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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미디어 세상]믿는 것을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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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잡지, TV, 라디오의 세칭 4대 매체라 불리는 전통적 미디어의 힘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지면과 전파로 전달되는 이 매체들의 특징은 같은 내용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매스미디어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경향신문

요즘 무엇을 보고 계신가요? 최근 50대의 사용량이 2배 넘게 증가했다는 유튜브 역시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관심을 가져갑니다. 전 국민이 사적인 대화를 하는데 사용하고 있는 카카오톡의 단톡방 리스트 사이에 드디어 광고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 역시 관심 시장(attention economy)의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Seeing is believing”, 우리가 보는 것들이 우리의 생각을 형성합니다.

최근 길거리의 거대한 전광판이 다시 힘을 얻습니다. 서울 코엑스 앞의 거대한 LED는 화려한 사인보드로서의 역할을 가져옵니다. 그에 반해 지하철의 광고는 예전의 영광을 잃고 말았습니다. 예전 지하철역마다 가득 쌓이던 스포츠 신문이 무가지로, 다시 그마저도 사라져 버린 것은 승객들 모두 손바닥 위의 작은 기계에 시선을 빼앗긴 것이 이유입니다. OOH(out of home) 매체라 불리는 길거리에 세워놓은 입간판을 이야기하는 빌보드가 다시 의미 있는 매체가 된 것은, 어쨌든 밖에서는 걷거나 운전을 위해서라도 핸드폰에서 정면으로 시선을 옮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뉴욕5번가의 화려한 모습이 우리나라에서도 재현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핸드폰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앞에 있는 무언가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은 또 어떤 것이 있을까요? 걷거나, 타거나, 공연을 보거나 수업을 받거나 하는 방법밖에는 없지요. 이런 이유로 최근 극장의 광고가 더 힘을 받습니다. 어두운 곳의 거대한 스크린을 보아야만 하고, 핸드폰의 작은 빛도 옆 사람에게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선 이런 상황이 귀해집니다. 식탁에서도 핸드폰을 옆에 놓거나 눈앞에 두고 먹는 장면이 일상적입니다. 심지어 “포케몬고” 같은 AR게임에 이르기까지 이제 우리는 마치 눈앞에 필터를 끼운 것처럼 세상을 핸드폰을 통해 바라보는 일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볼거리에도 본격적으로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결합되고 있습니다. 실내에서 거대한 사인보드를 중심으로 무대가 만들어지는 e스포츠의 격전장인 “롤파크”가 시내에 자리를 잡습니다. 외국의 유명 오케스트라의 신년 음악회를 극장에서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클래식 라이브 상영도 심심치 않게 일어납니다. 저 멀리 유명한 뮤지션의 콘서트 표를 어렵게 구해 가보는 것처럼 5G와 고품질의 영상 음향 전송 기술이 전 지구적인 콘서트를 동시간대에 볼 수 있도록 해 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드시 그때 보아야 하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전 국민에게 공통의 관심사가 되는 국가적인 큰 사건이나,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스포츠 중계, 훌륭한 예술 공연의 실황이 아니라면 반드시 그 시간에 보아야 할 이유는 좀처럼 찾기 힘듭니다. 그렇지만 ‘함께’ 보아야 할 것들은 꽤 있습니다. 이미 방영된 드라마를 정주행하는 동호회의 모임, 충실히 공부한 명사의 강연 후의 청중의 질의와 응답 같은 것들은 뜻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보아야 합니다. 이 모든 작은 모임들이 다시 전 세계적인 동호인에게 전파되며 다시 큰 관심으로 만들어질 것입니다.

이렇듯 예전 소수의 콘텐츠를 불특정 다수에게 동시에 보여주던 방식은 다양한 콘텐츠를 취향 저격하여 소수들에게 보여주는 방식으로 바뀔 것입니다. 이때 하나하나 팬들의 마음에 꽂히는 메시지는 명확한 ROI로 다가올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 시청률과 광고 메시지의 인지도와 같은 도달률이 아닙니다. 그보다 팬이 정말 좋아하는 콘텐츠와 딱 맞춰진 메시지의 결합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우리가 주는 메시지가 상대의 주의를 흩트리고 그를 귀찮게 하고 있지 않은가에 대한 자기반성이 필요해지는 시점입니다.

이제 “보는 것을 믿는 것(seeing is believing)”이 아니라 “믿는 것을 보는 세상(believing is seeing)”이 오고 있습니다.

송길영 | 마인드 마이너 (Mind M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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