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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유레카] 아인슈타인을 증명한 에딩턴 / 조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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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꼭 100년 전인 1919년 5월29일, 영국 왕립천문학회의 아서 에딩턴이 이끄는 탐사대가 아프리카 대륙 서쪽 기니만의 프린시페섬에 모여들었다. 이날 있을 개기일식을 관측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이들이 진짜로 보려 한 것은 일식이 아니라, 햇빛이 가려져야만 관측될 태양 뒤편의 머나먼 붙박이별이었다.

탐사대는 어두워진 해의 옆에 나타난 별을 촬영한 뒤 치밀하게 계산하고 분석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별의 진짜 위치와 관측된 위치가 미세하게 달랐다. 태양에 가려 보이지 않아야 할 별빛이 태양의 중력에 이끌려 진행 방향이 꺾이면서 지구에 다다른 것. 독일 태생 유대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이 영국 과학자들의 관측으로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이들은 그해 11월6일 왕립학회에서 해당 논문을 발표했다. 이튿날 <더 타임스>는 굵은 헤드라인을 뽑았다. “과학 혁명: 우주의 새 이론: 뉴턴의 생각들이 뒤집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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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1915년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내놨다. 시간과 공간이 별개가 아니라는 시공간 개념, 중력이 시공간을 휘게 한다는 설명은 물리학자들조차 이해하기 힘들었다. 1921년 아인슈타인에게 노벨 물리학상을 안겨준 것도 상대성이론이 아니라 광전 효과를 빛의 입자 성질로 설명한 ‘광양자 가설’의 입증이다.

더욱이 일반상대성이론이 발표된 때는 영국과 독일이 격렬하게 맞붙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한창이었다. 독일 잠수함 우보트(U-boot)는 영국의 배라면 군함이든 상선이든 닥치는대로 격침시켰다. 민족주의와 교전 상대국에 대한 적개심이 팽배한 시기에, 독일 바깥에는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적국의 이론물리학자에 관심을 갖는 영국 학자들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은 고전역학의 완성자이자 영국의 자존심인 아이작 뉴턴의 이론 체계를 근본부터 뒤흔드는 것이었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선의 참호에 갇힌 것은 병사들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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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임브리지대 천문학 교수 에딩턴은 달랐다. 상대성이론을 이해하고 그 혁명적 의미를 알아차렸을 뿐 아니라, 그에 관한 책까지 써서 세계에 알리는 데 앞장섰다. 유대계 독일인이자 반전평화 사회주의자 아인슈타인은 적대적 민족주의가 갈라놓은 과학의 경계를 없애려는 뜻에 적격이었다. 에딩턴이 전쟁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던 상황에서, ‘이적 행위’라는 비난을 받으며 정부에 연구 자금을 신청하고, 독일 잠수함의 공격 위험을 무릅쓰고 대서양을 항해해 아프리카의 섬까지 가려 했던 이유다.

에딩턴 역시 투옥의 위험을 무릅쓰고 징집을 거부한 퀘이커교도이자 사회주의자였다. 왕실 천문관이던 절친의 도움으로 징집이 면제됐는데, 그 조건이 아인슈타인 중력 이론을 검증하기 위한 개기일식 관측이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200년 동안 확고했던 뉴턴 역학의 시대가 그렇게 저물고 상대성이론의 시대가 열렸다.

조일준
국제뉴스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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