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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매경춘추] 공직자의 재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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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세계 최초의 아파트는 언제 지어졌을까. 로마시대 트라야누스 황제 시절에 계속되는 인구 유입에 대한 주거대책으로 귀족들이 '인술라(Insula)'라는 주상복합 형태의 공동주택을 지어서 임대했는데, 이것이 최초의 아파트라고 알려져 있다.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었지만, 인술라는 당시 귀족과 장군들의 재테크 수단이기도 했다. 당시 귀족들은 대규모 인술라를 단시간 내에 지어 빈민들에게 임대해 높은 수익을 냈다고 한다.

이렇듯 재테크에 대한 관심은 역사적으로도 오래됐다. 고려시대에는 승려와 관료들이 급전이 필요한 자작농들에게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고 사용료와 이자를 받기도 했다. 부동산을 이용한 수익 창출은 조선시대에도 있었으며, 이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독특한 임대차 제도인 전세제도로 이어져 왔다고 한다.

세상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재테크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조선 사대부가의 살림살이(한국학중앙연구원)'라는 책에 따르면, 조선시대 사대부는 글공부뿐만 아니라 살림살이 역시 예(禮)의 실천으로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 퇴계 이황, 성호 이익, 다산 정약용 같은 학자들도 살림살이에 힘썼다. 퇴계 이황은 이를 인간 된 도리로 여기기도 했고, 성호 이익은 살림을 돌보지 않으면 부모를 봉양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다산 정약용은 환금성이 좋은 '뽕나무 심기'에 관심이 많았다고 알려져 있다.

오늘날 고위공직자들의 재산은 공직자윤리법상 '재산신고 및 공개'를 통해 국민의 감시를 받는다. 1964년 총리 지시로 첫 공직자 재산신고를 한 뒤, 1981년 공직자윤리법을 제정해 제도화했다. 당시에는 가전 보급률이 낮고 외제품이 귀할 때여서 컬러텔레비전, 냉장고, 에어컨 등도 국산과 외제품을 구분해 신고하도록 했다. 피아노나 장롱도 재산신고 항목에 들어갈 정도로 고급 세간살이였다. 1993년에는 재산공개제도가 도입됐고, 이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가져왔다. 첫 재산공개 이후 부동산 투기가 문제돼 사퇴하는 고위공직자도 있었다.

재테크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공직자의 재테크는 신중해야 한다. 국민은 공직자의 재산이 많고 적음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일부 공직자가 직무 수행 중 알게 된 정보와 권한을 이용해 재산을 늘렸다는 의혹에 대해 비판을 하는 것이다. 고위공직자의 퇴직 후 재취업도 마찬가지이다. 재취업 사실 자체보다 채용되는 과정에 특혜를 받고, 취업 이후에도 고액 연봉을 받으며 부적절한 로비 활동을 한다는 점이 국민 신뢰를 떨어뜨린다.

인사혁신처는 공직자가 공·사익 이해충돌 상황에서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재산등록·취업제한 등의 제도 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제도적인 뒷받침과 함께 중요한 것은 공직자 개개인의 마음가짐이다. 공직자가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직위를 이용해 개인적인 이익을 얻으려 하지 않고, 퇴직 후에는 전문성을 사회적 가치를 위해 활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공직자는 사적인 영역에서도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임을 잊으면 안 되겠다.

[황서종 인사혁신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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