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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청년층에 영향주지 않는 방안 검토" 정부, 정년연장 문제 공식화…2030대 설득 가능할까? [김현주의 일상 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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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정년연장 문제 공식화…법정정년 일정기간 늘릴 듯 / 저출산·고령화 진행속도 매우 빠른 수준…경제·사회문제 명약관화 / 더 늦기 전에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세대간 충돌, 기업 부담 등 또 다른 문제 야기할 수도 / 정년연장 청년층 신규 일자리 빼앗을 수도 있어…노년층 퇴직 안 하고 일자리 유지할 경우 2030 취업난 더 심해질 듯 / 경기불황에 신음하고 있는 기업들도 정년연장 감당하기 버거울 전망

정부가 정년연장 문제를 공식화 했습니다. 현재 60세인 법정 정년을 일정 기간 늘릴 것으로 보이는데요.

우리 사회의 저출산·고령화 진행속도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매우 빠른 수준으로, 이로 인한 각종 경제·사회문제가 앞으로 쓰나미처럼 닥칠 것이라는 점에서 정부가 정년연장 문제를 제기한 것은 환영할만한 일입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 사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문제인데요. 다만 정년연장은 세대 간 충돌이나 기업의 부담 등 여러 가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는 사안이어서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는 생산가능 인구가 줄고 노인인구는 많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여서 정년연장 논의를 피해갈 순 없습니다.

앞으로 '초고령사회'가 되면 노인은 누구든 부양을 해야 하는데, 이 때문에 정부의 의무지출이 2022년까지 연평균 14.6%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물론 인구구조 변화는 천천히 이루어져 당장 국민들이 위기를 체감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지만, 이미 수년째 세계 최저수준의 출산율이 지속하고 있어 앞으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것을 막을 순 없습니다. 이제 관련 부작용과 폐해를 어떻게 하면 최소화할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 할 시점입니다.

다만 정년연장이 긍정적인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안 그래도 청년실업률이 높아 2030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노인들이 퇴직하지 않고 일자리를 유지할 경우 청년들이 취업할 일자리가 급감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업이 정년연장을 감당할 수 있을지도 고려해봐야 합니다. 정년연장이 노년층은 물론 청년에게까지도 일자리를 주도록 기업에 사실상 강요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경우 이를 감당하는 게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전문가들은 정년연장은 향후 인구감소와 생산·투자·소비 감소 중 어떤 것도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지 못한다며 정년연장으로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세계일보

법정 정년을 65세로 연장할 경우 일하는 인구 100명이 부양하는 고령인구의 수를 의미하는 '노년부양비' 증가속도가 9년 늦춰지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지연효과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데요.

4일 통계청의 '장래인구특별추계 2017∼2067년' 중 중위 추계를 정년 5세 연장을 가정해 분석한 결과, 올해 노년부양비는 현행(20.4명)보다 7.4명 떨어진 13.1명으로 집계됐습니다.

노년부양비란 생산가능인구 100명당 고령인구의 비율로, 한 사회의 고령화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입니다.

올해 기준 노년부양비 20.4명은 15∼64세 생산연령인구 100명이 65세 이상 고령인구 20.4명을 부양하고 있다는 뜻인데요.

통계청은 장래 추계를 통해 이 부양비가 2067년 102.4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일하는 인구보다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가 더 많아진다는 의미입니다.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 > 일하는 인구

만약 정년이 5년 늘어난 65세로 연장된다고 가정했을 때 이러한 고령인구 부양 부담이 커지는 속도는 크게 떨어집니다.

65세 정년 시나리오는 생산가능인구를 15∼69세, 고령인구를 70세 이상으로 적용한 것인데요.

65세로 정년이 연장됐다고 가정하면 올해 기준 노년부양비 20.4세에 다다르는 시점은 2028년(20.5명)으로 늦춰집니다.

올해 당장 정년을 연장한다고 가정할 경우 같은 고령인구 부양 부담이 9년 늦게 온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정년연장의 효과는 해가 지날수록 더 커지는데요.

2040년 정년 60세 기준 노년부양비는 60.1명인데 65세 시나리오에서 같은 수준이 되려면 2057년(60.5명)으로 시차는 17년으로 벌어집니다.

노년부양비가 100명을 돌파하는 2065년(100.4명)에도 65세 시나리오상으로는 68.7명에 머무를 뿐입니다.

정년을 5년 연장하면 고령인구 부양 부담 지연효과는 점차 커진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정년연장에 따른 노년부양비 감소 효과는 오는 2020년대에 극대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 기준 정년을 5년 늦춘다면 노년부양비의 감소율은 36.1%(20.4→13.1명)로 계산됩니다.

감소율은 2023년 40.2%로 40%를 돌파하고 2026년 42.1%로 정점을 찍은 뒤, 2029년(40.2%)까지 40%대를 유지할 것으로 분석됩니다.

이후 2052∼2057년까지 20%대 후반까지 떨어지기도 하지만 이후 반등해 2067년까지 감소율은 30%대를 유지하게 되는데요.

◆홍남기 부총리 "정년연장 사회적으로 논의할 시점"

통계청은 지난 3월 발표에서 중위 추계 추이가 계속된다면 한국의 총 부양비(생산가능인구 100명당 고령인구와 15세 이하 유소년인구 비율)는 2065년 117.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정년을 연장할 경우 2065년 총부양비는 83.3명으로 떨어지는 효과가 나타나며 순위가 대폭 내려갈 여지가 있습니다.

유소년인구 100명당 고령인구를 뜻하는 노령화지수도 올해 119.4명에서 2067년 574.5명으로 455.1명이나 증가할 전망이지만, 정년을 연장하면 같은 기간 81.4명에서 474.1명으로 떨어집니다.

정부는 정년 연장 관련 입장을 범정부 인구정책 태스크포스(TF) 논의를 거쳐 이달 말 발표할 예정입니다.

세계일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한 공중파 프로그램에 출연해 "인구 구조상 앞으로 10년간 저 같은 베이비부머 세대가 (매년) 80만명씩 고용시장에서 벗어나지만 10대가 들어오는 속도는 40만명"이라며 "고용시장 인력 수요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고, 생산가능인구가 줄기 시작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이어 "정년연장을 사회적으로 논의할 시점"이라며 "인구정책 TF의 10개 작업반 중 한 곳에서 정년연장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있고, 논의가 마무리되면 정부의 입장을 제시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노인 복지제도 기준 연령 65세 당장 개편하진 않을 듯

이처럼 정부가 60세 정년 연장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에 불을 붙였지만, 현행 65세인 노인 복지제도 기준 연령에 대해선 당장 손을 대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장기적으론 급속한 고령화에 따라 노인 복지제도에도 관심이 쏠리지만, 노인빈곤율이 심각한 상황에서 정년과 복지 연령을 연동할 경우 은퇴 이후 소득 공백만 심화할 거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정년 연장과 맞물려 65세가 대부분인 노인 복지제도 기준 연령 논의가 이어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요.

우리나라 노인 보건복지사업은 상당수 65세가 대상자 선정 기준입니다. 기초연금과 노인장기요양보험, 지하철 경로 우대를 비롯 노인 의료비 본인부담 감면제도인 노인외래정액제, 임플란트 건강보험 적용 확대, 경로당 이용 등이 65세를 기준으로 지원되고 있는데요.

정년 연장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한다고 해서 노인 복지정책까지 손볼 필요는 없는 셈입니다.

인구 정책 TF 내 복지부가 주관부처인 복지반도 정책과제로 '노인 복지정책의 지속가능성 제고'와 '장기요양보험 재정 안정화' 등 2개 주제를 확정했지만, 정년 연장 관련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정년 연장이 노인 복지와 아예 무관한 문제라고 볼 순 없는데요.

우선 정년이 늦춰지면 은퇴 이후 소득 공백이 발생하는 이른바 '소득 크레바스'가 다소 완화될 수 있습니다.

지금도 60세인 정년과 65세인 노인 복지제도 사이에는 5년 가량 차이가 발생합니다. 특히 국민연금은 1998년 연금 개혁 이후 연금 수급연령을 2013년부터 5년마다 1세씩 조정해 2033년 65세까지 점진적으로 늦추기로 했는데요. 지난해부터 2022년까지도 국민연금은 62세부터 받을 수 있습니다.

2016년 중위소득 50% 기준으로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43.7%로 높은 상태에서 정년 연장은 국민연금은 물론 기초연금 등 각종 복지제도 혜택을 받기까지 소득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입니다.

전문가들은 정년 연장 논의와 함께 노인 복지제도 기준 연령이 상향 조정될 경우 되레 '소득 크레바스'가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윤경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구정책연구실장은 뉴시스에 "기존에도 복지 서비스는 65세부터 제공되는데 노동시장에선 60세면 나가야 해 5년 정도 간격이 생기는 '소득 크레바스' 얘기가 계속 나왔다"며 "당장 정년이 연장되면 이 틈을 줄이는 효과가 있겠지만, 복지 정책 기준 연령이 그만큼 위로 올라가 버리면 또다시 크레바스가 생기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노인 복지제도 기준 연령 조정은 정년 연장이 노동시장에 안착하거나 외국처럼 정년 개념 자체가 없어져 누구나 65세 이후에도 일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 논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평생직장' 개념 아직도 강한 韓 vs 사전통지 없이 고용계약 해지할 수 있는 美

우리나라의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노인 인력 활용 방안에 대한 고민도 한층 깊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빠른 고령화 속도와 노동시장 특수성 때문에 선례로 삼을 국가는 별로 없지만 일본과 미국, 영국 등 선진국 사례를 들여다보면 활발한 재고용을 촉진하고 복지와 연계한 고용 프로그램을 짜는 것이 방안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31인 이상 기업 15만6989곳 가운데 65세까지 고용 확보를 위한 조치를 한 기업은 15만6607곳(99.8%·2018년 기준)에 달했습니다.

66세 이상 일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춘 기업은 총 4만3259곳(27.6%), 70세 이상 일할 수 있는 기업은 4만515곳(25.8%)으로 집계됐는데요.

거의 모든 일본 기업이 고령자 고용에 나서게 된 배경에는 2013년 도입된 고령자 고용안정 개정법이 있습니다.

이 법에 따르면 모든 기업은 정년 연장과 정년 폐지, 계속 고용제 도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노동자가 희망할 경우 65세까지 고용을 보장할 수 있는 조치도 마련해야 하는데요.

세계일보

정년 폐지는 해외 선진국에서도 의무 도입한 제도입니다.

영국은 2011년에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년을 폐지했습니다. 미국은 이보다 훨씬 이전인 1986년에 고용상 연령차별금지법 상한 연령을 폐지하면서 정년제도를 없앴는데요.

다만 이들 영미권 국가는 고용상황이 한국이나 일본과 사뭇 다릅니다.

미국은 기업이 언제든지 사유를 불문하고 사전통지 없이 고용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임의고용 원칙이 통용되는 국가입니다. 영국 역시 1980년대 이후로 성과주의 임금제도가 자리 잡으면서 임금 유연성 덕분에 고령자 고용이 기업에 큰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일본의 경우 한국과 마찬가지로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있어 정년 폐지는 선뜻 택하기 부담스러운 선택지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6월 기준 정년제를 폐지한 기업은 4113곳으로, 전체의 2.6%에 불과했습니다.

정년 연장 역시 부담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정년 연장을 택하면 종전과 같은 임금 및 노동조건으로 65세까지 고용을 보장해야 하는데요.

영국의 경우 2006년 65세를 정년에 해당하는 '기본 퇴직연령'으로 정했지만, 이미 1971년부터 노동시장에서 관행적으로 65세에 퇴직하던 것을 명문화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일본에서 65세로 정년을 연장한 기업은 전체의 16.1%에 해당하는 2만5217곳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았습니다.

후생노동성 역시 모든 노동자를 65세까지 고용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아니라고 못 박은 것도 기업 부담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대안은 일본식 '재고용'일까?

한국은 OECD 회원국 가운데서도 재직기간과 임금의 연관성이 가장 큰 국가로 꼽혀 정년 연장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재직기간이 10년에서 20년으로 늘어날 때 임금이 13.4%(2012년 기준) 늘었는데요.

일본의 경우 11.3% 수준이었으며, OECD 평균은 6.1%에 그쳤습니다. 네덜란드와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등 북유럽국가는 임금 증가 폭이 2%대에 그쳤는데요.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일본식 표현으로 '계속 고용'이라고 하는 재고용입니다.

일본 기업은 법 준수를 위해 노동자가 55세에 도달했을 때 동일한 임금 수준으로 60세에 정년퇴직하거나, 낮은 임금으로 65세까지 계속 일을 하도록 선택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재고용 시 파트타임 고용도 가능하고 임금이나 처우도 조정할 수 있어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을 덜 수 있는데요.

일본은 고용 가능 연령을 65세에서 70세로 늘리는 방안까지 추진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65세 이상 고령자를 고용하는 기업에는 정부가 촉진 장려금을 지원하지만, 앞으로는 개정법의 내용을 확대해 70세까지 고용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원래 다니던 기업에서 재고용하는 것 외에도 파견근로자 형식으로 민간에 재취업하도록 돕는 것도 한 방안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일본은 실버인재센터를 두고 지역 공동체의 단기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데요.

한국의 공공일자리 사업이 국가가 직접 고용하는 방식이라면, 실버인재센터는 플랫폼만 제공하고 민간으로의 파견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해외 각국의 노인 일자리 프로그램은 직업훈련이 수반된다는 점도 주목할만합니다.

네덜란드의 경우 직업 교육과 구직 알선을 제공하고 있으며, 독일도 50세 이상에 대해 기술 훈련과 인턴십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캐나다는 55세 이상 실업자에게 이력서 작성부터 인터뷰 기술까지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운영중입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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