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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매경춘추] 어느 시인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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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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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까지도 그를 추억하는 것은 그가 이 시대의 큰 시인이라거나 그의 시가 주는 깊은 감동의 울림 때문이 아니다.

옆에 있으면서도 오히려 그가 누구인지를 몰랐던 나의 무지와 그에게 미안했던 내 마음 하나를 아직 지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나는 한국일보사 일간스포츠 시절 편집국의 동료였다. 그는 문화부장이었고 나는 연예부장이었다.

북적거리던 기자들이 출입처에 나가고 아직 들어오지 않은 편집국의 오후는 적막했다. 그가 내게로 왔다.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시집 나왔어." 그러고는 내가 뭐라 할 겨를도 없이 자리로 돌아갔다. '야간산행' 표지를 넘겼다. '신대남 仁兄/ 96. 6. 23/ 이성부 드림'. 그의 웃음 띤 얼굴이 프로필과 함께 왼편에 있었다.

그가 바로 '봄'의 시인 이성부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는 그 봄. 그러니까 벌써 23년 전의 일이다. 시집을 받고도 나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그러고도 오랫동안 그가 그저 그런 시인인 줄만 알았다.

그러던 중 나는 문체부가 매년 어버이날에 시상하는 '2015년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의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시 부문 심사위원으로 국문과 교수가 계셔서 티타임에 물었다. "이성부 씨가 어떤 시인인가요?" "어이구, 당대의 시인이지요." 정말 등잔 밑이 어두웠다.

나는 고교 시절부터 동인지에 시를 기웃거린 적이 있다. 기자가 되고 나서 바쁘다는 핑계로 시 한 편 읽지 않고 무지하고 삭막하게 살고 있었다.

이성부에 대한 나의 추억은 시인이 아니었다. 동료였고 그저 인간적인 것이었다. 그는 잔잔하고 벅찬 바다였다. 같이 밥을 먹고 술을 마셔도 단 한 번도 시를 말하거나 시인냄새를 풍기지 않았다. 그의 시 '벼'처럼 참으로 깊이 익은 사람이었다.

딱 한 번 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이 부장, 시는 어떻게 쓰는 거야?" "어떻게 쓰는 게 어디 있어.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게 시지." 그 자체가 시였으니까. 그가 떠난 지도 7년. 요즘에야 시 좀 읽고 긁적거리고 싶어도 그의 시를 읽고 나면 도대체 그럴 의욕을 잃는다. 옆에 있으면서도 그가 누구인지를 몰랐던 부끄러운 시절, 얼마나 후회스러운지 모른다. 아쉽고 그립다.

존경하고 사랑해야 할 사람이 지금 내 옆에 있다. 흔히 떠나신 후에야 빈자리가 쓸쓸하고 눈시울 젖는 부모님부터 챙기자. 가족, 선생님, 연인, 친구, 동료, 이웃들을 지금부터 더 사랑하고 존경하며 살자. 사랑은 소모품이다. 소비할수록 행복이다. 5월이 가정의 달이던가…. 등잔 밑이 어두웠던, 지난 시절이 부끄러워 나에게 하는 고해성사다.

[신대남 큐브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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