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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등 공세에… “최고 자리 지켜라” 칸영화제 안간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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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유명 배우 알랭 들롱(84)이 지난 19일(현지시간) 제72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히든 라이프’의 상영회를 앞두고 열린 레드카펫 행사에서 양손을 드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들롱은 60년 동안 영화계에 기여한 공로로 칸영화제 공로상에 해당하는 명예황금종려상을 이날 받았으나 과거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른 의혹 때문에 여성 영화인 단체인 여성과 할리우드 등으로부터 수상 철회 요구를 받고 있다. 칸=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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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영화제도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이 두렵다. 넷플릭스와 아마존 프라임 등 온라인 스트리밍업체(OTT)의 공세에 칸국제영화제의 평판이 예전만 못하다. 72회를 맞은 올해 칸영화제(현지시간 기준 14일 개막)는 최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가들의 신작을 경쟁부문에 대거 초청하고, 할리우드 스타 모시기에 유난히 공을 들였다. 어느 해보다 큰 별들이 칸을 장식하고 있지만 위상 지키기와 흥행에만 신경 쓰느라 다양성 확보에는 실패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대 뒤처질라” 칸의 위기의식

칸영화제의 위기의식은 지난해 움텄다. 프랑스 극장업계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넷플릭스에게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했다가 부메랑을 맞았다. 칸영화제는 초청장을 받으려면 제작 영화의 온ㆍ오프라인 동시 공개 전략을 포기하고 극장 개봉을 먼저 할 것을 요구했고, 넷플릭스는 출품 거부로 맞섰다.

후폭풍은 거셌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와 이선ㆍ조엘 코언 형제 감독의 ‘카우보이의 노래’,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7월22일’ 등 우수 넷플릭스 영화들을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 빼앗겼다. ‘로마’는 베니스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고, 올해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감독상과 외국어영화상 등 3개 상을 받으며 화제를 낳았다. 베니스영화제는 오랜 만에 칸영화제를 압도했다는 평가를 미국 연예전문지 할리우드리포터 등으로부터 받았다. 칸영화제의 수모였다.

칸영화제는 올해도 넷플릭스 영화를 초청하지 않았다. 대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샤이닝’(1979) 특별 상영회에 쿠아론 감독을 초대했다. 지난해 대가에게 저지른 무례를 사과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AP통신은 “지난해 칸 출품을 준비했으나 베니스로 갈 수밖에 없었던 쿠아론 감독이 올해 칸영화제에 참석한 사실을 눈여겨볼 만하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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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의 새 TV시리즈 '투 올드 투 다이 영'의 배우 마일스 텔러(왼쪽)와 니콜라스 빈딩 레픈 감독이 18일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칸=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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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라이벌에 특별 대우를 해준 점도 눈에 띈다. 칸영화제는 아마존의 새 TV시리즈 ‘투 올드 투 다이 영’의 연출자인 니콜라스 빈딩 레픈 감독과 출연 배우 마일스 텔러를 초대했다. ‘투 올드 투 다이 영’의 에피소드 2편 상영회도 열었다. 칸영화제가 TV시리즈를 상영하기는 매우 이례적이다. 레픈 감독은 ‘드라이브’(2011)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칸의 사랑을 받아온 인물이다. 아마존을 품으면서 자기 사람 챙기는, 칸영화제의 일석이조 행보다.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대우도 다른 해보다 특별하다. 영국 팝스타 앨튼 존의 젊은 시절을 그린 뮤지컬 영화 ‘로켓맨’은 16일 공식 상영 직후 엘튼 존과 주연배우 테런 애저튼이 해변에서 즉흥 공연을 해 화제를 뿌렸다. 영화제 후반부에는 경쟁부문 작인 쿠엔틴 타란티노(미국)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가 등판한다. 배우 브래드 피트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마고 로비, 알 파치노 등 출연진이 화려하다. 당초 영화제 개막 전 편집이 끝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초청 대상에서 배제됐으나 뒤늦게 합류했다. 액션스타 실베스터 스탤론도 폐막 직전 ‘람보5’ 홍보를 위해 칸을 찾는다. 칸영화제는 그를 위해 ‘랑데부 위드’라는 공식 행사를 준비해 두었다. 해외 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올해 칸영화제는 유독 흥행에 신경을 쓰는 분위기”라며 “경쟁부문 작품의 수준을 높이기보다 할리우드 영화로 손쉽게 화제몰이를 하려는 듯 보인다”고 지적했다.

유탄은 아시아와 비유럽권 영화들이 맞았다. 유럽ㆍ영미권 편향이 심해졌다. 지난해에는 한국과 중국, 일본, 레바논, 이란, 터키, 카자흐스탄, 이집트 등 다양한 국적의 영화가 초청장을 받았지만, 올해는 한국 1편, 중국 1편, 브라질 1편 외에는 모두 유럽ㆍ영미권 영화들로 경쟁부문이 채워졌다. 흥행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아시아 및 비유럽권 영화를 외면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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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제72회 칸국제영화제 속 엘튼 존의 ‘로켓맨’ 레드카펫 행사 중 테런 애저튼이 무릎을 끓고 엘튼 존의 신발끈을 묶어주고 있다. 칸=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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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마켓에서 더 거센 OTT 바람

세계 영화 주요 거래시장 중 하나인 칸영화제 필름마켓에서 OTT의 위력은 특히 강력하다.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올해 경쟁부문에서 상영돼 호평받은 라지 리(프랑스) 감독의 데뷔작 ‘레 미제라블’은 넷플릭스와 아마존이 경합한 끝에 아마존에 미국 판권이 팔렸다. 판권료는 150만달러로 알려졌다. 할리우드리포터는 칸을 방문한 리처드 겔폰드 아이맥스 CEO의 말을 인용해 “독립영화 산업이 칸영화제를 떠받쳐 왔지만, 블록버스터가 더 많은 글로벌 박스오피스를 차지하면서 독립영화 산업의 핵심인 중소 규모 영화들이 극장을 떠나 온라인 스트리밍업체로 이동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칸에서 만난 김영우 DMZ국제다큐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온라인 플랫폼이 많아지면서 다큐멘터리 수요도 늘어나, 칸 필름마켓에 마련된 다큐멘터리 코너가 최근 활성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의 영화 수입사들이 직면한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들어 칸 필름마켓에 화제작이 나오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한 수입사 관계자는 “해외에서도 배우들이 파급력이 큰 OTT를 선호하는 까닭에 투자를 받고도 배우 캐스팅이 안 돼 제작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칸=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