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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동서남북인의 평화찾기]국가가 베푸는 ‘명예회복’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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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이 푸르르고 하늘이 파란 한국의 5월은 아름다움을 찬찬히 상미할 여유도 없이 바쁜 달이다. 5월9일에 우리 동아시아평화연구소도 큰 행사가 있었다. 우석대학교 개교 40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엄 ‘한반도 평화시대와 동아시아의 변모’다. 중국, 일본에서 온 논자들이 남북이 힘을 합치는 한반도 평화의 미래를 전망했다.

경향신문

올해 5·18 기념행사 중에 ‘국가폭력과 국가의 보호 책임’이라는 심포지엄이 있었다. 나는 토론자가 되었는데, 부득이 못 갔다. 내 세션에서 한성훈은 과거청산의 국가책임과 기준을 이론적으로 논했으며, 독일, 인도네시아 등에서 보고했다. 그중에 관심을 끈 것이 인도네시아의 ‘65~66 대학살’이었다.

1965년, 내가 대학 2학년 때 인도네시아 수하르토가 이끈 군부가 수카르노 대통령을 감금하여, 공산당원, 화교 등 100만~200만명을 학살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9·30사건’이다. 5~6년 전에 일본의 교토 시네마에서 <Act of Killing>(2012)이라는 영화를 보고 옛날의 충격이 되살아났다. 이 영화는 미국인 감독이 반세기 전의 대학살 사건을 학살자들의 입을 통해서 재구성한 것이다. 가해자가 다큐멘터리 영화에 버젓이 출연하고 오히려 그 만행을 자랑한다. 이슬람 극우단체의 두목 앙와르 등이 길거리를 싹쓸이하여 ‘빨갱이’를 잡아내고, 학살했다. 효율적으로 죽이기 위한 도구를 만들었다고 사용 방법도 소개한다. 철사의 끝을 기둥에 묶어 그 철사를 납치해온 자의 목에 감아, 다른 한끝에 단 나무 손잡이를 힘껏 잡아당겨 죽이는 장면을 거리낌 없이 카메라 앞에서 재연해 보인다.

내가 소학생 때 추운 겨울밤에 제주에서 밀항해온 늙은 대학생이 내 집 현관방에서 사타구니에 화로를 끼고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4·3 때 그의 눈앞에서 학교 담임선생이 철사로 목을 졸려서 죽은 이야기를 하던 장면을 떠올렸다. 더욱더 혐오스러운 것은 인도네시아 학살자들이 부와 사회적인 지위를 누리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데, 앙와르는 저택 풀장에서 새의 발을 부러뜨린 어린 손녀에게 “새가 아프지 않아. 그러면 쓰나?”라고 인자하게 타이르는 장면이다. 지금도 이슬람 극우단체 멤버들이 때때로 검은 안경에 민병대 제복을 입고 지프차를 몰고 동네를 누비며 위세를 과시하곤 하는데 그 악한들도 밤이면 악몽에 시달리고 돼지 멱 따는 소리를 내고 잠에서 깨곤 한다. 독재자 수하르토가 쫓겨난 후에도 대학살에 대한 조사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가해자가 처벌받지 아니하고 피해자가 보호와 구제를 받지 못하는 나라에서 온 활동가를 앞에 두고 인권의 기준이네, 권리네 하는 말은 너무 한가로워 보인다.

한성훈 보고에서는 “중대한 인권침해의 피해자들을 위한 구제조치 및 배상에 대한 기본원칙과 가이드라인”을 들면서 피해자에게 ‘보편적 인권’에 의거하는 처우와 권리를 부여할 것을 역설하고 있으나, 한가한 소리다. ‘이행기의 정의’는 포악한 국가폭력을 타도하고 가해자를 심판할 때 모습을 나타낸다. 피억압자들의 손으로 법·정치질서가 확립한 후에 인권이니 화해니 하는 말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은폐되고 왜곡된 사건의 진실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이 최우선”이라고 하고 있지만 ‘피해자 명예회복’은 도대체 뭘 말하는가? 흔히 ‘오명을 벗는다’고도 하는데, 부당한 판결을 받은 자가 재심으로 무죄를 받아 범죄자의 이름을 벗는 것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치범 재심재판에서는 피고인의 사상이나 정치적 행위를 묻기보다는 구류기간, 체포영장, 고문의 유무, 재판을 받을 권리 등등 절차법적 하자의 유무를 다툰다. 독재시대의 정치재판은 모두 법적 하자가 있게 마련이라서 거의 모두 무죄가 나온다.

여러 과거청산법의 단서에서 규정하는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옹호한다는 것은 반공, 분단, 시장경제사회에 순종하는 ‘양민’이라는 뜻이다. 냉전 시기에 공권력의 탄압을 받은 자들은 많은 경우 ‘미제의 조국 분단·지배’에 반대하고 사회주의의 이상에 불타던 자들이었다. 예를 들어 제주 4·3사건의 지도부는 당시 미제의 분단·점령과 이승만 독재에 반대하고 조국의 통일에 역행하는 ‘단정·단선’에 반대한 사회주의자들인데 그들을 아무 사상성도 없는 무고한 양민으로 둔갑시키는 것은 오히려 명예훼손이다.

재심재판에서 ‘무죄’를 받아, “명예회복되었다” “민주주의의 승리다”라고 떠드는 재일동포들을 종종 본다. 물론 인간은 사상이 바뀔 수도 있지만, 옛날부터 아무런 변절 없이 지조를 지켜 살아온 양 행세하는 것은 자기와 남을 기만하는 행위다. 물론 한국에서는 무수한 ‘막걸리 반공법 위반자’처럼 무고한 죄인들이 많다. 그러나 해방 후 수많은 정치범 속에 공산주의자도, 사회주의자도 하나도 없다고 하면 엄청난 조작이다. 그들의 제대로 된 ‘명예회복’은 그의 정치사상과 정치활동의 정당성을 원래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즉 그의 사상과 정치활동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그를 불법으로 규정한 국가보안법이나 반공법 등 정치형법이 잘못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국가의 책무’ 운운하며, 국가권력이 명예회복을 시킨다면서 제2의 사상전향 공작을 추진하지 말아야 한다.

서승 | 동아시아평화연구소장·우석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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