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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남의 신발을 신고 1㎞를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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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魚友야담]

조선일보

어수웅·주말뉴스부장


침팬지와 보노보의 차이를 아십니까. 둘 중 인간과 더 닮은 녀석이 보노보입니다. DNA 98.7% 일치. 침팬지보다 체구가 작지만, 공감 능력은 훨씬 더 뛰어나다는군요. 마침 소설가 정유정의 신작 장편 '진이, 지니'(은행나무 刊)의 주인공 중 하나가 보노보라, 각 신문 문화면에 이 영장류가 자주 보였습니다.

보노보 공감 능력은 그렇게 뛰어나다는데, 정작 인간의 공감 능력은 추락 중이라는 연구 소식을 들었습니다. 최근 읽은 미국 공영 라디오 NPR의 기사에서는 '선택적 공감'이라는 우울한 개념을 제시하더군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세상이라는 이야기를 한 지는 꽤 됐습니다. 선택적 지각이나 확증 편향, 주관적 진실이라는 표현도 결국 마찬가지죠. 그런데 팩트의 취사선택뿐만 아니라, 공감 역시 그렇답니다. 사회심리학 전공의 인디애나대학 사라 콘래스 교수는 수십 년간의 빅데이터 조사 결과 명확한 패턴을 발견했다고 하더군요.

한마디로 이런 겁니다. 왜 내가 굳이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가. 더군다나 나에게 해로운 사람의 입장이라면 그래 줄 필요가 있나. 2009년 젊은이들의 공감 능력은 그 부모 세대에 비해 40%가량 곤두박질했답니다. "적에게 공감 능력을 낭비하지 말고, 내 감정을 필요로 하는 우리 편을 위해 아껴두자"는 게 이들의 구호죠.

'독재자의 후예'나 '김정은의 대변인'은 각각 격렬한 진영 논리를 불러일으킬 테니, 일단 이 지면에서는 한 발자국 떨어져 미국 사례를 봅니다. 대법관 캐버노 청문회에서 갈라진 민주당과 공화당, 오스카 작품상을 받은 영화 '그린북'을 두고 재연된 흑백 갈등 등등.

정치인들은 진영 논리를 자극해 편을 나눠야 선거에 유리하다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정치공학은 그럴지 몰라도,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침묵하는 다수가 여전히 더 많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는 역지사지의 예의를 갖춘 이들이 더 많다고 믿고 싶습니다.

신자는 아니지만, 한 목사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누군가를 비난하기 전에 그쪽 입장이면 어떨지 짐작해 보려고 노력하자고. 남의 신발을 신고 1㎞를 걸어보자고. 이번 주 커버스토리 주인공은 시력을 잃고 언어 능력을 얻은 서울 최초의 일반 중학교 장애인 영어 교사, 김헌용 선생님입니다. 오늘은 그의 입장에 서 봅니다.

[어수웅·주말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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