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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겪었어요" 커밍아웃하는 책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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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시선에서 우울증을 치료하는 과정을 기록한 책들이 늘고 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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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30대 여성이 있다. 교우관계는 원만하고 안정된 직장에 다니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커다란 고민이 있다. "나는 별로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대체 왜 우울한 걸까?"

혼자 힘겨워하던 그는 정신과에 상담을 받으러 가서 자신이 기분장애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치료를 받으며 경험한 일들을 그림으로 그려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반응은 뜨거웠고, 지난달 말『판타스틱 우울백서』(서귤 지음, 이후진프레스)라는 책까지 내게 됐다. 서귤 작가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이 공감해주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마음의 병은 경중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가 모두 겪고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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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우울백서』에 나오는 장면. [사진 이후진프레스]


지난 4월 출간된 『오늘 아내에게 우울증이라고 말했다』(시공사) 역시 비슷한 내용이다. 평범한 중년 남자였던 김정원 MBC 기자가 어느 날 갑자기 우울증을 진단받고, 이를 극복하기까지 과정을 담았다.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는 걸 부끄러워하고 약의 부작용을 두려워하던 그는 '(우울증에) 걸리다' 대신 '(우울증이) 왔다'라는 동사로 우울증을 받아들였다.

최근 자신의 우울증 등 자신의 정신 치료 과정을 고백하는 책들이 연이어 나오며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우울증이 '평범한 사람도 걸릴 수 있는 병'임을 이야기하며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단순한 치료 과정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우울증과 함께 살아가는 일상을 얘기하며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울증 등 정신 치료를 거부하거나 숨기려고 안간힘을 썼던 과거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과거 정신건강 관련 도서의 저자가 대부분 전문가였던 것과 달리 이번엔 일반인 환자들이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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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울증 다룬 책들은 단순한 치료 과정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우울증과 함께 살아가는 일상을 얘기하며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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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정신 질환 고백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인 작품으로는 지난해 말 출간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싶어』(백세희 지음, 흔)를 꼽을 수 있다. 책은 20~30대 독자에게 큰 호응을 얻어 지난해 장기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인기에 힘입어 최근 2편도 나왔다. 10년 넘게 기분부전장애(가벼운 우울 증상이 지속되는 상태)와 불안장애를 겪어온 백세희 작가가 정신과에 가서 상담받은 기록을 담은 책이다.

이후로는 『자려고 누웠을 때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도 없는 밤』(정은이 지음, 봄름) 『아무것도 할 수 있는』(김현경 지음, 위즈덤하우스) 『나는 달리기로 마음의 병을 고쳤다』(스콧 더글러스 지음, 김문주 옮김, 수류책방) 『일단 태어났으니 산다』(해다홍 지음, 놀) 등 마음의 병을 마주하는 과정에 관해 쓴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인터파크 관계자는 "이런 책들이 많이 나오고 많이 읽힌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이 다양한 종류의 우울증을 겪으며 힘들어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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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에 관한 신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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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정신병에 대해 달라진 사회 인식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권준수 신경정신의학과 이사장은 "과거와 비교하면 정신병에 대한 낙인이 많이 사라졌다"며 "뇌의 기능에 따른 문제라 치료를 통해 호전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승기 정신과 전문의 역시 "과거보다 정신과에 대한 문턱이 예전보다 낮아지면서 생긴 현상"이라고 말했다.

사회의 신뢰 축이 소비자로 이동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요즘에는 상품을 살 때 생산자 정보보다 구매한 사람들의 후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처럼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신뢰하는 경향이 많다"며 "정신질환 역시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참조하는 것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세대가 바뀌면서 과감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결과라는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분석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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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우울증 등 정신질환 관련 고백 책이 나오는 것을 긍정적이라고 평가한다. [사진 중앙포토]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를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권준수 신경정신의학과 이사장은 "특히 우울증 같은 경우에는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들의 영향으로 초기에 오픈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며 "많은 정보가 공유되면 마음의 병을 초기에 치료받을 확률을 높인다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의학과 교수 역시 "정신 질환에 대한 심리적 벽을 낮춘다는 면에서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밝혔다.

다만 비전문가의 정보에 대해서는 오류 가능성을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승기 정신과 전문의는 "사람들이 우울함이 지속되면 무조건 우울증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단순한 우울감과 우울증을 혼동하는 사람도 많다"며 "정확하지 않은 정보는 정확한 치료와 진단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책을 참고는 하되 전문가의 진단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정신질환에 대해 인식 변화만큼 사회제도의 변화는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도 많았다. 서귤 작가는 "주변에는 나의 정신과 치료 기록이 노출되어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치료를 받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며 "이러한 면에서 아직은 환자들이 마음 편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사회적인 신뢰 구조가 미비한 것 같다"고 했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사람들이 정신 치료를 받을 때 보험 가입 시 정신 질환 이력으로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며 "사회 편견을 조장하는 보험 가입 조건 등도 개선되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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