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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文 “애국 앞에 보수·진보 없다”… ‘北 6·25 훈장’ 김원봉 언급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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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64회 현충일 추념식 / “기득권에 매달리면 진짜 아냐” / 김원봉 언급 “광복군, 국군 뿌리” / 진보 기득권화·보수 구태 지적 / 두 진영 모두에 사실상 경고장 /“한국당 협치 요구 메시지” 분석 / 文 “광복군 좌우합작으로 창설” / 野 “北 공훈자 소환… 기막힐 노릇” / 靑 “김원봉 서훈은 별개의 문제” / 1만여명 모여 순국선열 추모 / 전사한 남편 향한 그리움 담아 / 배우 김혜수씨가 대신 낭독해 / 6·25 전사 유해 신원확인 3명 / 국가유공자 증서, 유족에 전달

세계일보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제64회 현충일 추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6일 “애국 앞에 보수와 진보가 없다”며 “기득권에 매달린다면 보수든 진보든 진짜가 아니다”고 말했다. 보수와 진보의 분열을 넘어 우리 사회의 통합을 강조하는 동시에 양쪽 모두에게 기득권을 버리라고 촉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기득권이나 사익이 아니라 국가공동체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여기는 마음이 애국”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사람이나 생각을 보수와 진보로 나누며 대립하던 이념의 시대가 있었다”며 “하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에는 보수와 진보의 역사가 모두 함께 어울려 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독립과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에는 보수와 진보의 노력이 함께 녹아 있다”며 “저는 보수이든 진보이든 모든 애국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1945년 일본이 항복하기까지 마지막 5년 임시정부는 중국 충칭에서 좌우합작을 이뤘고 광복군을 창설했다”며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돼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됐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한·미동맹에 대한 평가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가장 큰 희생을 감내한 나라는 미국이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2022년까지 워싱턴 한국전쟁 기념공원 안에 ‘추모의 벽’을 건립할 것”이라며 “미군 전몰장병 한분 한분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고, 한·미동맹의 숭고함을 양국 국민의 가슴에 새길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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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보수 함께가자’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해 추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애국·통합 역설한 文… ‘北 6·25 훈장’ 김원봉 언급 논란

문재인 대통령이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꺼낸 화두는 ‘애국’과 ‘통합’이었다. 정치권의 잇따른 막말로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심화하고 있고, 문 대통령 역시 자유한국당을 겨냥해 “독재자의 후예”라고 지칭하며 국론 분열을 부추겼다는 일각의 비판을 감안한 키워드로 분석된다.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가장 큰 희생을 감내한 나라’로 미국의 역할을 강조해 일련의 한·미 갈등설을 불식하려 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주의 계열의 약산 김원봉을 대한민국 국군의 한 뿌리이자 한·미동맹의 토대로 평가한 부분은 정치권에서 새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국가 행사에서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하고 북 정권으로부터 ‘6·25공훈’으로 훈장까지 받은 그를 공식 평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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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6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 위패봉안관에서 재일학도의용군 및 애국지사의 위패를 보고 있다.


◆보수·진보 모두에 경고장… 김원봉의 ‘독립운동’ 평가도

문 대통령은 헌충일 추념사를 통해 진보·보수 두 진영 모두를 향해 경고장을 보냈다. 문 대통령이 “기득권에 매달린다면 보수든 진보든 진짜가 아니다”고 말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이는 국민경제에 ‘빨간불’이 들어와 있는데도 진보세력은 현대중공업 파업·폭력 사태 등에서 보듯 기득권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한국당 역시 5·18망언 등 구태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 대신에 “국가공동체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여기는 마음”을 ‘애국’으로 정의한 것도 두 진영의 기득권 집착과 맞물려 우리 사회의 갈등이 임계치를 넘어서고 있다는 문 대통령의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한국당의 장외투장으로 국회가 멈춰 서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날 추념식에 참석한 황교안 한국당 대표에게 협치를 요구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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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산 김원봉.


문 대통령은 광복군 창설과정을 언급하면서 임시정부 시절 좌우합작뿐만 아니라 김원봉의 조선의용대의 광복군 합류도 언급했다. 진보와 보수의 힘을 통합해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상식의 선 안에서 애국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통합된 사회로 발전해갈 수 있을 것”이란 취지에서다.

문 대통령이 한·미동맹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한 부분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좌우가)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됐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또 6·25전쟁 당시 미국 참전용사 3만3000여 명이 전사하고 9만2000여 명이 부상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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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싱 논란 없게…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왼쪽)가 6일 현충일 추념식에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김 여사는 지난달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황 대표와 악수하지 않고 지나치면서 ‘패싱 논란’이 일기도 했다. 뉴시스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이날 추념식에서 손으로 눈물을 훔치는 모습도 보였다. 1950년 8월 학도병으로 입대해 같은 해 10월 백천지구 전투 중 전사해 유해조차 수습하지 못한 남편 성복환 일병에게 보내는 김차희(93)씨의 편지를 낭독할 때였다. 지난달 청해부대 최영함 입항 행사 중 사고로 순직한 최종근 하사의 부모에게는 손을 꼭 잡고 위로의 말을 건네고 직접 분향을 권하기도 했다. 현충일 추념식에서 대통령 내외가 하는 대표 분향을 순직 유공자의 부모가 한 것은 처음이다.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악수 패싱’ 논란이 일었던 김 여사는 이날 한국당 황 대표와 눈을 맞추며 웃는 얼굴로 악수하며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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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6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4회 현충일 추모식에서 6·25 전장으로 떠난 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김차희(93) 씨의 편지 낭독을 듣고 있다.


◆한국당·바미당 김원봉 거론에 강력 반발… 청 “서훈은 별개”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문 대통령의 김원봉 관련 발언에 강하게 반발했다. 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6·25에서 전사한 호국영령 앞에서 김원봉에 대한 헌사를 낭독한 대통령이야말로 상식의 선 안에 있는가”라며 “6·25에서 세운 공훈으로 북한의 훈장까지 받고 북의 노동상까지 지낸 김원봉이 졸지에 국군 창설의 뿌리, 한미·동맹 토대의 위치에 함께 오르게 됐다. 기가 막힐 노릇”이라고 비판했다. 이종철 바른미래당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3·1절 기념사에선 엉뚱하게 ‘빨갱이’란 말이 친일 잔재라면서 청산을 하자고 했고, 5·18기념사에선 ‘독재자의 후예’란 말을 끼워 넣었다”며 “애국에 보수 진보가 없다면서 난데없이 북한의 6·25전쟁 공훈자를 소환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문 대통령의 말은 역사적 사실이며 광복군에 대한 정당한 평가”라며 “약산 김원봉의 월북 이후 행적을 끌어들여 광복군 운동 자체를 색깔론으로 덧칠하는 일이야말로 역사 왜곡”이라고 문 대통령을 엄호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애국 앞에서 이념의 문제나 정파의 문제를 뛰어넘자는 것이 문 대통령 발언의 취지”라며 “(김원봉의 서훈은)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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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당신을 기다립니다”… 구순 아내 ‘눈물의 편지’

6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올해 현충일 추념식은 오전 10시부터 1분간 전국 각지에서 울린 사이렌 소리에 맞춰 추모 묵념을 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때 선열들에 조의를 표하기 위한 조포(弔砲) 21발이 발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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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6일 오전 현충일 추념식이 열린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분향 후 묵념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당신을 기억합니다’라는 슬로건으로 열린 올해 추념식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국가유공자 및 유족, 각계대표, 시민, 학생 등 1만여 명이 참석했다. 특히 최근 청해부대 파병임무를 마치고 복귀한 입항식에서 홋줄(정박용 밧줄) 사고로 숨진 최종근 하사의 유가족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또 휴가 중 원효대교에서 강에 빠진 여고생을 구출한 황수용 하사, 대구저수지에서 물에 빠진 남성을 구출한 김대환 경위, 전남해남소방서 근무 중 강원도 산불 진화를 위해 가장 멀리서 지원을 나간 정의성 소방교,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대표인 김규태 상사 등도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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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6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4회 현충일 추모식에서 배우 김혜수 씨의 편지 낭독을 듣고 있다. 편지는 6·25 참전 용사 고 성복환 일병의 부인 김차희 씨(김정숙 여사 오른쪽)가 썼다. 김차희 씨의 남편 성복환 일병은 1950년 8월 10일 학도병으로 입대해 1950년 10월 13일 백천지구 전투 중 전사했다. 현재까지 유해는 수습되지 못했다.


문 대통령과 유가족의 국민의례와 애국가 제창, 헌화·분향 후에는 2016년부터 최근까지 6·25 전사자 유해발굴 과정에서 수습돼 신원이 확인된 김원갑 이등중사, 박재권 이등중사, 한병구 일병 3명의 유가족에게 국가유공자 증서가 전달됐다. 이 중 박재권 이등중사는 지난해 말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 내 화살머리고지에서 시작된 남북 공동유해발굴 작업을 위한 지뢰제거 작업 과정에서 국군전사자 유해로는 처음으로 발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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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혜수씨가 6일 현충일 추념식에서 고 성복환 일병의 배우자 김차희씨의 편지 ‘당신을 기다리며 보낸 세월’을 낭독하고 있다. 뉴시스


애절한 추모연주와 편지낭독 등이 이어졌다. 6·25전쟁 참전을 위해 떠난 뒤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남편을 향한 그리움을 담은 김차희(93)씨의 편지를 배우 김혜수씨가 대신 낭독했다. 김씨의 남편 성복환 일병은 1950년 8월10일 학도병으로 입대해 두 달여 뒤 백천지구 전투 중 전사했지만 아직 유해는 수습되지 못했다. 김혜수씨가 대신 읽어내려간 편지는 “뒤돌아보면 그 가혹한 세월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떠난 후 몇 달 만에 받은 전사 통지는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이었지요”라고 시작된다. 말미에는 “내게 남겨진 것은 젊은 시절 당신의 증명사진 하나뿐인데 그 사진을 품고 가면 구순이 훌쩍 넘은 내 모습 보고 당신이 놀라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난 아직도 당신을 만날 날만을 기다립니다”는 사연을 담았다. 이어 소프라노 신영옥씨와 대학연합합창단, 국방부 중창단이 가곡 ‘비목’을 합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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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 위패봉안관에서 고 성복환 일병의 부인 김차희 씨와 고인의 위패를 보고 있다.


이날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프로야구 키움히어로즈와 SK와이번스의 경기에 앞서 6·25전쟁 당시 화살머리고지 일대 전투에 참전했던 박동하(91)옹과 현재 화살머리고지에서 남북 공동유해발굴을 위해 지뢰제거 작업을 하고 있는 현역 장교 박형준(29) 대위가 각각 시구·시타자로 나섰다.

박현준·이창훈·이정우 기자 hjun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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