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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일요일엔 미화원 쉬어라"… 서울 주말 도심은 쓰레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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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 융통성 없는 주 52시간 지시에 서울광장·덕수궁 주변 엉망

다른 區는 '주말 근무조' 만들어 탄력 운영… 미화원 워라밸 지켜

일요일이었던 지난 19일 가족과 함께 서울 나들이를 온 강원도 강릉 주민 오태형(43)씨는 중구 세종대로 거리를 걷다 눈살을 찌푸렸다. 서울시청, 덕수궁, 서울파이낸스센터 등이 모인 거리 곳곳이 쓰레기 산(山)이었다. 가득 찬 쓰레기통이 비워지지 않아 과자 봉지와 음료수 캔이 높이 쌓여 있었다. 인근을 지나려니 악취가 코를 찔렀다. 오씨는 "서울 한복판에 쓰레기가 넘쳐나 깜짝 놀랐다"며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은데 민망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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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었던 지난 12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옆 인도에 설치된 쓰레기통 주위에 페트병, 플라스틱컵 등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김선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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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중구 세종대로가 주말마다 '쓰레기 몸살'을 앓고 있다. 쓰레기 수거를 담당하는 중구청이 최근 주말 쓰레기 수거 작업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중구 관계자는 "환경공무관(미화원)들이 주 5일, 주 52시간 근무를 준수하면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누릴 수 있도록 주말 근무를 폐지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매주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 중구가 관리하는 쓰레기통들은 치워지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 관광특구로 지정된 명동만 예외적으로 기간제 근로자가 쓰레기를 수거한다.

이 같은 방침에 대해 취지는 좋지만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발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중구는 서울 자치구 25곳 중 주말 유동 인구가 가장 많다. 주말 쓰레기 처리 수요도 월등히 높다.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중구의 토요일 유동 인구는 1만5319명으로 6479명인 강남구의 2.4배 규모다. 관광지와 백화점·호텔 등이 밀집한 데다 광화문광장과 맞닿은 시청역·덕수궁·서울광장 일대는 주말마다 시위·행사 인파가 몰려 쓰레기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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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의 방침은 인근 종로구와도 비교된다. 인사동 등이 있어 토요일 유동 인구가 1만명 이상인 종로구는 주말에도 쓰레기를 처리한다. 구에서는 환경미화원들의 주 5일 근무를 보장하면서 쓰레기 문제도 생기지 않도록 일부 인원을 주말 근무조에 투입하는 대신 주중에 쉬게 한다. 마포구(홍대), 서대문구(신촌)도 구청에서 쓰레기통을 비운다.

중구의 주말 쓰레기 수거 중단은 지난해 7월 취임한 서양호 중구청장의 의지 때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서 구청장은 취임 직후부터 '소신 행정'으로 화제와 논란을 불렀다. 서 구청장은 토요일인 지난해 7월 21일에 열린 '서울로7017 개장 기념 여름밤 초록 대행진' 행사에 불참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직접 참석한 데다 서울로가 중구에 있어 구청장 참석이 당연시되던 자리였다. 그러나 당시 서 구청장은 "행사가 토요일에 잡혀 있어 나가지 않겠다"며 "공무원들이 주말에 나오는 건 옳지 않다. 우선 나부터 토요일은 일하지 않겠다"고 했다. 미화원들의 주말 근무를 폐지한 것도 이 같은 소신에서 나왔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정작 주말을 쉬게 된 미화원 중 일부는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주말 근무 수당을 받아 살림에 보태왔는데 의무 휴일이 되면서 수입이 줄었다는 것이다. 중구 환경미화원 노조 관계자는 "전체 환경공무관 119명 중 60% 정도는 현재 워라밸에 만족하지만, 나머지는 주말에 일을 하고 수당을 받는 쪽을 원한다"고 말했다. 거리 미관과 미화원들의 생계를 위해 주 5일 근무제를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데도 휴일에 무조건 쉬도록 하는 것이 옳은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시민의 불편을 초래하면서까지 직원의 처우 개선을 고집하는 건 올바른 행정이라고 볼 수 없다"며 "직원의 복지와 시민들의 편의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는 행정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본지 취재가 시작되자 중구는 뒤늦게 "거리 미관을 해치지 않도록 개선 방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구 관계자는 "당장 이번 주말부터 근무를 조정해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선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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