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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서초동 25시] 재판 출석 요구, 증인이 뭉개면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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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 전략' 쓴 김백준처럼 소환장 본인에 전달 안되면 출석 불응 책임 묻기 힘들어

이명박 전 대통령이 1심에서 뇌물 혐의로 유죄를 받는 데 핵심 진술을 했던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은 이 전 대통령 항소심 재판에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총 여섯 차례 출석 요구에 불응했다. 막판엔 재판부가 강제구인장까지 발부했지만 '소재 파악이 안 된다'는 이유로 이마저도 무산됐다.

그러나 그는 지난 21일 국정원 특수활동비 수수와 관련된 본인의 항소심 재판에는 휠체어에 앉은 상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거주지가 어디냐"는 판사 질문에 "집에서 요양하고 있다"고 답했다. 지난 수개월간 그의 소재를 몰라 여섯 번씩 재판이 무산된 것에 비하면 허망한 대답이었다.

재판에 증인으로 채택되면 법정에 출석할 의무가 있다. 형사소송법은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한 증인에겐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런데 법원은 김 전 기획관에게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말을 못하고 있다. 거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그의 '잠수 전략' 탓이다. 그는 그동안 거제도의 지인 집과 병원, 서울 자택 등을 오가며 소재 파악이 쉽지 않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이 증인 소환장을 보냈지만 소재지가 명확하지 않아 전달되지 않도록 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겐 '소환 불응'의 책임이 없게 되는 것이다.

강제구인장 집행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김 전 기획관 자택 앞으로 경찰관들이 찾아갔다. 검찰은 재판부가 발부한 구인장을 관할 경찰관들을 통해 집행하려 했지만 경찰관들은 집안에서 아무런 기척이 들리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그대로 "증인이 집에 없다"고 검찰에 보고했다고 한다. 그날 재판은 결국 무산됐다. 이 역시 그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다.

한 판사는 "증인은 피고인이 아니기 때문에 법원이 소환장 송달이나 구인장 집행을 무리해서 하지 않는다는 점을 김 전 기획관이 이용한 것 같다"며 "증인 출석도 '뭉개면 그만'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줄까 우려된다"고 했다.





[박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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