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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경향시선]생명은 때로 아플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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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십리 모래알이 많고 많아도

제 몸 태우면서 존재하는

저 별의 수보다 많으랴

백 년 전 혹은 천 년 전에도

저절로 피어난 꽃이 있었겠나

뜻 없이 죽어간 나비가 있었겠나

너도 나도 그래,

살고 싶어서 태어난 것

살아보려고 지금은 앓고 있는 중이지

이승하(1960~)

경향신문

아프지 않은 생명은 없다. 모두 다 고통의 속사정이 있다. 그러나 삶을 포기할 수는 없다. 식물의 푸른 덩굴이 팔을 뻗어 위쪽을 향해 자라듯이, 우리의 삶도 지금 이 순간을 살면서 내일을 향해 나아간다. 바닷가 모래밭에는 곱고 부드러운 모래가 끝없이 펼쳐져 있지만, 그 수는 제 몸을 불태우면서 빛을 내는 별의 수만큼에는 이르지 못한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존재들이 곤란을 견디고 있다. 고통 없이는 빛을 볼 수도 얻을 수도 없다. 반짝이는 별의 배경은 긴 밤이요, 캄캄한 어둠이다. 꽃도 나비도 살아 있음을 아픔으로 증명한다. 그러면서 “세상의 모든 강물은 바다로 가고 싶어”하듯이, 우리는 우리의 삶이 바다처럼 넓고 큰 세계가 되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이승하 시인은 시 ‘시원하게’에서 “내 한 생을 살면서/ 물 한 모금 달라고 애걸하는 누군가를 위해/ 시원한 물의 시 못 보여 준다면/ 밥 먹는 일이 무슨 의미 있는가”라고 썼다. 시인이 “시원한 물의 시”를 얻는 일에도 고통이 없을 수 없다. 앓는 시간을, 통증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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