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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산책자]책 구독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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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관련된 구독 서비스 몇 개가 시작되었다. 이미 음반시장은 음원시장으로 바뀌면서 음악을 굳이 소유하지 않고 매월 정해진 요금을 내면서 듣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제작물들도 구독 서비스가 회원 수를 늘리면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컴퓨터 프로그램들도 월정액을 지불하는 방식의 ‘구독’을 해야 사용할 수 있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바야흐로 구독 전성시대이다. 주거지 월세에 전기, 수도료 외에도 만만치 않은 휴대전화 요금까지 생각하면 콘텐츠의 ‘구독’ 때문에 지갑은 점점 얇아지고 그것을 다시 채우기 위한 분투가 애달프게 이어져야 하는데, 책도 ‘구독’을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일까?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경향신문

나는 무료 구독기간을 이용해 몇 개의 서비스들을 체험 중이다. 현재까지 책 구독 서비스 업체들이 제공하고 있는 책의 목록은 아주 제한적이다. 회원들이 마음대로 볼 수 있는 목록은 기껏해야 수천 권에서 수만 권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는 신간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구간들도 극히 일부만 서비스되고 있다. 출판사들은 구독 서비스에 책을 공급하면 서점 판매가 위축될까 봐 책을 공급하는 데 소극적이고 서비스 업체들이 출판사들의 참여를 설득할 수 있는 방법도 제한적이라서 한동안 이런 상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의 출판사들은 콘텐츠를 모아서 서비스하는 업체들의 요청에 부정적이다. 구독 서비스뿐만 아니라 오디오북과 같이 책을 기반으로 한 2차 제작물 서비스들이 다른 나라들과 달리 폭발적으로 성장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도 이때문이다. 출판사들은 전통적으로 책을 만들어 그 자체의 가치를 사는 독자들에게 팔아왔다. 이들이 책을 만들 때는 수익 모델이 명확하다. 편집과 디자인을 거쳐 인쇄해서 서점에 넘기면 그 물건에 대한 대금이 입금되는 확립된 방식들이 있다. 책을 만들면 많든, 적든 돈이 들어온다. 콘텐츠를 남에게 넘기는 것이 불안한 출판사들이 비디오나 오디오 제작에 직접 나서기도 한다. 하지만 콘텐츠를 서비스 플랫폼에 올리는 것까지 하고 나서는 제작비를 회수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망연자실하는 경우가 많다. 널리 콘텐츠가 소비되면서 생기는 브랜드 가치를 무기로 다른 수익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데 연예기획사와 유사한 방식으로 수익을 얻어야 한다는 것은 해본 적도 없고 낯설기만 하다.

서비스 업체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은 또 다른 모델이지만 전통적인 출판사의 수익 모델을 훼손할까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서비스 업체들은 책을 구독하는 회원들은 기존에 책을 읽던 독자들과 다르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책을 읽지 않던 독자들이 책 구독 서비스를 통해 책을 접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출판사들로부터 책을 공급받아야 하는 서비스 업체의 입장에서 출판사의 기존 매출에 영향이 없고 부가적인 매출을 올릴 수 있으니 참여하라는 설득이다. 하지만, 음악을 구독하는 시장이 일반화되면서 음반시장이 무너진 것처럼, 책 구독에 모두 참여하게 되면 지금과는 다른 양상이 벌어질 것이다. 전망이 불분명한 상황이어서 콘텐츠를 쥐고 있는 출판사들의 움직임이 굼뜨고 신중할 수밖에 없다.

서비스들을 직접 이용해보니, 기존의 독서와는 다른 방식으로 책을 만날 수밖에 없었다. 매달 책 한 권 가격만 내면 몇 만 권의 책을 만날 수 있다지만 늘 책을 읽었던 독자들은 여전히 필요한 책들을 따로 살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구독료는 추가적인 지출이다. 하지만, 여행을 가기 전에 잔뜩 사던 여행책은 구독 서비스에 갖추어져 있는 목록 속에서 선택하게 되어 비용이 줄었다. 여행지를 키워드로 검색해 찾은 책들 정도면 여행 전의 사전 교양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서비스 전체를 둘러보는 과정에서 평소에는 보지 않았을 책들을 만나고 쏠쏠한 도움을 얻는 경우가 가끔 있다. 평소의 취향으로는 고르지 않았을 ‘장사하는 법’에 대한 책을 읽고 출간할 책 제목의 힌트를 얻기도 하고 비싸서 망설이던 전집을 열어 볼 행운을 잡기도 한다. 경쟁적으로 제공하고 있는 큐레이션 서비스는 일 년에 책 한 권 사지 않던 독자들이라면 새로운 경험과 재미를 잡는 데 분명히 큰 도움이 된다.

꽃, 그림, 화장품, 자동차까지 구독의 물결은 널리 퍼지고 있고 내년엔 전 세계 시장 규모가 60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추산도 있다. 책은 예외라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상상이다. 책 구독 서비스가 책을 읽지 않던 독자들을 위한 서비스가 아니라 책을 사랑하는 모든 독자들을 위한 서비스가 될 수 있을까? 출판사와 서비스 업체들, 그리고 독자들 모두 앞에 놓인 새로운 도전이다.

주일우 이음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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