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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국산 캔맥주 가격 싸져도 수입산 마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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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세 개편에 맥주 업계 희비 교차 / 국산 가격 하락 기대에도 판도 뒤집긴 어려워 / "국산, 비싸서 인기 없던 것 아냐…입맛 잡아야" / 수입 캔맥주 '4캔 1만원' 프로모션 지속될 듯

세계일보

“그래도 수입 캔맥주 먹을 겁니다.”

평소 수입맥주를 즐기는 직장인 박모(32)씨는 최근 주류세 개편으로 국산 캔맥주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그는 “굳이 맛없는 국산맥주를 먹을 이유가 있냐”면서 “지금도 국산맥주 가격이 수입맥주보다 싼데도 안 먹는다. 가격이 여기서 더 내려도 마찬가지일 것”라고 말했다.

내년부터 맥주의 과세 방식이 바뀜에 따라 맥주 업계에 희비가 교차하고 있다. 주세 개편에 따라 수입 캔맥주의 세금 부담이 커지는 반면 국산 캔맥주의 주세는 내려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 그런데도 업계에선 수입맥주가 장악하고 있는 캔맥주 시장 판도가 유지되리란 관측이 우세하다. 이런 전망을 하는 쪽은 새로운 제품 개발에 소홀한 국산 맥주가 높아진 소비자의 기호를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이란 이유를 댄다.

◆주세 개편에 국산 캔맥주 세금 줄고, 수입 캔맥주 세금 늘고

정부는 최근 더불어민주당과 당정 협의를 열고 주류과세체계 개편방안을 논의·확정했다.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개편안에 따르면 우선 맥주와 막걸리(탁주)부터 종량세로 전환되며 소주와 증류주, 약주와 청주, 과실주 등 다른 주종은 향후 전환이 검토된다.

이에 따라 같은 캔맥주지만 수입이냐 국산이냐에 따라 세금 부담 양상은 달라질 전망이다. 정부가 맥주회사 3곳의 지난해 자료를 기반으로 모의실험한 결과 국산 캔맥주에 붙는 세금은 L당 평균 415원(교육세와 부가가치세도 포함) 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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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국산맥주 역차별’ 논란을 불러왔던 수입맥주는 세금 부담이 늘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 따르면 수입맥주별로 다르지만 평균 L당 200원 정도 오를 거란 관측이다. 지난해 기준 수입맥주의 세금 부담은 L당 평균 709원이었다. 내년부터 종량제로 전환돼 830.3원의 세금을 내게 되면 주세 부담만 약 121원, 교육세와 부가가치세를 포함 170원 상당 인상된다.

50년 만의 주세 전환 논의가 수입맥주와 국산맥주의 형평성 문제에서 불거진 점을 고려한 결과다. 국산맥주 업계는 “국산맥주가 수입맥주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있어 가격경쟁력이 없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한 바 있다.

현재 맥주의 과세표준은 112.96%이다. 수입맥주는 수입 신고가격에 따라 세금이 매겨지는 반면 국산맥주는 출고가격 기준이라 국내 이윤이나 판매관리비 등이 포함돼 더 많은 세금을 낸다는 게 국산맥주 업계의 불만이었다.

◆업계 “국산 캔맥주, 비싸서 인기 없던 것 아냐... 소비자 입맛 잡아야”

최근 수입맥주는 국내 맥주시장에서 빠르게 그 입지를 넓히고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수입맥주의 국내 맥주시장 점유율은 2013년 4.9%에서 2017년 16.7%(추정)으로 5년 동안 3배 이상 늘었다. 업계에서는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5년 내 수입 맥주 시장 점유율이 40%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캔맥주의 가격 변동과 별개로 수입맥주의 인기는 지속할 것으로 본다. 편의점 프랜차이즈 A사 관계자는 “2018년 기준 편의점 소비자 연령대는 20~40대가 전체의 73.7%로 젊은 소비 감각을 반영한다”며 “실제 편의점은 식음료 업체에서 시장반응을 살피기 위한 테스트베드 역할을 한다. 대형마트에 제품을 내놓기 전 편의점에 먼저 공급해 판매 추이를 살피는 게 업계 관행”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수입맥주와 국산맥주의 편의점 판매 비율은 6대 4”라며 “500mL 한캔에 2500원이 넘는 수입맥주는 따지고 보면 용량 대비 무척 비싸다. 그런데도 수입맥주의 판매량이 더 많다는 건 그만큼 국내 소비자의 취향이 고급화됐다는 증거다. 국내맥주는 가격 핑계를 댈 게 아니라 품질향상에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금 부담 늘어도 수입 캔맥주 ‘4캔 만원’ 프로모션 지속될 것”

종가세 전환에도 수입 캔맥주 ‘4캔 만원’ 프로모션이 지속되리란 유통업계의 관측도 수입 캔맥주의 시장 우위 지속에 힘을 싣는다.

편의점 관계자는 “‘4캔 만원’이라는 소비자 인식이 큰 상태라 주세 개편 후에도 이 가격이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며 “산술적으로 세금 부담이 500mL 1캔당 100원, 4캔에 400원이 오르는 거다. 주세가 개편됐다고 이걸 1만400원에 팔기는 쉽지 않다. 아마 유통마진이나 수입단가 등 어디선가 주세 인상액을 흡수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또 “하절기가 되면 편의점에서 수입맥주가 많이 팔리는데 소비자가 (맥주뿐 아니라) 즉석식품 같은 안주나 하다못해 과자 하나라도 더 산다”면서 “업체 입장에서 수입맥주 효과는 쉽게 포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며 수입맥주가 다른 제품 구매를 부르는 미끼 역할을 하기 때문에 포기하기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내놨다.

정부 관계자도 “오비맥주, 하이트진로, 롯데주류 등 수입맥주를 수입하는 국내 회사의 경우 국산맥주 세금 부담 감소와 수입 맥주 세금 부담 증가가 서로 상쇄되기 때문에 가격을 올리지 않겠다는 입장”이라며 비슷한 의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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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밤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야외광장에서 열린 ‘2019 부산수제맥주 페스티벌’을 찾은 시민들이 다양한 수제 맥주와 푸드트럭 음식을 즐기고 있다.


◆수제맥주 관계자 “국산맥주가 수입맥주에 대적하려면 품질 향상부터 해야”

국산맥주의 돌파구를 국내 수제맥주 시장의 성장에서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카스’, ‘하이트’ 등으로 대표되는 국산맥주가 청량감을 우선하는 ‘라거’류에 집중한 반면 수제맥주는 ‘에일’류 등 소비자의 입맛을 맞추는 다양한 실험적인 제품을 선보이며 급성장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수제맥주 시장 규모는 633억원에 달하며 최근 3년간 41% 성장했다.

부산에서 수제맥주 양조장을 운영 중인 와일드웨이브의 최승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벌써 국내에 100개가 넘는 수제맥주 양조장이 생겨나고 있고, 지역마다 특색을 녹여낸 개성있는 맥주들이 많이 출시되고 있다. 많은 분들이 꼽으시는 수제맥주의 가장 큰 강점은 다양성”이라며 “특히 요즘은 과음하기보다 한두 잔을 마셔도 맛있는 술을 마시려 하는 소비자가 많다 보니 맥주 한 잔에 녹아든 그 맥주만의 스토리와 특색이 소비자들을 움직이게 하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최 디렉터는 또 “국산맥주가 수입맥주에 대적하려면 무엇보다 다양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품질 향상이 가장 필요하다”며 “우리도 이번 주세 개편 기회를 잘 살려 제품 개발 및 연구의 발판으로 삼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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