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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속담말ㅆ·미]좁쌀만큼 아끼다 담 돌만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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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이 산 것도 아닌데 별나게 손이 작고 제 욕심부터 차리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왕 쓰는 선심일 텐데 자기 다 쓰고 유행 지난 거 주며 생색내거나, 밥 먹으러 가면 김치찌개에 돼지고기만 골라 먹고 젓가락질하며 슬금슬금 반찬 그릇 끌어가며, 한턱낸다더니 예닐곱 명에 치킨 두 마리 시키곤 쿠폰은 또 얼마나 눈독 들여 챙기던지…. 한번은 자기 부모 임종이 코앞이자 안 오던 경조사에 얼굴도장 찍으러 왔더이다. 그리고 그 자리서 어떤 일로 푸념합디다. “인복이 없어도 이렇게 없나 몰라, 난.”

그런가 하면 점쟁이가 ‘주위에 귀인이 많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힘겹거나 괴로울 때면 신기하게도 누군가 손을 척 내밉니다. “여기 사람 구한다네. 너 생각나더라.” “괜찮은 사람 있는데 만나봐. 너 놓치면 손해라고 아주 쐐기를 박아놨어.” 그는 늘 순위 앞쪽에 있습니다. “뮤지컬 표 생겼어. 나랑 가자. 같이 가자!” 주위에 귀인이 많다는 건 아마 자신도 언젠가 그 귀인들에게 모종의 귀인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좁쌀만큼 아끼다 담 돌만큼 해(害)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작은 이익을 보려다 더 큰 손해를 본다는 뜻으로, ‘담 돌(石)’과 ‘담 돌(徊)다’를 이용한 속담입니다. 평소 아쉬운 이웃에게 좁쌀 한 톨도 아까워했는데 어느 때인가 자기네 곡식이 바닥나니 막막합니다. 별 수 있나요, 안 죽자면 꾸러 가야죠. 그런데 인색했던 자기 짓이 떠올라 선뜻 못 들어가고 울타리만 뱅뱅, 담 돌만큼 돌아(해) 보다 결국 쭈뼛쭈뼛 들어갑니다. 퇴직하는 날 누가 불러 옥상 갔더니 타 부서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선물을 주더군요. 컴퓨터 SOS 치면 바쁠 텐데도 선뜻 와줘서 늘 고마웠다고요. 잡아달란 손을 부담스러운 손(損)으로 떨떠름해하면 인복은 손사래 치며 떨어져 나가고, 귀인인 척 돈 잡아먹을 귀신만 들러붙는 게 인생 귀결 같습니다.

김승용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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