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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마음 근육' 없는 아이들, 우울증 1년새 40%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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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행복한 동네] [3] 청소년 정신 건강이 위험하다

어려서부터 학업 경쟁 내몰리고 핸드폰 사용 늘며 부모와 대화 단절

올 초 중학교 2학년 A양이 자기 방에서 손목을 그었다. 부모가 아무리 이유를 물어도 대답하지 않던 A양은 일주일쯤 지나 학교 상담교사에게 속마음을 털어놨다. "남자 친구가 헤어지재요. 기댈 데가 걔밖에 없는데….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상담교사 B씨는 "A는 평소에도 '부모가 공부만 하라고 닦달하지 날 이해를 안 해준다' 면서 우울해했는데, 유일하게 마음이 통했던 남자 친구가 헤어지자고 하니 정신적으로 갑자기 무너져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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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청소년들의 삶이 과거에 비해 물질적으론 풍요해졌지만 정신 건강에 대한 우려는 오히려 커지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국회 김승희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우울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은 19세 이하 아이들은 2015년 2만3771명까지 줄었다가 최근 다시 늘고 있다. 2017년 3만907명에서 작년 4만3739명으로 1년 새 1만2800명(42%) 늘었다. 19세 이하 불안 장애 환자도 2017년 1만9709명에서 지난해 2만3311명으로 급증했다.

◇'마음 근육'이 없는 아이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마음 근육'이 없는 아이들을 키워내고 있다"고 했다. 평소 운동으로 '신체 근육'을 키워야 병에 덜 걸리듯 일상에서 가족이나 친구와 깊이 마음을 나누며 스트레스를 풀고 정서적 안정감을 갖춰야 하는데, 어려서부터 학업 경쟁 등에 내몰려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회 변화도 심했다. 가족 해체 현상이 심해지고, 평범한 가족들조차 IT 발달 등으로 부모와 자식 세대가 공감하는 영역이 크게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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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이들이 작은 어려움에 부닥치면 극단적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홍대우 전 한국전문상담교사회장은 "요즘 아이들은 휴대폰에만 갇혀 친구나 부모와 대화도 거의 없고, 밖에서 뛰어놀며 스트레스를 풀 시간도 부족하다"면서 "평소 마음 근육을 키우지 못한 아이들은 조금만 힘든 상황이 생겨도 자해나 자살을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작년 학생들 사이에서 자해가 유행처럼 번진 것도 방송이나 소셜미디어에서 자해 관련 콘텐츠가 늘자 평소 마음이 불안한 학생들이 영향을 받은 탓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지역별로 큰 차이

본지가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함께 교육부가 매년 전국 초4, 중1, 고1 학생을 대상으로 전수(全數)조사하는 '2017~2018년 학생 정서 행동 특성 검사' 결과를 분석했더니 어른들이 관심을 기울여 지켜봐야하는 관심군 비율이 지역별로 크게 차이났다. 충남(8.9%·2년 평균)이 가장 높았고 강원(6.7%), 제주(5.6%), 경기(5.5%), 충북(5.3%) 순이었다. '대도시가 더 각박하다'는 어른들 고정관념과 달리 도(道) 지역에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많은 것이다. 되레 대도시인 울산(2.3%), 대전(3.1%)이 관심군 비율이 낮았다. 홍현주 한림대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는 "아이들의 정신 건강은 가정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데, 도 지역이 경제 상황이 침체되어 있고, 조손·다문화 가정 학생들이 많을 뿐 아니라 병원이나 상담 기관 같은 인프라는 부족해 문제가 있어도 쉽게 도움을 얻기 힘들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국가가 나서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많은 곳에 인프라를 늘리는 등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전국에 237곳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 중 130곳(55%)에서만 아동·청소년 대상 사업을 한다. 또한 교육부가 정서적으로 어려움 겪는 학생을 매년 검사로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후 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충남은 관심군 학생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지만, 이들을 상담 기관이나 병원으로 연계한 조치율은 100%로 전국 1위다. 반면 경기도는 조치율이 52%에 불과하다. 충남 아산교육지원청 위(wee)센터 유인선 실장은 "관심군이 많다는 걸 꺼려선 안 되고, 오히려 심각한 상황에 이르기 전에 발견해 도와줄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최근엔 제주 등 교육청이 직접 정신과 전문의를 채용하거나 인근 병원과 연계해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곳이 늘고 있다. 홍현주 교수는 "시도별 상황에 맞게 학생 정신 건강 돌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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