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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조성렬의 신한반도 비전]판문점 3자 종전선언을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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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꼭 69주년이 되는 날이다. 1953년 7월 휴전 이후 몇 차례 군사충돌이 있었고 2017년 하반기 전쟁재발의 위기가 최고조에 달하기도 했지만, 2018년 이후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과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한반도 정세는 안정화되고 있다. 2월 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서 채택이 무산된 뒤 남북대화와 북·미 대화가 중단됐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평양에서 열린 북·중 정상회담에서 “인내심을 갖고 계속 미국과 대화를 통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주요 20개국(G20) 오사카 정상회의를 전후해 한반도 정세가 다시 움직이고 있다. 국가주석으로는 14년 만에 시진핑이 평양을 방문해 북·중 정상회담을 가졌는가 하면, 이를 전후해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친서를 교환했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보낸 친서를 읽고 “그의 정치적 판단 능력과 남다른 용기에 사의를 표한다”면서 “흥미로운 내용을 심중히 생각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15개월 동안 다섯 차례나 정상회담을 열고 ‘한 참모부’를 이루겠다고 언명한 북·중관계를 고려할 때, 시진핑 주석도 이미 친서 내용을 알고 동의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에 어떤 제안이 담겼을까? 그 내용까지 알 길은 없다. 다만 그동안의 비핵화 협상 경과와 정치적·외교적 상황 등을 근거로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 상상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오는 29일 1박2일 일정으로 방한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헬기로 판문점을 방문할 가능성이 높다. 2017년 11월 그가 서울에 왔을 때도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판문점을 방문하려다 짙은 안개로 헬기 운항이 어려워지는 바람에 주한미군기지 방문으로 대체됐기 때문이다. 한·미 정상이 함께 판문점을 방문할 때 이에 맞춰 김 위원장이 내려와 판문점 북측지역인 통일각에서 남·북·미 정상이 만나는 역사적인 이벤트를 상상해 보자.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이 개최된다면 핵심의제는 한국전쟁을 상징적으로 끝내기 위한 ‘3자 평화선언’(종전선언)이 될 것이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영변 핵시설의 가동중단과 미군유해의 추가송환을 약속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남북경협에 대한 제재를 일부 면제한다고 밝히고, 문 대통령은 금강산·개성 관광의 재개를 천명할 수 있다. 종전선언을 계기로 비건·최선희 간에 비핵화 고위실무회담이 시작되고 남북 간 대화와 교류가 다시 활기를 띠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종전선언인가? 2006년 11월 하노이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비핵화를 위해 “남·북·미 3자 정상이 종전을 공식선언하고 평화조약을 맺자”고 제안했다. 당시 부시는 원론적으로 말했으나, 노무현 정부가 이를 종전-평화조약의 2단계 구상으로 발전시켰다. 북한이 요구하는 안전보장(평화협정, 북·미 수교)은 핵폐기가 완료됐을 때나 제공할 수 있는 것이어서 핵폐기 시작에서 완료까지 과도기 동안에 대북 안전보장에 공백이 생긴다. 이것을 보완하기 위해 한·미 정상이 북한의 과도기 안전을 정치적으로 보장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필요 때문에 2007년 10월4일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종전선언 구상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묻혀있다가 4·27 판문점 남북정상선언에서 부활했다.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한다고 합의한 것이다. 작년 1차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싱가포르에서 3자 종전선언이 재추진됐다. 지난 2월 말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실무회담에서도 종전선언 채택에 잠정 합의한 바 있다. 종전선언 채택은 하노이 회담의 결렬 이후 김정은 위원장이 4·20 시정연설에서 밝힌 적대관계 해소를 위한 ‘근본방도’에 부합하는 것으로 일종의 ‘새로운 셈법’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미국으로서도 가역적인 종전선언을 내놓는 대신 대북 제재 카드를 계속 쥐고 있어 손해볼 게 없다. 종전선언이 채택되고 비핵화 협상이 재개되는 것은 중국에도 한반도정책 3원칙에 부합되고 평화체제 협상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돼 나쁘지 않다.

하노이 회담 때 드러난 북·미 이견이 아직 해소되지 않아 빠른 시일 내에 3차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하노이 회담 이후 침체된 비핵화 협상에 동력을 불어넣을 필요성에는 한·미 양국이 공감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남·북·미 3자 종전선언이 성사된다면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 프로세스의 진전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나의 상상이 현실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조성렬 |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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