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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박준영 변호사 "김학의 구속, 권력·여론으로 집요하게 파 잡아넣을 수 있다는 사실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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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박준영 변호사. /페이스북 캡처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을 맡았던 박준영(45·사법연수원 35기) 변호사가 김 전 차관 구속에 대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권력의 의지와 여론의 압력으로 집요하게 파고 또 파서 사람을 잡아넣을 수 있다는 사실, ‘정의의 실현’이라기보다 ‘무서운 세상을 본 충격’으로 먼저 다가왔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17일과 18일에도 연이어 페이스북에 게시글을 올려 김 전 차관의 구속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재심(再審) 전문 변호사인 박 변호사는 진상조사단에서 김 전 차관 사건을 조사하다가 지난 3월 말 사퇴했다. 그는 지난 2016년 삼례 3인조 강도 치사 사건, 2010년 수원역 노숙 소녀 살인사건 등의 재심을 무료 변론해 무죄를 받아내기도 했다. 2000년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에서 발생한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재구성한 영화 ‘재심’의 실제 인물이기도 하다.

박 변호사는 지난 17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제가 김학의 사건 기록을 보지 않았다면, 저는 ‘정의의 실현’으로 이 상황을 해석했을 것이다. ‘사필귀정’, ‘권선징악’이라는 가치의 실현 사례로 바라봤을 것"이라며 "제 글이 다소 불편하실 것 같다. 하지만, 경험과 서 있는 위치가 다를 때는 관점도 다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김 전 차관 구속, 수많은 국민의 정의와 상식에 비추어볼 때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그러나 저는 구속영장이 발부되지 않을거라 생각했다"고 했다. 이어 "(김 전 차관에게 적용된) 제3자 뇌물수수라는 주요 혐의에 사실적, 법리적 의문이 있었다"며 "뇌물 혐의로 구속한 후 성폭력 혐의를 압박하는 것은 무리한 수사"라고 했다. 이어 "성폭력 혐의에 대한 수사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진행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 변호사는 "(김 전 차관 사건은) 두 차례 검찰 수사가 있었고 재정신청을 기각한 법원의 결정이 있는 사건"이라며 "재정신청을 기각한 배경을 확인해야 한다는 국회의원도 있던데, 나가도 너무 나간 주장이다. 너무 무책임하다. 법원이 아무리 불신을 받고 있다고는 하나 무책임한 의혹 제기로 인한 폐해가 너무나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장이 기각되었다면 당장 비판을 받았어야 할 사람(들)이 김학의 구속을 이용해 관련 의혹을 부풀리려는 시도를 하는 것 같은데 이를 경계한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김 전 차관의 혐의를 두둔할 생각은 전혀 없는데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며 "하지만 인권은 ‘소외받고 있는 가치와 사람’에 대한 이야기 아닌가 싶다. 모두가 비난한다 해도 조금이라도 억울한 지점이 있다면 그 얘기를 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18일에는 건설업자 윤중천씨로부터 압수된 명함이 ‘별장 성접대 의혹’ 수사에 이용되는 것을 두고도 우려를 표했다. 박 변호사는 "명함이 나왔다는 사실이 별장으로 이어져 성접대로까지 연결되고 있다"며 "그 사실만으로, 그리고 윤중천의 진술만으로 의혹을 제기하고 키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또 "김학의 사건에 등장하는 인사들 중 성 접대를 받은 사실이 있고, 이게 현 시점에서 확인가능하고 처벌할 수 있는 범죄라면 수사의 필요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며 "그러나 근거가 부족한 가능성만으로 의혹을 부풀려가며 수사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박 변호사는 "근거를 찾는 수사를 하면 되는 게 아니냐 할 수 있다"며 "그러나 구체적인 특정 혐의가 드러나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어떤 목적하에 모욕을 주기 위한 의도도 있는 수사의 필요성 주장이라면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수사기록과 윤씨의 진술에는 현 정권 측 사람들도 등장한다"며 "이 사람들을 별장, 성접대로 이어지는 의혹의 중심에 서게 하는 것을 조심스럽게 생각해야 되듯 이와 반대되는 정치적 성향의 사람들도 똑같이 신중하게 관련 의혹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했다.

다음은 박 변호사가 17~18이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글 2개 전문.

<김학의 구속 1>

수많은 국민들은 지금 돈 있고, 힘 있는 사람에겐 법이 너무 무디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적용되는 법의 잣대가 다르다는 겁니다. 불공정한 법 집행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 당연합니다. 정당한 분노입니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했던 우리 사법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 문제는 반드시 바로 잡혀야 합니다. 김학의 구속, 수많은 국민들의 정의와 상식에 비추어 볼 때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구속영장이 발부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내심 그리 되길 바라기도 했습니다. ‘제3자 뇌물수수’라는 주요 혐의에 사실적, 법리적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뇌물혐의로 구속한 후 성폭력 혐의를 압박하는 것은 무리한 수사라고 봤습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권력의 의지와 여론의 압력으로 집요하게 파고 또 파서 사람을 잡아넣을 수 있다는 사실, ‘정의의 실현’이라기보다 ‘무서운 세상을 본 충격’으로 먼저 다가왔습니다.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로 봤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가정하며 걱정부터 하는 겁 많은 제게 있어서는 말입니다.

제가 김학의 사건 기록을 보지 않았다면, 저는 ‘정의의 실현’으로 이 상황을 해석했을 겁니다. ‘사필귀정’, ‘권선징악’이라는 가치의 실현 사례로 바라봤을 겁니다. 제 글이 다소 불편하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경험과 서 있는 위치가 다를 때는 관점도 다를 수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헌법이 정한 바대로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따라 구속이 됐습니다. 구속영장의 근거가 된 주요 혐의사실에 대한 실체 판단, 향후 법원이 냉철하게 내려주리라 믿습니다. 남은 수사기간 동안 유죄증거든 무죄증거든 공정하게 수집해 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성폭력 혐의에 대한 수사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진행해 주길 바랍니다. 두 차례 검찰수사가 있었고 재정신청을 기각한 법원의 결정이 있는 사건입니다. 재정신청을 기각한 배경을 확인해야 한다는 국회의원도 있던데, 나가도 너무 나간 주장입니다. 너무 무책임합니다. 법원이 아무리 불신을 받고 있다고는 하나 무책임한 의혹제기로 인한 폐해가 너무나 큽니다.

이재명 지사의 혐의에 대한 1심판결이 있었습니다. 검찰이 항소를 한다고 하니 최종적인 사법판단을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단, 큰 일 하시려는 것 같은데 주변 관리를 좀 더 잘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편, 어제의 무죄판결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 지사의 "국가권력의 행사에 있어 공정성과 냉정함을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사건 속 여러 이해관계’를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영장이 기각되었다면 당장 비판을 받았어야 할 사람(들)이 김학의 구속을 이용하여 관련 의혹을 부풀리려는 시도를 하는 것 같은데 이를 경계합니다. 그 움직임을 비판하는 글을 이어서 써 보겠습니다.

김학의 전 차관의 혐의를 두둔할 생각은 전혀 없는데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런데요. 인권은 ‘소외받고 있는 가치와 사람’에 대한 이야기 아닌가 싶습니다. 모두가 비난한다 해도 조금이라도 억울한 지점이 있다면 그 얘기를 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제가 인권변호사라 불리고 싶지 않습니다. 반인권적인 일을 했던 부끄러운 과거도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새끼들이 좀 더 좋은 세상에서 살아가길 바랍니다. 문제제기를 하는 목적입니다.

<김학의 구속 2 - 명함>

한때 관공서 고문변호사가 돼 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만들어진 여러 위원회에 참여하였습니다. 검찰개혁위원회, 경찰인권위원회, 미래교육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매번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명함을 주고받을 때입니다. 검찰총장 등 기관장으로부터 명함을 받기만 하고 제 명함을 주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명함을 만들지 않은 지 꽤 되었습니다. 그래서 명함이 없습니다(검찰과거사 진상조사단 활동을 하면서 대검찰청이 만들어 준 명함을 잠시 들고 다닌 적은 있습니다).

명함을 만들지 않은 이유는, 개인 역량에 한계가 있다는 이유로, 제 도움을 바라는 분들이 저를 찾기 어렵게 하면서, 제게 도움이 되는 유력인사들에게 명함을 드리며 관계를 갖는다는 것이 모순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얼굴이 명함’이라는 확신도 한 몫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김학의 사건을 조사하면서 명함의 위력(?)을 경험했습니다. 윤중천으로부터 압수된 많은 명함들입니다. 언젠가 여러 기자 분들로부터 압수된 명함 속 이름을 확인하는 전화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제 답변의 취지는 이랬습니다.

"명함이 나왔다는 사실이 별장으로 이어져 성 접대로까지 연결되고 있지 않느냐. 명함이 발견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리고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윤중천의 진술만으로 의혹을 제기하고 키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제 경우, 저와 가까운 사람의 명함은 거의 없고, 만난 적 있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의 명함이 많습니다.

김학의 사건에 등장하는 인사들 중 성 접대를 받은 사실이 있고, 이게 현 시점에서 확인가능하고 처벌할 수 있는 범죄라면 수사의 필요성을 이야기할 수 있지요. 그러나 근거가 부족한 가능성만으로 의혹을 부풀려가며 수사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게 맞는지 의문입니다.

근거를 찾는 수사를 하면 되는 게 아니냐 하실 수 있는데요. 이전에 쓴 글(5월 6일자 검증 2 – 특수강간)과 같이 윤지오 씨 진술을 근거로 특수강간을 수사의뢰하자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특정 혐의가 드러나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어떤 목적 하에 모욕을 주기 위한 의도도 있는 수사의 필요성 주장이라면, 이게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수사기록과 윤중천의 진술에는 이 정권 측 사람들도 등장합니다. 이 사람들을 별장, 성 접대로 이어지는 의혹의 중심에 서게 하는 것을 조심스럽게 생각해야 되듯이 이와 반대되는 정치적 성향의 사람들도 똑같이 신중하게 관련 의혹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요즘에는 명함 주는 것도 그렇고 강연장에서 웃으며 사진 찍는 것도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손가락 하트가 유행이고 때로 불끈 주먹도 함께 쥡니다. 이 사진들이 어떻게 활용될지 알 수 없습니다.

이 글을 보시고, 김학의 사건에 이 정권 측 인사도 등장한다는 기사를 쓰시면 안 되는 겁니다. 김학의 사건은 이름만 나와도 그 사람에게 가해지는 명예와 인격권의 침해가 너무나 크잖아요. 내가 이런 일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조심하고 또 조심합시다.

검찰총장으로부터 위촉장을 받을 때, 이렇게 싸가지 없이 받을 수 있냐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도대체 누가 총장이냐며 건방지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습니다. 아시아투데이 기사 사진입니다. 너무 억울했습니다. 오마이뉴스에서 저를 살려줬습니다. 전체적으로 제 모습은 이랬거든요. 오해는 쉽고 해명이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백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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