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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5 (수)

[특파원리포트]“주1회 일치단결 도시락” 아베 떠받치는 자민당 파벌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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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욱의 나우 인 재팬]

주류 3파벌이 아베 체제 확고하게 지탱 구조

사고뭉치 아소, 고령의 니카이 못내치는 아베

다른 파벌 수장도 요직에 기용,지배체제 공고

파벌은 목요일 12시에 모여 같은 도시락 식사

다른 파벌 기웃거리지 못하게 한날 한시 개최

지난 20일 목요일 낮 12시. 일본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나가타초(永田町)의 자민당 당사 8층의 회의실 '리버티 클럽'에 100명 가까운 소속 의원들이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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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1일 열린 자민당 호소다파의 정치자금 모금 파티에 아베 신조 총리가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호소다파는 아베 총리의 출신 파벌이다. [사진=지지통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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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총리의 출신 파벌인 자민당내 최대 '호소다파(세이와정책연구회)'의 목요 정례 모임이다.

이날 모임은 다음달 참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파벌 소속 의원 24명의 출정식을 겸한 자리였다.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의원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가쓰카레(돈가스 카레라이스)'를 먹었다. '이기다'는 뜻의 동사 '가쓰(勝つ)'와 발음이 같기 때문에 일본에서 가쓰카레는 결전을 앞두고 먹는 '전투 음식'으로 통한다.

호소다파의 회장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전 관방장관이 "전원이 당선되도록 분발하자"고 목청을 높이자 참석자 전원이 "간바로~(분발하자)"를 세 번 외쳤다.

매주 목요일 낮 12시 자민당 당사내 회의실과 주변 파벌 사무실엔 일사분란한 헤쳐모여가 이뤄진다. 같은 시간 같은 사무실에서 같은 음식을 먹으며 '팀 스피릿'을 다지는 파벌의 목요 모임은 일본 정치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모든 파벌이 일제히 같은 시간에 모임을 여는 건 복수의 파벌에 얼굴을 내미는 '박쥐'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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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5일 자민당 기시다파의 정치자금 모금 파티에서 참석자들이 건배를 하고 있다. 앞줄 오른쪽이 기시다파 회장인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 앞줄 가운데가 고가 마코토 명예회장, 그 왼쪽은 축하차 참석한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 [사진=지지통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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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도 비서도, 심지어 파벌 담당 기자까지 같은 도시락을 먹는 문화는 과거 100명이 넘는 최대 계파였던 전통의 '다케시타(竹下)파(헤이세이연구회)'가 주도했다. 이른바 '일치단결 도시락'으로, 요즘에도 스키야키 도시락, 햄버거 도시락, 칠리새우 도시락 등을 주마다 바꿔가며 함께 먹는다.

물론 '온건파 보수의 본류'로 불리는 전통의 '고치카이(宏池會)'(기시다파)처럼 몇 종류의 도시락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파벌도 있긴 하다. "도시락은 달라도 마음은 하나"가 이들의 구호라고 한다.

자민당 파벌정치는 1955년 당 결성때부터 시작됐다. 회장-회장대행-부회장-사무총장-사무국장으로 이어지는 자체 조직과 내부 규칙이 있다. 의원들은 보통 매달 5만엔(약 50만원)의 회비를 내며, 선수에 따른 정치자금 모금 할당액을 채워야 한다.

보스가 ‘인사(자리)와 오카네(돈)’를 움켜쥐고 절대적 권력을 행사했던 파벌의 파괴력은 소선거구제 도입과 당 중앙집권화 등으로 예전만 못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당속의 당'으로 불리며 일본 정치를 움직이고 있다. 자민당 의원 406명 중 무파벌 의원은 75명. 하지만 이들 역시 이런 저런 모임에 참여하고 있어 진짜 무파벌은 손에 꼽힐 정도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최근 기사에서 아베 총리가 승승장구하는 원동력 중 하나로 자민당내 파벌 정치 구조를 꼽았다. 당 소속 의원의 절반이 소속된 주류 3파벌이 아베 체제를 떠받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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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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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처럼 트럼프를 상대할 수 있는 정상은 전세계에 없다. 아베 총리의 4연임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

“‘총총 분리(총재와 총리 분리)’라는 방법도 있지 않겠나.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

지난 2월 27일 도쿄의 고급 일본요리점에서 만난 두 사람 사이엔 이런 대화가 오갔다고 요미우리 신문이 보도했다.

노도구로(눈볼대)조림을 먹던 아소 부총리가 아베 총리 4연임을 화두로 꺼내자 조용히 듣고 있던 니카이 간사장이 대뜸 총리와 총재 분리론을 역설했다는 것이다.

아베의 자민당 총재 임기가 끝나는 2121년 9월 이후에도 총리직은 계속 수행하고 총재직만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아이디어다. 3연임까지만 허용하는 현재의 당 규정을 바꾸지 않더라도 총리직을 계속할 수 있게 만들자는 것이다. 일본 정치사에 전례가 없는 파격적 구상까지 언급하며 천하 대세를 논하는 두 사람은 당내 제2위 파벌인 아소파(56명)와 제5위 파벌 니카이파(43명)를 이끄는 수장들이다.

아베 총리의 출신 파벌인 호소다파(97명)까지 합치면 주류 3파에 속한 의원은 196명으로 자민당 전체 의원 406명의 절반에 가깝다.

망언제조기이자 사고뭉치 아소를 아베 총리가 내치지 못하는 것도, 당 조직과 자금을 휘두르는 간사장 자리에 80세 고령의 니카이를 남겨 두는 것도 파벌 수장이란 지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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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4일 자민당 아소파의 정치자금 모금 파티에 참석한 니카이파 수장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뒷줄 왼쪽에서 웃고 있는 이가 아소파 수장 아소 다로 부총리겸 재무상. [사진=지지통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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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를 지지하는 건 주류 3파벌뿐만이 아니다.

아베는 비주류 파벌 다케시타파의 간판 스타인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경제재생 담당상과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자민당 총무회장을 요직에 기용하며 확실한 자기 편으로 만들었다.

'고치카이(기시다파)'의 수장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자민당 정조회장(전 외상)도 아베 내각에서 요직을 유지하고 있다.

주류 세 파벌을 확실히 장악하고, 비주류에 자리를 보장하는 아베식 관리법으로, 누구든 다음 총리를 꿈꾼다면 아베에게 맞서기 어려운 구조다.

“아베 총리 임기가 끝나는 2021년 9월이면, 재선에 성공한다는 가정하에 미국은 트럼프, 중국은 그대로 시진핑, 러시아도 그대로 푸틴이다. 왜 일본만 바뀌느냐는 이야기가 반드시 나올 것이다."

최근 만난 일본인 지인에게 '아베 다음 총리는 누구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었다. 후계자들이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면 아베의 시대가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총총분리'든 무엇이든 아베의 4연임이 현실화되면 그의 임기는 2024년 9월까지다. 1년만에 끝난 단명한 1차 아베내각(2006년 9월~2007년 9월)을 빼더라도 2012년 12월 정권 탈환이후에만 12년을 연속 집권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도쿄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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