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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문화재의 향기] 울진 성류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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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군 근남면 불영사 계곡 부근의 ‘울진 성류굴’은 일찍이 지난 1963년 천연기념물 제155호로 지정됐다. 수중동굴 구간을 포함해 총길이 915m에 달하는 ‘지하궁전’ 같은 이곳에는 9곳의 광장과 수심 4~5m의 물웅덩이 3개가 있다. 석회암 동굴이라 담홍색·회백색과 흰색이 주를 이루고 고드름처럼 드리운 종유석과 땅에서 솟아오른 석순, 종유석과 석순이 만난 석주 등이 고루 분포한다.

성류굴의 원래 이름은 ‘신선들이 한가로이 놀던 곳’이라는 뜻의 ‘선유굴’이었으나 1592년 임진왜란 때 왜군을 피해 불상들을 굴 안에 피신시킨 뒤로 ‘성스러운 부처가 머물던 곳’이라는 뜻의 ‘성류굴’로 불리게 됐다. 임진왜란 때 주민 500여명이 굴속으로 피신했으나 왜병이 입구를 막아 모두 굶어 죽었다는 얘기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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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성류굴에서 신라 진흥왕이 다녀갔다는 내용의 금석문이 발견됐다. 3월 입구에서 230m 떨어진 지점 주변에서 30여건이 확인됐는데 동굴 내부에 글씨를 새긴 고대 명문이 발견된 것은 국내 최초다. 울진군과 국립경주박물관이 공동으로 지표 기준 2.3m 높이에 새겨진 25자를 판독했다. 진흥왕이 560년 6월 배를 타고 울진 성류굴에 다녀갔으며 왕의 행차를 돕기 위한 간이 시설도 조성됐다는 내용이었다. ‘진흥왕거(眞興王擧)’라는 네 글자가 다른 글씨보다 유독 큰 점도 이채롭다. 국보 제147호인 울주 천전리 각석에 버금가는 금석문이며 삼국유사에도 없는 역사적 기록이 발견된 것이라 성류굴의 문화재적 가치가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신라의 전성기를 이끈 진흥왕은 국보 제3호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등 많은 문화재를 남겼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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