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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생생확대경] 이주열 총재의 금리 감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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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열 총재의 롤모델은 이성태 전 총재

"적정 금리는 빌릴지 말지 며칠씩 고민하는 금리"

이 총재 "지금도 완화적인 금리..인하 검토 안한다"

금통위서 "완화적이라고 볼 수 없다" 반론 나와 주목

[이데일리 안승찬 기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롤모델은 이성태 전 한은 총재다. 두 사람 모두 ‘정통 한은맨’ 출신 총재라는 공통점 외에도 실제로 둘 사이는 각별했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한은을 이끌었던 이성태 전 총재는 이주열 총재를 무척 아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성태 전 총재 시절 이 총재는 통화신용정책 부총재보와 부총재로 승진하며 승승장구했다.

이 총재는 이성태 전 총재를 “기억력이 비상했던 인물”로 기억한다. 고등학교 때 배운 원소기호를 수십년 뒤에도 모두 외우고, 박물관에서 연도 하나를 보면 같은 해 일어났던 외국의 사건들까지 줄줄이 꿰고 있다고 했다. 한번 기억한 건 잘 잊어버리지 않은 기억력을 자랑했다고 한다.

이성태 전 총재와 관련해 이 총재에게 뇌리에 박힌 또 하나의 사건은 금리와 관련된 이성태 전 총재의 감별법이다.

하루는 이성태 전 총재는 한은 국장 팀장들과 함께 기준금리 수준에 대한 난상토론을 벌였다. 자연금리(경기과열 없이 잠재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는 금리)와 GDP갭(실질 GDP와 잠재 GDP의 차이) 등의 논의가 뜨겁게 오갔다.

잠자코 듣고 있던 이성태 전 총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현대 통화이론은 잘 모르지만, 적정한 수준의 금리라는 건 사람들이 너무 쉽게 빌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아무리 빌리려고 해도 못 빌리는 상태도 아닌 상태. 즉, 빌릴 수는 있는데 빌릴까 말까 며칠씩 고민하도록 만드는 수준 아닐까요?”

당시 회의에 참여했던 이 총재는 이성태 전 총재의 말에 무릎을 쳤다고 했다.

이 총재가 이성태 전 총재의 금리 감별법을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다만, 이성태 전 총재의 감별법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현재의 기준금리 수준을 “여전히 완화적”이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은 관계자는 “요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3%대 수준”이라며 “금리가 너무 높아서 대출할까 말까 고민할 정도는 아니지 않느냐”라고 되물었다. 이성태 전 총재의 감별법 잣대로 보면 지금의 금리 수준이 결코 높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총재는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조금도 열어두지 않는다. 지난 4월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 총재는 “기준금리 인하는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3월 이 총재의 연임이 결정되자, 이성태 전 총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총재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그동안 낮췄던 금리를 정상화해야 한다.”

하지만 한은 내부에서는 다른 의견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현재 기준금리인 1.75%가 ‘완화적인 수준으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은이 공개한 지난 4월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한 위원은 “현재의 기준금리가 중립적 실질금리 부근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전반적으로 볼 때 현재의 기준금리 수준이 의심의 여지없이 완화적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위원도 “현재의 통화정책기조가 완화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근거는 종전보다 다소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글로벌 경기 상황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으로 흐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싸움이 갈수록 격화되는 분위기다. 중간에 낀 한국 경제는 방향을 가늠하기 어렵다. 이 총재는 “(통화정책의) 방향성을 사전에 정하지 말자”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 총재가 새로운 감별법을 사용하게 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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