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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5 (수)

서울 배달원 100명 중 6명은 여자… 남탕서 주문 오면 어떻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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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이젠 여자도 철가방 든다

조선일보

음식 배달원이 프리랜서화되면서 여성 배달원도 늘고 있다. 예전엔 남성 배달원이 여성 손님을 성추행하는 게 문제였다면, 이젠 여성 배달원이 남성 손님에게 성추행을 당하곤 한다. / 주완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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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배달원으로 일하는 김지수(21)씨는 지난달 중순 배달 앱을 통해 들어온 짜장면과 탕수육 주문을 받았다가 곤혹스러운 일을 겪었다. 주문지가 인근 목욕탕의 남탕이었던 것. 김씨는 음식을 목욕탕 종업원을 통해 주문한 사람에게 전달하고 결제도 그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는 "음식 배달 일을 시작한 지 1년이 넘었는데, 웃지 못할 일이 종종 벌어진다"며 "모텔에 음식 배달을 갔더니 팬티 바람으로 나온 남성도 있었고, 연약한 여성이 고생한다고 팁을 주는 분도 있더라"고 말했다.

과거 '금녀(禁女)의 세계'로 여겨졌던 음식 배달 업계에 뛰어드는 여성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1인 가구의 급격한 증가에 호응한 배달 앱과 배달 대행 업체의 등장 덕분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배달 음식 시장 규모는 2017년 약 15조원에서 작년 20조원 규모까지 급성장했다. 배달원 수요가 폭증했음은 물론이다. 게다가 중국음식점 등이 배달원을 직접 고용하던 과거와 달리, 배달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면 누구나 개인사업자로 등록하고 배달 대행 업체를 통해 주문을 받는 간접 고용 방식이 업계 표준이 됐다. 자연스럽게 여성들에게도 배달 업계의 문호(?)가 열린 것이다.

'아무튼, 주말'이 서울 지역에서 영업 중인 배달 대행 업체 10곳에 문의해보니 업체에 등록된 배달원 총 768명 중 여성은 42명. 약 6%다. 배달원이 사실상 프리랜서처럼 되면서 여성도 오토바이 면허만 있으면 아무 제한 없이 배달 일을 할 수 있는 세상이다. 10년 넘게 중국 음식점을 운영한 이종원(55)씨는 "가게에서 직접 배달원을 쓰던 예전에는 여성들이 하고 싶다고 와도 오토바이 운전도 제대로 못할 거 같아 돌려보냈다"며 "이젠 배달 대행 업체에 외주를 주는 방식이니까 배달원이 남자든 여자든 배달만 잘하면 '장땡'이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음식 배달업의 특성상 일하는 시간대가 주로 저녁부터 밤 시간대라서 부업으로 하기 좋고, 일하는 시간이나 노동 강도 대비 수입도 좋은 편이다. 미용실 보조로 일하면서 작년 12월부터 배달을 부업으로 하고 있다는 이정현(22)씨는 "처음엔 용돈 벌이 정도로 생각하면서 가볍게 시작했는데 이제는 본업보다 더 많이 번다"며 "일이 몸에 익으면 오후 8시부터 다음 날 오전 1시 정도까지 5시간 바짝 일해서 6만~8만원 정도는 벌 수 있으니 잘만 하면 월 200만원 정도 추가 수입이 생기는 셈"이라고 말했다.

1인 가구주인 여성들은 여성 배달원이 늘어나는 걸 반기는 편이다. 남성 배달원이 음식을 주문한 여성 손님을 성추행하거나 스토킹하는 사건이 종종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배달 앱이나 소셜미디어에는 "불안에 떨면서 음식을 시켰는데 여성이 배달 와서 너무 좋았다" "배달원을 여성으로 지정할 수 있는 기능을 좀 만들어 달라"는 글이 많이 올라온다.

반대로 여성 배달원들이 음식을 주문한 남성 손님에게 성범죄를 당했다고 피해를 호소하는 일도 생겨나고 있다. 배달원이 당연히 남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속옷 바람으로 음식을 전달받으러 오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개인 번호를 묻거나 노골적으로 성추행하기도 한다. 이정현씨는 "새벽 2시쯤 족발 주문을 받아 원룸촌에 갔더니 50대 남자가 음식을 받으면서 '야밤에 일하느라 배고플 텐데 들어와서 같이 먹고 가라'며 손목을 잡은 일도 있었다"며 "나뿐 아니라 여성 배달원 대부분이 비슷하게 남성 손님한테 당한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달원들의 노동조합 설립을 추진하는 단체 '라이더유니온' 박정훈 위원장은 "배달원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업체를 통해 경찰에 신고할 수 있도록 하고, 배달 앱 이용자라면 블랙리스트에 올려 주문을 못하게 하는 등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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