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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트럼프, 對이란 강공책에 짜증…매파 볼턴 설자리잃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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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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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 베네수엘라를 상대로 한 '최대 압박'이 먹혀들지 않자 외교안보 참모진을 탓하며 전략 선회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동안 군사옵션까지 거론하며 대외 강경책을 주도해 온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 입지가 급격히 축소되는 분위기다. 워싱턴 일각에서는 사태가 조기에 해결되지 않으면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 보좌관에게 책임을 전가해 토사구팽할 가능성까지 제기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이란과 전쟁 가능성에 대해 "그러지 않기를 희망한다"는 짧은 답변만 내놓고 트위터에도 더 이상 이란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에도 이란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 패트릭 섀너핸 국방장관 대행에게 전쟁을 원치 않는다는 확실한 입장을 전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율리 마우러 스위스 대통령과 이날 회담에서 일종의 중재 역할을 부탁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중립국 스위스는 미국과 외교 관계가 단절된 상태인 이란에서 미국의 이익대표국 역할을 해왔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이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자"라며 행정부 내 균열이 없다고 주장했다. 군사행동으로 나아갈지, 협상으로 선회할지를 결정하는 사람은 참모진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것을 새삼 강조한 것이다. 대변인까지 진화에 나선 것은 주요 언론이 일제히 트럼프 대통령과 볼턴 보좌관 사이에 불협화음이 발생했다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CNN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매파 참모들이 이란과 전쟁이 가까이 온 것 같은 인상을 주는 데 대해 짜증을 내고 있다"고 전했다. 또 CNN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같은 매파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볼턴 보좌관과는 껄끄러운 관계이고, 접근법도 조금 다르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 군사적 대결을 부추기는 최고위 참모들에게 불만을 터뜨렸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볼턴 보좌관 사이에서 불화설이 나온 것은 베네수엘라 무장봉기 실패와도 연관돼 있다. WP는 지난 8일 트럼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사태와 관련해 볼턴 보좌관에게 짜증을 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튿날 "볼턴은 잘하고 있다"면서도 "나에게는 좀 더 비둘기파에 가까운 참모들도 있다"고 했다. 자신이 볼턴 보좌관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시각에 다소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발언이었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위기가 급격히 고조된 것도 지난 5일(현지시간) 볼턴 보좌관이 이란의 군사 도발 징후를 근거로 항모전단과 전략폭격기를 중동에 배치하고 있다는 성명을 직접 발표한 게 시발점이었다. 이어 지난 9일에는 볼턴 보좌관이 백악관 회의를 주도해 중동에 병력 12만명 파견을 검토했다고 NYT가 13일 보도한 바 있다. 이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가짜뉴스"라며 "필요하면 더 많은 병력을 보낼 것"이라고 반박했다. 볼턴 보좌관이 한걸음 앞서 나가는 인상을 주는 대목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볼턴 보좌관은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군사옵션 동원을 꺼리지 않는 슈퍼 매파이자 '네오콘(신보수주의)'의 후계자로 불리는 인물이다. 볼턴 보좌관은 트럼프 정부의 초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이던 마이클 플린이 러시아 스캔들에 연루돼 해임된 뒤 허버트 맥매스터와 나란히 면접을 봤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민 맥매스터가 낙점됐지만 불화 끝에 물러난 뒤 볼턴의 차례가 왔고, 조타수가 바뀐 뒤 외교정책 방향은 빠르게 전환됐다.

그가 작년 4월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에 취임한 뒤 불과 5일 만에 시리아에 대한 미군의 공습이 단행됐고, 그해 5월에는 이란과의 핵협정(JCPOA)이 파기됐다.

짐 매티스 전 국방장관, 존 켈리 전 비서실장 등 '어른들의 축'이 사라진 뒤로 볼턴 보좌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귀를 사로잡고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볼턴 보좌관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부 국제안보담당 차관과 군축담당 차관을 지냈다. 이때가 바로 9·11 테러와 이라크전쟁이 벌어진 시기다. 당시 군사력 동원을 강력히 주장하던 '네오콘'의 선봉인 딕 체니 부통령이 바로 볼턴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부시 정권 당시 권부를 장악했던 네오콘은 이란이 다시 친미국가가 된다면 궁극적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이 해소되고, 중동의 도미노식 민주화도 가능하다고 믿었다. 더불어 미국이 세계 석유시장의 헤게모니도 장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당장 볼턴 보좌관을 경질할지는 미지수다. 트럼프 정부의 '인물난'을 감안하면 마땅한 대안을 찾기도 어려운 처지이기 때문이다. CNN을 비롯한 다수 언론은 최근까지도 트럼프 대통령과 볼턴 보좌관이 북한과 베네수엘라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이란 문제에서는 의견 일치를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볼턴 보좌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을 미리 헤아려 움직였다는 시각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스러운 기질과 2인자를 허용하지 않는 성격을 잘 아는 볼턴 보좌관이 이란 사태에 대해 일단 자신의 주장을 굽히고 눈치를 살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워싱턴 = 신헌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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