은 "일감도 없고, 최저임금 상승으로 인건비도 올랐다. 그냥 노느니 재미 삼아 하는 차원도 있고…"라며 자조 섞인 목소리로 얘기했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삼부정밀은 원전에 들어가는 특수합금을 정밀하게 가공하는 업체다. 2015년 진북일반산단 분양 당시 50억원을 투자해 지난해 초 1600평의 용지에 신축한 공장으로 확장 이전했다. 기존에 있던 공장보다 두 배나 큰 규모다. 당시 국내외 원전산업이 호황이었던 데다 원전산업의 미래를 보고 회사의 제2도약을 위해 최 사장이 '통 큰' 결단을 내렸다. 그러나 신축 용지에 한창 공장을 짓던 2017년 문재인정부가 들어서 탈원전 정책을 펼치면서 '부푼 꿈'은 '후회와 악몽'으로 바뀌었다. 일감이 대폭 줄어든 탓이다.

탈원전 전인 2016년 매출은 15억원이었으나 지난해에는 3억원도 채 되지 않는다. 탈원전 2년 만에 매출이 80%나 줄어든 것이다. 올해는 두 달 뒤인 8월이면 지난해 받아놓은 원전 물량 납품이 완전히 끝난다. 최 사장은 "그나마 원전에 들어가는 후공정 부품들을 가공하다 보니 이때까지 버틴 거지 이미 선공정에 들어갔던 원전업체들은 벌써 물량이 떨어진 곳이 많다"며 "다른 쪽으로 활로를 뚫으려 하는데 쉽지 않다"고 한숨을 지었다.

300여 개의 원전업체가 몰려 있는 창원 등 경남 지역 중소 원전업체들 상당수는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신한울 원전 3·4호기 건설 재개 등 정부의 탈원전 정책 변화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은 분위기다. 주변의 원전업체들이 하나둘씩 부도가 나거나 폐업하면서 설마 했던 공포가 현실로 다가오자 체념과 불안감이 역력했다.

창원의 원전부품 가공업체인 A사는 2017년 말부터 신고리원전 5·6호기에 들어가는 선공정 납품물량이 완전히 끊기면서 2년째 개점휴업 상태다. 이 회사는 그동안 설비에만 130억원을 투자해 초대형 터닝머신 등 금속가공 기계 3대를 들였다. 원전 수주가 활황이던 2014년만 해도 임가공 매출이 30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탈원전 정책이 시작된 2017년에는 18억원으로 줄었고 지난해는 8억원에도 못 미쳤다. 15명이던 직원들도 지난해 권고사직을 통보해 내보내고 최소 인력인 5명만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수주가 거의 없자 이달엔 이들마저 강제휴가를 보냈다. 최근에는 금융권을 비롯해 거래 업체들로부터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미 부도가 났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고 있다.

장정식 대표(가명·67)는 "기계를 만진 지 48년, 경영한 지 38년, 원전 부품 가공만 30년을 했다"며 "저 기계들을 사 갈 사람이 있겠나. 고철값으로 5000만원이 될지 모르겠다. 문재인정부가 원망스럽기만 하다"고 허탈해 했다.

원전 핵심 부품인 셸(shell)을 만드는 국내 1위 업체인 창원의 에스에이에스는 최근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고, 원전부품 가공업체인 범성정밀도 올 들어 전 직원의 사표를 사전에 받아놓기도 했다.

정부의 탈원전 대안으로 내세운 원전 해체 산업 육성에도 업계는 크게 우려했다. 일반적으로 원전이 영구 정지되면 사용 후 핵연료 등을 5~6년간 물속에서 냉각시킨 뒤 해체 작업에 들어갈 수 있다. 국내 첫 폐로가 된 고리 1호기는 2017년 6월 영구 정지됐다. 산술적으로 2022년이나 2023년부터 해체가 가능하다. 탈원전 영향으로 일감이 줄어든 상황에서 이때까지 업체들이 버텨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에 일회성 사업에 그쳐 연속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울산의 한 원전업체는 "탈원전으로 당장 공장이 문을 닫을 판인데 해체 산업이 시작될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문제다"며 "원전 해체 산업의 경제성도 원전 건설에 비해 10분의 1 수준도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원전의 위기는 지역 경제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창원 지역 공장 폐업 수는 탈원전 정책 전인 2016년 28개에서 지난해 42개로 늘었고, 올 들어서도 지난달까지 9개 공장이 폐업했다. 창원산단의 공장가동률은 2016년 90.1%에서 올해 5월 기준으로 78.3%로 크게 낮아졌다.

[창원 = 최승균 기자 / 울산 = 서대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