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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외교적 대사 앞둔 日 아베, 국내에선 '시련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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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 5당파, 아베 내각 불신임안 내일 제출할 듯

오키나와 위령행사서 '거짓말하지 마라' 야유받아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오는 28~29일 오사카(大阪)로 주요 20개국·지역(G20) 정상들을 초청해 일본 사상 최대 규모의 국제회의를 주재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국내적으로는 시련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아베 총리는 자신이 의장을 맡는 이번 G20 회의를 통해 대외적으로 일본의 국가 위상을 한껏 드높이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일본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G7 정상회의 등 주요 정상급 회의를 주최했지만 세계 GDP(역내총생산)의 90%가량을 차지하는 G20 정상회의를 여는 것은 처음이다.

아베 총리는 이틀 일정의 정상회의를 주재하면서 무역 불균형, 자유로운 데이터 유통의 실현, 격차 문제 대응,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 등 다양한 국제 현안을 일본 주도로 조정해 나간다는 메시지를 띄우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번 회의 참석을 위해 일본을 찾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대부분의 G20 회원국 정상들과 개별 회담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과는 지난 4월 이후 한 달 간격으로 회담을 열 정도로 밀월 관계를 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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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왼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AP=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러나 국내에선 내달 21일 치러질 예정인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야당의 거센 공격에 시련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24일 마이니치신문 등에 따르면 입헌민주당, 국민민주당, 공산당 등 야권 5당파는 정기국회 폐회를 하루 앞둔 25일 아베 내각에 대한 불신임안을 공동으로 제출할 예정이다.

후쿠야마 데쓰로(福山哲郎) 입헌민주당 간사장은 은퇴 부부의 노후 자금으로 연금 외에 30년간 2천만엔이 필요하다고 한 금융보고서를 놓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며 불신임안 제출을 추진하는 배경을 설명했다.

아베 정부는 금융청이 최근 내놓은 '100세 시대에 대비한 금융 조언 보고서'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남편 기준으로 65세에 은퇴한 부부가 95세까지 30년간 더 생존할 경우 노후 자금으로 공적 연금 외에 2천만엔이 더 필요하다고 언급한 이 보고서는 아베 정부가 내세우는 '연금 100세 안심 정책'과 배치돼 논란을 일으켰다.

아베 총리는 내달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파문이 커지자 "국민에게 오해를 주는 자료를 만들었다"며 여러 차례 사과의 뜻을 밝혔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장관은 정부 정책 방향과 다른 내용을 담았다는 이유로 문제의 보고서 채택을 거부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야권은 집권 자민당이 연금만으로 100세 시대에도 안심할 수 있다고 한 것이 거짓으로 드러났다며 아베 정권의 대표적인 말 바꾸기 사례로 몰아가면서 불신임안을 내기로 하는 등 공격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일본에서 야당이 내각 불신임안을 제출하는 것은 정기국회 회기 종료 전에 관례처럼 돼 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 측에서 내각 불신임안 제출은 중의원 해산을 통한 조기 총선의 명분이 된다며 견제에 나서자 야당은 제출 여부를 놓고 고심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9일 열린 당수 토론에서 아베 총리가 중의원 조기 해산은 머리의 한구석에도 없다는 입장을 밝혀 야권은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조기 총선에 대한 우려 없이 불신임안을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야권이 불신임안을 제출해도 자민당과 공명당 등 집권 정파가 3분의 2 이상 의석을 점유하고 있어 곧바로 부결될 전망이다.

그러나 G20 정상회의를 목전에 두고 거세지는 야권의 정치 공세는 아베 총리에게 적잖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연합뉴스

(오키나와 교도=연합뉴스) 아베 총리가 23일 오키나와현 마부니(摩文仁) 평화기념공원에서 열린 오키나와 전투 종료 74주년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날(23일) 열린 오키나와(沖繩) 전투 종료 74주년 '위령의 날' 행사는 아베 총리가 최근 들어 겪은 가장 곤혹스러운 자리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본에 있는 미군 시설의 70% 정도가 집중된 오키나와에서는 주택가로 둘러싸인 후텐마(普天間) 비행장을 헤노코(邊野古) 해안을 매립해 이전하는 문제가 최대 쟁점으로 떠올라 있는 상태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헤노코로의 기지 이전을 반대하면서 궁극적으로 후텐마 비행장을 오키나와 바깥으로 옮기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아베 정부는 미일 군사동맹 강화 차원에서 후텐마 기지의 헤노코 이전은 불가피하다며 이전 작업을 위한 헤노코 해안 매립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전날 위령 행사에서 아베 총리는 "오키나와의 (미군) 기지 부담을 줄이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면서 오키나와 주민들의 입장을 최대한 헤아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2013년부터 7년째 이 행사에 참석한 아베 총리의 이 같은 말에 기념식장 곳곳에서는 "거짓말이다" "말은 필요 없다"는 야유가 터져 나왔다.

도쿄신문은 아베 총리가 인사말을 하려고 일어설 때 "(그냥) 돌아가라"는 목소리도 나왔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또 아베 총리가 오키나와의 기지 부담 경감 문제를 언급할 때 "거짓말하지 마라" "그만둬라"는 등의 고성이 흘러나왔다며 식장 입구에는 "아베 NO"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든 시민의 모습이 보였다고 덧붙엿다.

마이니치신문은 이런 식장 분위기에 대해 "후텐마 비행장의 오키나와 내 이전에 대한 오키나와 주민들의 강한 반발이 분출한 모습이었다"고 진단했다.

연합뉴스

23일 열린 오키나와 전투 종료 74주년 행사에서 인사말을 마친 뒤 고개를 숙인 채 자리로 돌아가는 아베 총리. 다마키 데니 오키나와현(가운데) 지사 등 대부분의 참석자가 아베 총리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 듯한 모습이 두드러진다. [도쿄신문 캡처]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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