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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세상 읽기] 과연 누구의 임금이 올랐나 / 우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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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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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계가 오랜만에 뜨겁게 달아올랐다. 국내 경제학자들은 너무 점잖아서인지 서로 논쟁을 벌이는 걸 보기 어려웠다. 특히 공개적으로 서로의 주장을 논박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따라서 최근 경제학계에서 벌어진 공격적 논쟁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논쟁을 촉발한 것은 한국경제학회의 <한국경제포럼> 최신호에 발표된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의 논문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을 지낸 박 교수는 ‘한국 경제의 노동생산성과 임금’이라는 논문에서, 우리나라 노동자의 임금이 국민소득 정도는 늘었고 노동생산성 증가는 그에 미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중요한 축인 ‘소득주도성장’의 이론적 기초가 된 ‘임금 없는 성장’의 근거가 부족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졌고, 소득주도성장을 옹호하는 학자들의 논박이 뒤따랐다. 소득주도성장의 이론적 뿌리는 경제성장의 과실이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에게 돌아가지 않아 소비 여력이 부족하다는 진단에 있다. 국민총소득 중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인 노동소득분배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이른바 ‘임금 없는 성장’을 해왔다는 것이다. 박종규 청와대 재정기획관이 ‘한국 경제의 구조적 과제: 임금 없는 성장과 기업저축의 역설’ 보고서(2013)에서 2000년대 후반부터 노동소득분배율이 하락하고 있다고 분석한 내용이 이론적 뒷받침이 됐다.

노동소득분배율이 줄어든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우리 국민이 번 소득 중에서 노동자가 가져가는 것보다 자본으로 배분되는 비율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 경제의 소득 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다. 자본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노동을 할 수 있는 사람보다는 훨씬 소수이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박종규 재정기획관의 분석이 해석상 오류를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경제성장과 임금증가율 간 괴리는 실재하지 않는다는 분석 결과를 내민 것이다.

그렇다면 두 연구의 차이는 왜 발생한 걸까? 우리 경제가 바나나로만 구성돼 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바나나가 연간 100개 생산되고, 이를 노동자가 60개, 자본가가 40개 가져간다고 하면 노동소득분배율은 60%가 된다. 두 연구의 차이는 실질화 여부 때문이다. 이번에는 노동자가 바나나를 임금으로 받아 식빵을 사야 한다고 치자. 노동자에게 중요한 건 바나나로 몇개의 식빵을 살 수 있는지 여부다. 바나나를 70개 받더라도 구입할 수 있는 식빵이 줄어들면 실질임금은 감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식빵 값이 바나나 값보다 빠르게 오르면, 노동소득분배율이 그대로 있다고 하더라도 노동자의 삶은 고단해질 수밖에 없다.

박종규의 ‘임금 없는 성장’의 요체는 일반물가와 소비자물가의 차이에 있다. 소비자물가를 반영한 실질임금이 실질국내총생산(GDP)에 비해 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3만달러를 넘겼는데 왜 우리 가구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디플레가 우려된다고 하는데 우리의 장바구니는 왜 가벼워지는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하지만 박 교수는 물가지수의 문제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동일한 물가지수를 사용하면 노동자의 임금은 최소한 경제성장률 정도는 올랐고 심지어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웃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박종규의 분석은 해석상 오류를 범하고 있는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다수 국제 연구들이 이런 분석방법을 자주 사용한다. 생산 측면이 아니라 노동자의 소비 측면에서 임금의 변화를 바라볼 때에는 소비자물가지수를 이용해 실질임금을 계산하는 방식이 쓰인다.

외려 박 교수의 주장은 한계가 분명하다. 우리나라처럼 영세자영업자가 많은 경우 자영업자의 소득 중 일부를 노동소득으로 반영하여 노동소득분배율로 계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건국대 주상영 교수 분석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소득이 반영된 조정된 노동소득분배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또한 박 교수가 비교 기준으로 삼고 있는 2000년은 외환위기 이후 임금이 낮은 시기였기 때문에 큰 폭으로 임금이 올라간 것처럼 착시 현상도 발생한다. 지디피만큼 임금이 올랐다고 해도 여전히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역할은 남는다. 그의 분석은 평균임금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하위 소득자의 임금이 정체한 채 상위 소득자 임금만 오르는 경우에도 평균임금이 오를 수 있다. 서민의 임금은 거의 오르지 않았는데, 도대체 누구의 임금이 올랐다는 것일까.

한겨레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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