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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차명 부동산, 실소유주의 것” 안 바뀐 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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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합의체 9 대 4로 ‘소유권 이전 승소’ 원심 판결 확정

“불법원인급여 엄격 해석해야” 다수의견, 판례 재확인

4명은 “명의신탁, 반사회적 법률행위 인식 형성” 반대

타인 이름으로 소유권 등기를 한 ‘차명 부동산’도 실소유자가 나중에 되찾을 수 있다고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판결했다. 앞서 일각에선 부동산은 소유자 본인의 이름으로 등기해야 하고, 차명 부동산은 거래 투명성을 저해하는 반사회적 행위이기 때문에 실소유자에게 돌려줘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기존 판례를 재확인했다. 차명 부동산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입법 보완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ㄱ씨가 ㄴ씨를 상대로 낸 소유권 이전등기 청구소송에서 ㄱ씨 승소인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1998년 한 농지의 소유권을 취득한 ㄱ씨 남편은 2000년 관할 군수로부터 농지를 소유할 자격이 없으므로 부동산을 처분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그러자 ㄱ씨 남편은 농지를 처분하지 않고 ㄴ씨 남편과 명의신탁 약정을 했다. 명의신탁이란 타인 명의로 부동산 소유권 등의 등기를 하는 것을 말한다. ㄱ씨 남편은 ㄴ씨 남편에게 농지 소유권 등기를 이전해줬고, ㄴ씨 남편은 해당 농지에서 경작하면서 임차료로 매년 쌀 두 가마를 ㄱ씨 남편에게 보내줬다.

ㄱ씨 남편이 사망하자 ㄱ씨가 농지에 대한 권리를 취득했다. ㄴ씨 남편이 사망하자 농지 명의는 ㄴ씨로 넘어갔다. ㄱ씨는 ㄴ씨를 상대로 자신에게 소유권 등기를 이전하라는 소송을 냈다.

2002년부터 이어져온 기존 대법원 판례는 해당 부동산의 소유권은 명의신탁자(ㄱ씨)에게 귀속되고, 명의신탁자가 명의수탁자(ㄴ씨)에게 소유권 등기 이전도 요구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1·2심은 모두 대법원 판례에 근거해 ㄱ씨 승소 판결을 내렸다.

법조계에서는 이 판례에 대한 논쟁이 불거졌다. 일각에서 부동산실명법의 궁극적 목적은 등기제도를 악용한 투기·탈세·탈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고 이를 위반한 명의신탁은 반사회질서 법률행위이므로, 명의신탁자가 소유권 등기 이전을 요구할 수 없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는 명의신탁이 민법상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는지가 문제가 됐다. 민법 746조는 불법원인급여와 관련해 불법적인 방법으로 얻은 이익은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대법원은 ㄱ·ㄴ씨 사건을 대법관 13명이 함께 심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판례를 바꿀지 논의했다. 결론은 ‘기존 입장 유지’였다.

다수의견(대법관 9명)은 부동산실명법의 규정과 입법 취지, 일반 국민의 관념, 재산권의 보호 등을 따져봤을 때 차명 부동산이더라도 실소유자에게 귀속시키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부동산실명법은 부동산 소유권을 실권리자에게 귀속시키는 것을 전제로 명의신탁 약정과 그에 따른 물권 변동을 규율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희대·박상옥·김선수·김상환 대법관 등 4명은 반대의견을 내며 “부동산 명의신탁을 근절하기 위한 사법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부동산 명의신탁은 애초에 판례에 의해 유효성이 인정되기 시작한 것으로,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부끄러운 법적 유산”이라며 “부동산실명법이 제정돼 시행되었는데도 대법원이 계속해서 명의신탁자의 부동산에 관한 반환청구 등의 권리행사를 대부분 받아들였고, 그 결과 여전히 명의신탁 약정이 횡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수의견은 부동산 명의신탁을 규제할 필요성과 현재의 부동산실명법이 가지는 한계를 지적하면서 이를 해결할 입법적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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