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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정동칼럼]WHO의 위험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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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2차 세계보건기구(WHO) 소위원회는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를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분류한 제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안(ICD-11)을 통과시켰다. 흔히 ‘게임 중독’이나 ‘게임 과몰입’으로 부르는 현상에 ‘장애’라는 병명을 붙인 것이다. 이 결정은 오는 28일 폐막하는 총회 전체회의 보고를 거치는 절차만 남았기 때문에 사실상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ICD-11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194개 WHO 회원국에서 2022년부터 적용되도록 되어있다.

경향신문

게임업계는 반발한다. 게임 시장의 위축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게 전부도 아니다. 게임이 병인(病因)이 되는 순간 게임 산업 종사자들은 병균을 만들거나 퍼트리는 사람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다.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결국 능력 있는 인력자원은 게임 산업계로 진입하는 것을 꺼려 할 것이다. 게임업계로서는 난감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누군가가 게임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 하고, 누군가가 게임 때문에 입시를 망쳤다는 이야기를 수시로 듣는 평범한 시민들에게 이 같은 산업 논리는 와 닿지 않는다. 당장 내 아이가 아픈데 게임회사 하나 망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할 사람은 없다.

WHO의 결정이 문제가 되는 것은 게임 산업의 잠재적 위기 때문이 아니다. 게임 때문에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분명 존재하지만, 이들의 고통의 진짜 이유를 가려버리기 때문이다. 질병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환자로 만들지만 고통의 원인을 게임으로 단순 환원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마약이나 알코올 같은 약물 중독은 그 약물을 끊으면 치유가 된다. 치료도 중독물질을 끊게 하는 데에 집중한다. 게임의 부작용은 게임에 과도하게 의존하도록 만든 환경을 고쳐야 해소된다. 학업 스트레스가 게임 과몰입의 원인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고 게임 의존도가 ADHD와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분석도 있다. 즉 게임 자체가 중독적이라기보다는 다른 병인에 의한 결과로 게임 과몰입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질없다. 어쨌든 WHO는 ‘게임이용장애’라는 질병을 발명했고, 학부모들은 여전히 자식의 짜증이나 반항을 게임 때문이라 믿을 것이다. 토론 프로그램에 나온 패널이 “일반인이라 논문까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라고 강변하는 것이 우리 사회다.

그러니 권위 있는 국제 보건기구의 위험한 결정도 우리나라 학부모의 무모한 강변도 주어진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 그 전제 위에서,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할 때다. 먼저 보건 당국은 WHO의 결정을 무비판적이고 불가역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먼저 설득력 있는 연구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 “게임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치료하자”라고 말하기에 앞서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왜 게임 때문에 고통받는지 알아보자”라고 말해야 한다. 이는 의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과학과 인문학의 도움도 있어야 하고, 비전문가들의 의견도 필요하다. 의학 ‘엘리트’들 의견만으로 서둘러 게임이용장애를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에 등재할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게임’이 무엇인지 먼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알코올중독자에게 60도짜리 고량주나 4도짜리 맥주는 모두 중독물질이다. 게임도 마찬가지인가? 게임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명절 윷놀이나 어르신들 화투도 게임인가? 교육용 게임이나 의학적 목적의 게임은? 캔디크러쉬와 배틀그라운드를 장르나 플랫폼과 무관하게 ‘게임’으로 퉁치는 것도 전문적이어야 할 보건·의학계가 할 짓은 아닌 것 같다.

게임업계도 자성해야 한다. 경제에 기여한다는 말로 버틸 시기는 지났다. 사행성 높은 게임을 퇴출시키고 종사자 노동환경의 개선이나 여성·인종 혐오적 문화 개선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정부 부처와 정치권, 시민사회도 집단이기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게임 매출 일부를 ‘뜯어내서’ 무언가 하겠다는 발상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의학계도 정말 게이머의 건강을 위한다면 환자를 만들기에 앞서 환자가 나올 환경을 제거할 수 있는 연구를 해야 한다.

공부 안 하는 자식의 부모는 게임 탓을 하면서 스스로를 면책한다. 우리 아이를 환자로 만든 게임회사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경찰이나 언론은 복잡한 강력사건을 게임이라는 마술적 단어로 쉽게 설명한다. 대신 범죄자는 ‘환자’라는 이유로 교도소 대신 병원으로 갈 수도 있겠다. 게임 과이용자들도 자신의 불안한 삶을 게임 탓으로 돌리면서 자위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병에 의한 군 면제를 기대할 수도 있겠다. 우리나라 사회가 이 같은 일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WHO의 위험한 결정을 기계적으로 우리나라에 적용하려는 ‘더 위험한 시도’는 중단되어야 한다.

윤태진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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