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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박상기 장관의 ‘예고된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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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과거사위 진상조사활동 ‘나 홀로 브리핑’ 고육책…

“검찰 비난할 수도 없고 과거사위 옹호할 수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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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2일 정부과천청사 기자회견장에서 텅 빈 기자석에 대고 브리핑하는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모습은, 소통을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에 매우 아픈 장면이었다. 박 장관은 이날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 진상조사 활동과 관련해 브리핑을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법무부가 브리핑 직전에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겠다고 출입기자단에 통보하면서 탈이 났다. 기자들은 질의응답 없는 브리핑에 참석할 수 없다고 통보했지만, 법무부는 “대변인이 대신 질문을 받겠다”며 밀어붙였다. 기자단이 회의한 뒤 집단 보이콧을 결정하자, 박 장관은 KTV 국민방송에서 브리핑을 강행했다. 장관이 기자단의 보이콧 속에 ‘나 홀로 브리핑’을 한 것은 ‘불통 정권’이라는 지적을 받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없었던 일이다.

박근혜 정부 때도 없던 ‘불통’ 사태



이날 기형적인 브리핑은 ‘예고된 참사’라는 게 검찰과거사위 사정을 잘 아는 인사들의 말이다. 검찰과거사위에 대한 박 장관의 무능함이 이번 사태를 낳았다는 것이다. 검찰과거사위(5월31일 종료)에서 활동했던 한 법조인은 “박 장관이 검찰과거사위 활동을 세세하게 챙기지 않아 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대한 쟁점을 잘 모른다. 그래서 기자들의 질문을 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이날 일부 기자들은 ‘김학의 사건’에 대한 검찰과거사위의 수사권고가 무리한 게 아니었느냐는 취지의 질문 등을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학의 사건은 애초 성폭행 여부가 쟁점이었지만 정작 김 전 차관을 구속시킨 혐의는 뇌물이어서 ‘별건 수사’ 논란이 불거졌다.

또 검찰과거사위가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이 건설업자 윤중천씨(김학의 전 차관에게 뇌물 제공)와 유착한 의혹이 있다며 수사를 촉구한 것도 논란이 됐다. 검찰과거사위는 뇌물수수와 수뢰후부정처사 등 구체적 죄명까지 제시했지만, ‘김학의 사건’ 검찰특별수사단(단장 여환섭)은 수사에 착수할 단서가 부족하다며 이들을 무혐의 처분했다. 한 전 총장 등은 검찰과거사위 관계자들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낸 상태다.

법무부는 장관의 ‘나 홀로 브리핑’에 대해 “사전 배포한 자료에 충분한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에 질의응답은 불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 장관의 행동이 소통을 중시하는 문재인 정부의 기조에 정면으로 어긋난다는 점에서 이는 궁색하게 들린다. 법조계에서는 박 장관의 고육책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박 장관이 이번 기자회견으로 검찰과거사위를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기를 원했기 때문에 질의응답 없는 브리핑을 택했다는 것이다. 기자들의 날 선 질문에 답하다보면 논란이 가라앉기는커녕 더 확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박 장관이 검찰과거사위에 대한 신뢰가 부족함을 드러냈다는 분석도 있다. 과거사위를 신뢰했다면 조사 결과를 공격하는 질문에도 당당하게 답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법무부 관계자도 “장관이 (김학의 사건에 대한) 검찰 재수사 결과를 비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검찰과거사위를 옹호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법무부 장관이 검찰 재수사가 미진했다고 할 경우 특별검사나 국회 국정조사 등 다른 조처를 제안해야 한다. 하지만 과거사위 조사 결과는 장관이 그런 제안까지 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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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조사단 내부 갈등 ‘타격’



검찰과거사위 출범 자체는 박 장관의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사법부와 경찰, 국가정보원 등 대부분의 권력기관이 노무현 정부 때 과거사를 정리했지만 검찰은 빠졌다. 검찰은 피의자 고문이나 증거 조작 등에 직접 개입한 게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박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2017년 12월 검찰과거사위를 출범시켰다. 그는 당시 인사말에서 “고통스럽고 힘들겠지만 (위원들의) 열정이 진실을 밝혀낼 것”이라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검찰과거사위는 적잖은 성과를 거뒀다. 총 17건의 검찰 수사를 조사해 김근태 전 의원 고문과 형제복지원, 박종철 고문치사, 강기훈 유서대필 등 8개 사건에 대해 문무일 검찰총장의 사과를 이끌어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원장에 대한 확정판결 이후 29년 만에 과거사위 권고에 따라 비상상고로 이어졌다. 비상상고는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확정판결을 다시 심판해달라고 요청하는 제도다.

하지만 상처도 만만치 않다. 강제조사권이 없는 태생적 한계는 활동 기간 내내 과거사위의 발목을 잡았다. 조사 실무를 전담하는 진상조사단과 조사 결과를 심의하는 과거사위원회로 이원화된 탓에 잡음도 끊이지 않았다. 검찰과거사위는 진상조사단이 조사 결과를 과거사위원회에 보고하면 위원 9명이 이를 심의한 뒤 최종 조사 결과를 공개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수사기록을 직접 본 진상조사단과 조사 결과만 보고받는 위원회 사이에 이견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로 인한 갈등으로 김갑배 위원장이 중도 사퇴하는 등 조직에 큰 타격을 입었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진상조사단 내부의 분열이다. ‘재심 전문 변호사’로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는 진상조사단에 참여해 ‘김학의 사건’을 조사하다가 지난 3월 말 사퇴했다. 박 변호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진상조사단 활동을 비판하는 글을 잇따라 올리고 있다. 그는 김 전 차관이 구속된 다음날인 5월17일 쓴 글에서 “내가 김학의 사건 기록을 보지 않았다면, ‘정의의 실현’으로 이 상황을 해석했을 것이다. ‘사필귀정’ ‘권선징악’이라는 가치의 실현 사례로 바라봤을 것이다” “김 전 차관 구속, 수많은 국민의 정의와 상식에 비추어볼 때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구속영장이 발부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김 전 차관에게 적용된) 제3자 뇌물수수라는 주요 혐의에 사실적, 법리적 의문이 있었다” “뇌물 혐의로 구속한 후 성폭력 혐의를 압박하는 것은 무리한 수사”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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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 없는 윤씨 의혹 제기 못 걸러”



그는 앞서 ‘장자연 사건’과 관련해서도 신중한 조사를 촉구했다. 박 변호사는 4월16일 올린 글에서 “(장씨와 잘 알고 지냈다는) 윤지오씨가 ‘장씨가 술이 아닌 다른 약물에 취한 채 강요를 당했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으로 아는데, 이 진술이 언제 비로소 나왔는지 그리고 어떤 경위로 나왔는지, 이 진술을 뒷받침할 정황이 존재하는지를 따지지 않고 특수강간죄를 논하고 공소시효 연장 등 특례조항 신설을 이야기하는 건 나가도 너무 나간 주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윤씨의 진술은) 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에 더욱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방대한 양의 검찰 수사기록을 제대로 읽어보면 외부에서 제기한 의혹 중 상당수가 실체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진상조사단에서 근거가 없는 의혹은 걸러줘야 했는데 그렇게 안 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윤씨 진술의 신빙성은 과거사위에서도 논란이 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사위에서 활동했던 한 법조인은 “(장씨의 약물 흡입 가능성에 대한) 윤씨의 진술은 ‘버닝썬 사건’이 불거진 뒤에 나왔다. 버닝썬 클럽에서 이른바 ‘물뽕’ 성폭행이 있었다는 의혹이 불거진 뒤 윤씨가 약물 의혹을 제기했다. 이를 뒷받침할 만한 다른 증거는 없었다”고 말했다.

‘용산 참사’를 수사했던 옛 검찰 수사팀은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이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앞서 검찰과거사위는 5월31일 ‘용산 참사’ 조사와 심의 결과 발표문에 “당시 화재 가능성 등을 충분히 예상하고도 졸속으로 진압 작전을 강행한 경찰지휘부에 대한 검찰의 수사 의지가 부족했다”는 대검 진상조사단의 보고를 그대로 적었다. 그러자 ‘용산 참사’ 수사를 담당했던 전·현직 검사 20여 명은 6월6일 이를 반박하는 입장문을 냈다. 이들은 “과거사위의 심의 결과만을 공개하게 돼 있는 ‘검찰과거사위원회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범죄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가 2010년 1월 이 사건과 관련해 편파 수사에 대한 진정 사건에서 기각결정을 내렸는데 당시 조국 민정수석이 위원으로 참여했다는 자료도 공개했다.

“박 장관 당당한 모습 보였어야”



권력기관의 과거사 반성은 어려운 과업이다. 그것이 단순한 반성 차원에 그치지 않고 형사처벌이 수반될 경우에 더욱 그렇다. 형사처벌은 명백한 증거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사에 등장하는 증거는 관련자 진술인 경우가 많다. 진술의 신빙성은 그것을 판단하는 조사 주체에 따라 달라진다. 과거사 조사 기구의 정치적 중립성이 중요한 이유다.

과거사위 논란에 얹혀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나 홀로 브리핑’은 아쉽다는 지적이 많다. 반쪽 브리핑으로 불필요한 논란을 자초했기 때문이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박 장관이 김학의 사건에 대한 검찰 재수사 결과를 비판하든지, 아니면 검찰과거사위의 잘못을 반성하든지 당당한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고 말했다. 김학의 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검찰과거사위의 수사권고 대상에 올랐던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은 6월13일 문재인 대통령을 고소했다. 곽 의원은 “문 대통령이 위법한 수사 지시를 했다”고 주장했다. 조사단과 위원회의 이중 구조로 인한 갈등, 위원회 내부의 분열, 과거 사건 수사 검사들의 반발, 박상기 장관의 나 홀로 브리핑에 보수 야당의 정치 쟁점화까지 겹쳐 1년 반 과거사위의 활동은 막판 성과는 가려진 채 얼룩으로 귀결됐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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