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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소담이 전하는 ‘연기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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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사제들’ 이후 슬럼프...'기생충'은 참 고마운 작품

“제 목소리로 제 말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악령이 깃든 소녀를 소름 끼칠 정도의 실감으로 보여준 영화‘ 검은 사제들’로 단숨에 이목을 사로잡았던 박소담은 이후 슬럼프를 겪게 된다. 대중의 높은 관심이 감사하면서도 불안함이 몰려왔다. 쉬는 타임 없이 자신을 몰아 붙였던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휴학 없이 졸업한 뒤, 한 달에 오디션을 17개 씩 보면서 자신을 채찍질했다.

박소담은 “내가 잘 했는지 잘 모르겠는데 많은 분들이 좋게 봐주시니 불안했다”고 털어놨다.

충무로 루키란 수식어로 높아진 기대감 때문일까. 안 좋은 평도 쏟아졌다. 스스로 지쳐갔다. 그 사이 몸과 마음의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1년여간의 공백을 끝내고 만난 작품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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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 나온 표현 그대로, 박소담에게 ‘기생충’은 참으로 시의적절하게 찾아온 작품이었다. 그는 “기생충‘ 현장이 너무도 좋았다”며 눈빛을 빛냈다. 진짜 연기를 사랑하고 함께 작업한 스태프와 배우들에 대한 애정이 있을 때 나올 수 있는 표정이었다.

“만약 지쳐있던 시기에 봉준호 감독님의 연락을 받았다면 ‘나를 왜?’하면서 혼자 의심하고 즐기지 못했을 것 같다. 이제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일상적인 언어로 연기를 하고 싶단 갈증이 있었는데 이를 단번에 해소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너무 강한 연기만 하고 제 말을 하고 일상적인 모습을 못 보여준 것 같았는데 ‘기생충’으로 제 말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전원백수 가족 기택네의 경우 가장 기택에는 송강호, 장남 기우에는 최우식 배우가 영화 착상 단계부터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봉준호 감독이 전작 ‘옥자’를 촬영하며, 최우식 배우를 눈여겨본 덕분에 이들이 부자(父子)로 나오면 재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이후 연기는 물론, 최우식과 눈매가 닮아 남매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자아내는 박소담 배우가 막내 딸 기정으로 캐스팅됐고, 이어 영화 ‘우리들’에서 현실감 물씬 풍기는 엄마를 연기해, 봉준호 감독의 눈에 포착된 장혜진 배우가 송강호 배우의 아내 충숙으로 낙점되며 하나의 가족이 완성됐다.

박소담과 봉준호 감독의 인연은 ‘옥자’ 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소담의 전작 이미지를 보고 10대 산골소녀 미자 이미지를 엿본 감독이 미팅을 요청한 것. 하지만 ‘옥자’ 캐스팅은 불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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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론 감독님이 (생각하셨던 것보다)제가 나이가 많아서 안 되겠다 했단다. 그때 미자는 안 되겠지만 ‘차나 한잔 하시고 가라’ 해서 편안한 마음으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돌아왔다. 그 뒤 ‘기생충’으로 연락을 주셨다.”

‘기생충’ 캐스팅이 곧 바로 진행된 건 아니다. 3년 전 여름, 연락을 준 봉 감독은 이후에도 가끔 두어 달에 연락했다. 그것도 영화 이야기 보다는, 한 번씩 밥 먹자고 연락을 했단다. 그렇게 정말 작품에 들어가는 것인지 알 수도 없는 기약 없는 기다림이 계속됐다. 그렇게 반신반의(?)하던 박소담에 봉준호 감독은 “시나리오 쓰느라 바빴다. 하자고 하면 하는 거지 뭘 그리 걱정을 하냐”며 오히려 놀랐단다.

박소담은 ‘기생충’의 시나리오를 받고 정신이 멍했다고 표현했다. 동시에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은 먹먹한 느낌을 받았다.

“‘기생충’은 씁쓸한··· 정말 이 시대의 삶인 것 같다. 사는 분위기와 공간은 다른, 엄마, 아빠, 아들, 딸로 구성은 똑같은 두 가족이 만나서 일어나는 얘기인데. 딱 그 두 가족만으로 이 사회를 보여줄 수 있는 영화이지 않나.”

박소담이 열연한 ‘기정’은 전원백수 가족의 딸이자 기우 동생이다. 미대에 떨어지고 학원비도 없어 오빠와 마찬가지로 백수로 지내고 있다. 기우의 면접 서류를 빼어난 포토샵 실력으로 보정한다. 가족 중 가장 현실적이고 야무지며 어떤 경우에도 당당하다. 똥물 튀기는 변기에 앉아 젖은 담배를 태우면서도 삶의 에너지를 잃지 않는 인물이다.

야무진 기정을 제대로 소화해낸 박소담은 “재능이 많은데 늘 운이 비껴가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친구“로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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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미술 공부를 해 왔는데, 28살이 될 때까지 대학에 떨어지고 취업에도 실패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도 가족들에게도 힘든 티를 내지 않는 친구다. 수많은 떨어짐과 실패를 반복했고 누구보다 외로운 아이인 것 같아 그래서 더 짠했다. ”

강렬한 역할들 뒤에 가려져 있던 20대의 활력과 자기다운 매력을 처음으로 활짝 펼쳐 보인 박소담은 기정의 야무진 모습 안 여린 면까지 그려내며 관객의 마음을 훔친다. 박소담은 기정이의 모습에서, 자신이 수십차례 오디션을 보고 떨어지던 모습이 떠올랐다고 했다.

”나도 졸업하고 23살 나이 때 한 달에 오디션을 17개 씩 볼 때가 있었다. 기정이를 연기하면서 그렇게 매번 오디션에서 떨어졌던 때가 많이 생각났다. 기정이도 많은 면접을 봤을 것이고, 때론 주눅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집에서는 절대 티내지 않는다. 그렇게 기정이가 저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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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와서 변기 물이 흘러넘칠 때도 변기 위에 앉아 있을 수 밖에 없는 청춘. 박소담은 “처음엔 이해가 안 돼 “이 난리통에 저러고 있어도 되는 거냐”며 물을 정도였지만, 막상 그 공간에 들어가는 순간 모든 게 온몸으로 이해가 됐다고 털어놨다.

“ 그 장면이 저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 집 안에서 기정이 속 앓이를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은 그곳뿐인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정말 인생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고, 살면서 이렇게 절망적인 순간이 또 있을까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 기정이가 그동안 속상한 일이 있었을 때 여기 와서 위로를 받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감정이 더욱 복잡했던 이유는 엄마 충숙(장혜진)이 생각나서이지 않을까. 박사장네 집에 있는 엄마는 현재 그 상황을 모른다. 엄마 생각이 더 많이 나서 그 장면에서 가장 마음이 짠했다.”

박소담은 20대 초반에 휴학 없이 대학교를 다닌 자신을 두고 “악착 같이 살아온 사람처럼 느껴졌다”고 고백했다. “연기를 잘 해내야 된다는 생각”으로 꽉 찬 채, 마음의 여유 없이 보낸 20대 초반. 그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게 왜 중요한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공백기 동안 먼저 스스로를 왜 채워야 하는지 배운 것 같다, 제 정신과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않으면 많은 것들을 해내지 못한다고 하는지 깨달았다. ”

박소담은 이제 연기를 조금씩 즐길 수 있게 됐다. “잘 해내야 한다”는 욕심과 부담을 앞세우기 보단, 함께하는 사람들과 서로 도우면서 함께 작업하는 의미와 재미를 알게 된다.

“이번 작업하면서 ‘넌 왜 이렇게 신이 나 있니?’란 말을 들었다. 제가 먼저 힘이 나고 에너지가 생기지 연기가 즐거워졌다.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환경에도 관심을 갖게되고, 시야를 넓히게 됐다. 함께하는 모든 이들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현장 역시 즐거워졌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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