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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침묵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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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민정·극작가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은 더 이상 봄이 찾아오지 않는 한 마을에 대한 우화로 시작된다. 동물들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어린아이들도 고통을 호소한 지 몇 시간 만에 죽는다. 꽃도 피지 않고 새들도 울지 않는 침묵의 봄. 원인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있었다. 오랜 습관에 의해, 혹은 조금 더 편해보자고 저지른 행동이 가져온 결과였다. 1964년 출간된 이 책은 살충제로 인한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경고하고 있다.

나는 글이 안 풀릴 때마다 이 책의 서문과 우화를 펼쳐 읽곤 한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첫째는 왜 글을 써야 하는지 방향을 잃었을 때 길잡이가 되어주기 때문이고, 둘째는 침묵에 대한 경각심 때문이다. 당시 이 책은 케네디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여 대통령자문위원회가 꾸려질 정도로 반향을 일으켰다. 서문에는 그렇게 되기까지 한 과학자가 넘었어야 할 편견의 벽, 글쓴이가 견뎌야 했던 사회적·개인적 고통이 담겨 있다. 그것을 뛰어넘었을 때 얻게 된 성취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이미 사회가 공유하는 것이 되었다. 용기와 신념에 찬 글, 세상을 나은 편으로 바꾸는 글이란 얼마나 멋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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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글은 사실을 왜곡시킬 수도 있다. 그 영향력을 알기에 더 조심스럽다. 너도나도 확신에 차서 목소리를 높이는 세상에 그냥 입을 다물어 버린 사람들, 어쩌면 나도 그편에 속할 것이다. 나까지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 혹은 소란스러운 세상에 조용히 살고 싶다는 안일함에 미루고 미루다 무기력증에 빠져들 때쯤 이 책을 펼쳐든다. 앞서 간 글쓴이의 발자국을 따라가며, 다시 글의 힘에, 작가의 성실한 용기에 감탄한다. 여전히 세상은 변하지 않았고 침묵의 봄은 언젠가 우리 앞에 올 것이다. 그러나 침묵이 길어지면 영영 변화된 세상을 보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존재가 잊힐 수 있다. 아니,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책상 앞에 앉아보자. 1㎜를 움직이더라도, 침묵을 깨면 세상은 좋은 쪽으로 간다는 믿음이면 된다.




[김민정·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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