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화웨이 제품 수입 말라’ 요구
섣불리 한쪽 손 드는 건 위험한 선택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제재는 언뜻 결렬된 미·중 무역협상의 보복 조치로 보인다. 화웨이는 중국을 대표하는 IT기업이다. 매출은 삼성전자의 절반(2018년 1070억 달러) 수준이지만 휴대전화부터 네트워크 장비까지 안 만드는 게 없다. 이런 중국 대표 기업을 압박해 중국의 대폭적인 양보를 얻어내자는 셈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이것만으로 보는 건 지나친 단견이다.
현대 경제와 국가 운영에서 IT는 신경망과 같은 존재다. 이를 장악하는 건 경제는 물론 국가 시스템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데 필수다. 그리고 2차대전 이후로 이 시장을 장악해 온 건 단연 미국이었다. IBM에서 애플에 이르는 첨단 정보통신 기업들이 그 선두에 섰다. 그런데 최근 화웨이로 대표되는 중국 IT산업의 경쟁력이 크게 높아졌다. 화웨이 장비를 많이 쓰는 이동통신업계에선 “화웨이가 다른 업체 제품보다 가격은 30% 싸고 성능은 30% 좋다”는 말이 나온다. 화웨이가 “미국이 부탁해도 5G 장비를 미국에 팔지 않겠다”고 강하게 버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IT산업을 이대로 두면 결국 미국의 경제와 안보 독점권을 흔드는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게 트럼프의 걱정일 것이다.
전 세계 패권을 둘러싼 이런 고래 싸움을 우리가 어찌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입을 악영향만은 최소화해야 한다. ‘화웨이 사태’에 대해 경제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긍정적·부정적 요인이 교차하지만, 장기적으로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당장 화웨이 제품과 경쟁하는 기업엔 큰 호재가 되겠지만 다른 제품을 사야 하는 기업들로선 경제적 부담과 경쟁력 약화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태가 길어지면 미·중 간 관세·비관세 장벽이 높아져 자유무역이 축소되고 교역이 감소하게 된다. 안 그래도 미·중 무역분쟁으로 6개월째 수출이 감소하고 있는 한국으로선 생각하기도 싫은 시나리오다. 더구나 우리 내부가 굳건한 상황도 아니다. 생산·투자·소비가 일제히 악화하고, 1분기 10대 그룹 상장사 실적이 40% 이상 격감하는 등 경기가 좋지 않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의 현명한 대응이 절실한 때다. 한국 경제는 교역으로 먹고살고 성장해 왔다. 하지만 미·중 무역분쟁에 이은 패권경쟁이 큰 암초로 다가왔다. 이럴 때 섣불리 한쪽의 손을 들거나 편을 드는 건 위험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최대한 양쪽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한국의 국익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시나리오에 따른 정책적 준비와 대응논리도 철저히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화웨이 사태가 사드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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