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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여의도인싸] 국회 뺨치는 지방의회…"자정기능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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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인싸’는 국회 안(inside)에서 발생한 각종 이슈와 쏟아지는 법안들을 중앙일보 정치팀 2030 기자들의 시각으로 정리합니다. ‘여의도 인싸’와 함께 ‘정치 아싸’에서 탈출하세요.




중앙일보

지난 12일 영등포구의회 정례회 본회의에서 윤리위에 제소된 자유한국당 소속 김재진 의원이 신상발언을 하고 있다. [영등포구의회 홈페이지]




“민주당이 아니라 ‘민갑당’과 ‘민을당’이 따로 있어요.”

최근 ‘동료의원 감싸기’ 논란에 휩싸인 서울 영등포구의회에서 나오는 얘기입니다. ‘친인척 특혜’ 의혹을 받는 자유한국당 소속 김재진 의원에 대한 징계안이 지난 3월 본회의에 제출됐는데, 이를 심의할 윤리특별위원회가 흐지부지될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지만 영등포을 지역 구의원들은 김 의원의 징계를 요구하고, 영등포갑 지역 구의원들은 한국당과 함께 징계를 반대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재선인 김 의원에 대해 “친인척이 운영하는 가구업체가 2016년부터 3년간 구청 사업 43건(계약금 약 3억5000만원)을 수주할 수 있도록 특혜를 베풀었다”는 의혹이 일고 있습니다. 이 업체는 김 의원이 운영하다 구의원 당선 후 처남과 처남댁에게 물려준 것인데요. 김 의원은 최근까지 해당 업체와 같은 건물에 칸막이벽 하나를 설치해 의원 사무소로 써왔고, 김 의원의 아내는 이 업체 이사로 등재돼 이익을 얻었습니다. 지난해 7월부터는 김 의원이 행정위원장을 맡아 ‘이해 충돌’이라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이런 의혹에 대해 김 의원은 지난 12일 의회 본 회의에서 “제가 지위를 이용해 계약한 게 단 한 건이라도 있다면 응당하게 책임지겠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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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10일 오전 중앙선관위 관계자들이 6·13 지방선거 사전투표함 보관장소 CCTV 통합관제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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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의원이 속한 영등포구의회 의원 17명 중 민주당 소속이 9명으로 한국당보다 많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민갑당’ 의원 4명이 윤리위 구성을 반대해왔습니다. 윤준용 영등포구 의장(민주당 영등포갑 소속)과 김 의원이 ‘의형제’라 불릴 만큼 가까운 사이라고 합니다. 윤 의장 역시 구의회 부의장이던 2014년 7월부터 2년간 자신의 부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업무추진비를 1000만원 넘게 쓴 사실이 있습니다. 한 의회 관계자는 “김 의원을 징계하면 윤 의장까지 불신임 논란으로 물러나게 될 거라는 얘기가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12일 윤리위가 출범했지만, 윤리위원 다수가 한국당과 민갑당 소속이어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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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1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명지전문대 체육관에서 6·13 지방선거 개표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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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를 요구하는 한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김 의원을 감싼다면 기초의원의 친인척들이 구청 사업비를 마구잡이로 따내도 의혹을 제기할 수 없고 제재할 방법도 없다. 이렇게까지 자정 기능을 상실해버린 기초의회가 존재해도 마땅한 건지 회의가 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영등포구의회의 실태를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옮겨놓으면 매일같이 신문 1면을 장식할 것”이라며 “일부 의원들이 계파를 형성해 그야말로 ‘갑(甲)질’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사자인 김재진 의원은 통화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저도 공개적으로 사과했는데, 윤리위 구성이 미뤄지면서 논란이 더 커진 것 같다”며 “솔직히 의원들끼리는 더 큰 잘못도 덮어주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런 의혹만으로 윤리특위를 구성하는 전례를 남겨선 안 된다는 기류가 있었다”고 털어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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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예천군의회가 지난2월 1일 본회의를 열어 해외연수 중 물의를 빚은 의원 2명을 제명했다. 본회의 후 군의원들이 사죄의 뜻으로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다. 예천=백경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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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심각합니다. 경북 예천군의회가 지난해 12월 해외연수 중 부적절한 행위로 공분을 일으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습니다. 미국과 캐나다 연수 때 가이드를 때려 물의를 빚은 박종철 의원, 접대부를 불러달라고 했다는 권도식 의원은 결국 제명됐지만, 군민들은 기초의원 전원사퇴를 요구하며 분노하고 있습니다.

최근 대전 중구의회는 동료 의원을 성추행한 의혹으로 징계를 받고도 또다시 성추행을 저지른 박찬근 의원을 제명했습니다. 첫 번째 의혹 때 제명안이 부결됐는데, 결국은 또 같은 사건이 터지자 그제야 쫓아낸 겁니다.

지방의회의 윤리위원회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지방자치법에는 윤리위원회 관련 규정이 있지만, 이를 상설화해서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감시는 소홀한데, 의원들 스스로 징계수위를 결정하는 까닭에 솜방망이 처벌에 그칠 때가 많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14~2018년 지방의원 징계 건은 총 77건으로 제명이 8명, 출석정지가 31명, 경고가 20명, 사과가 18명입니다.

흔히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말합니다. 전국에는 226개 기초의회와 17개 광역의회가 있고 지난해 우리는 4년 임기의 광역의원 824명, 기초의원 2927명을 뽑았습니다. 민주당 소속의 한 국회의원은 “사실 우리 당 소속이어도 국민 보기에 부끄러운 수준인 지방의원들이 많다. 지방분권을 외치지만 한편으론 참 씁쓸하다”고 말했습니다. 지방의회를 없앨 게 아니라면 어떻게든 제 기능을 하도록 관심을 갖는 게 우리의 임무일 듯합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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