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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수사권 논란 때마다 ‘까마귀’가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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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흐지부지 65년사… 조정 시도 때마다 ‘배 떨어지듯’ 검경 간부 형사사건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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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경찰이 중앙집권제로 돼 있어서 경찰에 수사권을 전적으로 맡기면 경찰 파쇼가 될 수 있는데, 이는 검찰 파쇼보다 더 강력할 것이다. 그래서 범죄 수사의 주도권은 검찰이 가지는 게 좋지만, 장래에 있어서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시키는 방향으로 가는 게 좋겠다.” 1954년 1월9일 형사소송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에서 고 엄상섭 의원이 한 말이다. 일제강점기 말기에 검사가 된 그는 1949년 변호사 개업 뒤 1950년 민의원(국회의원에 해당)에 당선됐다. 검사 출신이지만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야 한다는 소신이 있었던 그는 자신의 발언이 60여 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유효할 줄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1954년 수사-기소 분리 첫 주장



이 공청회 이후 수사권 조정이 제대로 논의된 것은 2003년 참여정부가 출범한 뒤였다. 경찰에 독자적인 수사권을 주는 것을 공약으로 내건 노무현 정부는 2004년 9월 ‘수사권조정협의체’를 발족했다. 노무현 정부는 이 기구를 통해 수사권 조정을 시도했다. 하지만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검찰과 경찰의 극단적인 대립으로 생산적인 논의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두 기관의 갈등을 부채질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2005년 ‘법조 브로커 윤상림씨 사건’이다.

윤씨는 법원과 검찰, 경찰 고위 간부들과 친분을 과시하며 각종 사기 행각을 저질렀다. 검찰이 기소한 그의 범죄 혐의 건수만 17건이나 됐다. 그는 실제로 고위 인사들과 친분이 별로 없는데도 화려한 언변으로 피해자들을 속였다. 검찰이 압수한 그의 수첩에는 정·관계와 법조계 인사들의 이름이 적혀 있긴 했다. 하지만 신빙성은 크게 떨어졌다. 이름과 전화번호가 틀린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경찰이 윤씨 수첩에 검찰 고위 간부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것이 말썽이 됐다. 당시 총리실 주재로 수사권 조정을 논의하는 자리에 참석한 경찰 고위 간부는 검찰 고위 간부한테 “윤씨 사건을 우리한테 넘겨달라. 우리가 깔끔하게 수사할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검찰이 윤씨 수첩에 있는 검찰 고위 간부들을 의식해 ‘봐주기 수사’를 할 게 아니냐는 일종의 조롱인 셈이었다. 이 말을 들은 검찰 고위 간부는 버럭 화냈다. “어디서 엉뚱한 얘기를 듣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가.” 그는 경찰의 첩보 내용이 틀렸음을 지적하며 “경찰이 저렇게 허술한데 어떻게 수사를 맡기겠느냐”고 면박을 줬다. 경찰 간부는 얼굴이 벌게졌고, 회의장은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회의를 주재하던 총리실 관계자는 “오늘은 회의가 힘들겠다”며 회의장을 나갔다. 이후 수사권 조정 논의는 흐지부지됐다. 2005년 11월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했던 한 농민이 숨지는 사건이 일어나 당시 허준영 경찰청장이 사퇴했기 때문이다. 허 청장은 전임자들에 견줘 수사권 조정에 열성적이었다.

참여정부 때 ‘윤상림 사건’ 극한 대립



조현오 전 경찰청장에 대한 검찰의 뇌물 수사도 경찰 쪽에서는 수사권 조정 갈등 탓으로 해석한다. 조 전 청장은 건설업체 대표로부터 5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2015년 불구속 기소돼, 1심에선 무죄가 선고됐으나 지난 2월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현재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앞서 조 전 청장은 2018년 10월 이명박 정부 시절 경찰 댓글 공작을 지휘한 혐의로 구속됐다가 지난 4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는 수사권 독립에 가장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 경찰청장으로 꼽힌다. 그는 2011년 수사권 조정 업무를 책임지는 수사구조개혁팀을 수사구조개혁단으로 격상하고 책임자를 총경에서 경무관으로 한 단계 높였다. 그 결과 경찰의 ‘수사개시권’을 명문화한 형사소송법 일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성과를 거뒀다. 경찰의 오랜 염원인 수사권 독립을 확보할 길이 드디어 열린 듯했다. 그러나 검찰의 반발로 검사의 수사 지휘 범위가 ‘입건 전 내사’까지 확대되는 등 반격을 당했다. 경찰은 검찰 관련 비리 사건은 검사의 지휘를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수사하겠다는 요구안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처럼 검찰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와중에 조 전 청장은 경찰청에 범죄정보과를 신설해 검찰 비리를 수집하고 내사를 진행했다. 대표적인 사건이 전 용산세무서장 ㄱ씨 사건이다. 경찰은 현직 검찰 간부의 친형인 ㄱ씨가 검사들에게 골프 접대 등을 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경찰이 신청한 압수수색영장을 검찰이 모두 기각했고, 결국 ㄱ씨는 검찰에 의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검찰이 조 전 청장을 뇌물로 엮으려 했다는 게 경찰 쪽 주장이었다. 물론 검찰은 “ㄱ씨 사건과 조 전 청장 수사는 전혀 무관하다”고 경찰 쪽 주장을 일축했다.

경찰 “전 청장 검찰 수사는 경찰 길들이기”



최근 검찰이 강신명, 이철성 전 경찰청장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을 ‘경찰 길들이기’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둘 중 강 전 청장만 영장이 발부됐다. 이들은 2016년 4월 20대 총선 당시 경찰 정보 라인을 이용해 ‘친박계’ 정치인들을 위한 맞춤형 선거 정보를 수집하고 선거대책을 세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런 시각에 대해 검찰은 5월11일 출입기자들에게 문자를 보내 “영장 청구 시점을 임의로 조정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경찰의 자체 수사 결과를 송치받아 수사하는 과정에서 경찰 정보국의 총선 개입을 포착하고 실무급부터 조사를 진행했다. 중대범죄 사건 처리를 미룰 수도 없고 미룬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다. 공무원의 조직적 선거 개입은 민주사회에서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중대범죄이므로 장기간 국가에 헌신한 대상자들에 대해 부득이 구속영장을 청구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것’일 뿐 수사권 조정과 전혀 무관한 수사라는 것이다. 누구 말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두 기관의 지나친 감정싸움은 또다시 개혁이 무산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참고 문헌: 승재현, ‘경찰과 검찰 간의 합리적 수사권 조정에 관한 쟁점과 논의’, 2009년 5월5일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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