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5 (토)

[키우며 자라는 아빠] 아이가 즐거워야? 어른도 즐거워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준이가 공동육아 캠핑에서 케이크 위 초콜릿 장식을 차지하기 위해 모닥불 앞에서 춤을 추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육아가 되려면 제가 재밌어야합니다. 그래서 놀이도 제가 재밌도록 유도하죠(웃음).”

윤이(9), 준이(7)의 아빠인 설민씨(38)는 아이들과 같은 놀이를 하더라도 함께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모처럼 미세먼지가 없는 날, 등산을 가려는 아빠 설민씨와 엄마 송영주씨(38). 아이들은 등산에는 영 관심이 없는 눈치다. 설씨는 이럴 때마다 아이들에게 ‘호객행위’를 한다. 아빠와 엄마 아이들까지 각자 소원을 적은 카드를 서로 숨기고 찾는 ‘보물찾기 등산’을 아이들에게 제안한다. 친구들과 놀겠다던 아이들은 어느 새 먼저 옷을 갈아입고 현관에 선다. 등산을 하며 아빠와 엄마는 아이들의 카드를, 아이들은 아빠·엄마의 카드를 숨겼다. 보물찾기 끝에 아이들은 ‘500원짜리 장난감’과 ‘원하는 예능 한 편 보기’를 얻었다. 아빠는 아이들이 해주는 ‘마사지 10분’을 찾아 등산 후 마사지로 피로를 풀었고, 엄마는 ‘혼자만의 시간 갖기’로 등산 후 방에서 홀로 드라마를 보며 힐링의 시간을 가졌다.

경향신문

설씨와 공동육아 가족들이 피구를 하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설씨는 기자의 방문을 빌미로 “준이, 버섯 먹으면 준이 버섯 먹었다고 기사 나오겠는데?”라며 준이에게 버섯을 먹이려고 시도했다. 윤이는 듬직하게 버섯을 먹었고 준이는 꾸역꾸역 버섯을 먹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저만 재밌으면 아이들 흥미가 떨어지죠. 그 중간지점을 찾고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식당에서 밥을 기다리는 시간에도 영수증을 찢어 퍼즐을 하고, 가족끼리 나선 인사동 나들이에서는 팀을 나눠 둘러보고 온 것을 이야기하며 가족만의 알쓸신잡을 만들기도 했다. 아이들도 함께 재밌기 위해 설씨가 하나 둘 고민한 결과물이다. 설씨는 그런 고민들을 하나 둘 블로그에 적었고, 그런 글들이 쌓여 육아서를 내게 됐다. 육아서를 바탕으로 강연을 하기도 하고, 비슷한 고민을 하는 아빠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공동육아도 하고 있다. “아빠들이 서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안하기도 하고,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았던 것 중에 반응이 좋은 것들을 공동육아 모임에서 함께 하기도 합니다.” 아빠들은 의논하여 아이들과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제비뽑기로 가족끼리 구성원을 섞어 팀을 만들어 실내컬링을 즐기기도 하고, 드론전문가 지인을 초대해 아이들과 함께 드론을 조립하고 날리는 시간도 가졌다. 설씨는 공동육아 가족들과 함께 한 2박 3일 캠핑에서 보물찾기 게임을 시도해 봤다. 아이들이 아빠와 엄마에게 허락을 받은 내용으로 적은 소원카드와 보물 찾기는 초등학교 1학년·3학년 ‘남자’아이들 8명의 시선을 금새 사로잡았다.

경향신문

설씨가 윤이(오른쪽 두번째)와 준이와 함께 소원을 적을 카드를 정리하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설씨가 아이들이 적은 소원 카드를 숨기고 있다. ‘너무 잘 보이는 곳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설씨는 “너무 어렵게 숨기면 아이들의 흥미가 떨어지더라구요”라고 답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아이들이 소원카드를 확인하는 동안 카드를 ‘꽝’카드를 찾은 준이가 실망하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공동육아에서 저희끼리 규칙을 정하기도 했습니다. 누구의 아빠나 엄마와 수직적인 관계를 벗어나 모두에게 친근하고 수평적인 관계를 위해 엄마·아빠들이 불리고 싶은 별명을 정해오도록 했죠. 저는 아이 아(兒)자에 있을 재(在)를 써서 ‘아재’라고 제 별명을 소개했죠. 제 마음 속에 아이 같은 동심이 있다는 뜻입니다.(웃음)” 공동육아 모임에서는 모임 때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 규칙도 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과정 속에서 아이들에게 배울 수 있는 부분들을 고민하면서 나온 규칙이다. 설씨는 “교육관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다보니 스트레스나 불안감도 적고 서로 힘을 얻기도 한다”며 공동육아의 장점을 설명했다.

경향신문

공동육아 아빠들이 ‘가족 대항전’을 준비하며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다. 아빠들이 준비한 게임은 냄비를 네 줄로 묶어 물을 담고 컵에 물을 많이 채우는 가족이 승리하는 게임이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설씨가 게임진행자로 냄비에 물을 채우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설씨와 공동육아모임 아빠들이 아이들 앞에서 직접 게임 시범을 보이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설씨와 부인 송영주씨, 윤이, 준이가 냄비에 물을 담아 컵에 옮기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캠핑 와서 보통은 어른들은 술 한잔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놀죠. 하지만 저희가 조금만 고민해서 모두 재밌게 놀 수 있는 캠핑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죠.” 함께 첫 캠핑을 나온 이날도 아빠들은 의기투합했다. 아이들과 새로운 동네탐험을 나서고, 피구를 하며 모두가 즐거울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 아빠들은 엄마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즉석 게임을 만들어 가족들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냈다. 설씨는 “이런 간단한 게임이나 코끼리코로 제자리돌기 한 후 승부차기, 아빠 팀 대 엄마, 아이들 연합팀의 축구처럼 간단한 게임이라도 함께하면 저도 즐겁고 아이들도 즐겁습니다”며 “어떤 것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다보면 ‘내가 애들에게 뭘 해줄 수 있을까’ ‘내가 잘하는게 뭘까’하며 고민을 하게 됩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준이가 보물 1호인 포켓몬스터 스크랩북을 캠핑장에서 잃어버렸다. 설씨는 “스크랩북을 제일 잘 아는 건 준이니까 준이가 텐트를 돌면서 설명하고 한 번 물아보자”며 준이의 손을 이끌고 텐트를 돌아다녔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바깥에는 이렇게 노란색이 좀 있고요...” 준이가 어색하지만 간절한 목소리로 잃어버린 포켓몬스터 스크랩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설씨는 그 순간을 휴대전화에 남겼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공동육아 가족들 텐트 중 한군데서 스크랩북을 찾은 준이가 다행스러운 눈빛으로 스크랩북을 보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설씨가 육아를 하며 중요하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 중 하나는 ‘재미’다. 아이들과 놀이와 게임을 하는 것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다 ‘재미’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워낙 승부욕이 강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게임을 할 때마다 우리가 게임을 왜 하고 있는지 설명을 하죠. 단숨에 바뀌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우리는 게임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다’라고 말을 해줬죠. 아이들에게 응원점수나 끝까지 게임을 포기하지 않으면 주는 노력점수 등을 주기도 하면서요.” 설씨의 노력 덕분에 승부에만 집착하기도 한 아이들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방과 후 교실에서 춤을 가장 잘 춘 아이에게 투표를 한 적이 있었는데, 윤이가 누가 봐도 잘 춘 아이가 아니라 잘 못 춘 아이를 선택했다고 하더라구요. 나중에 선생님이 물어봤더니 윤이가 ‘그 아이가 춤을 가장 즐기는 것 같아서 그랬어요’라고 답했다고 하더라구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더라구요.” 윤이뿐만 아니라 준이도 진정으로 게임을 즐기게 되었다. 가족끼리 한 부루마블 게임에서 윤이는 파산이 확정되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며 살아나려고 노력했다. 결국 게임은 준이가 이겼지만 준이가 말했다. “게임은 제가 이겼지만, 게임의 진짜 주인공은 형이에요.”

경향신문

캠핑의 마지막날, 설씨와 윤이·준이가 캠핑에서 보낸 일을 그림으로 그렸다. 아빠·남편·작가·강사·회사원인 설씨를 보며 윤이가 말했다. “아빠는 참 열심히 사는 어른 같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설씨는 자신이 육아에 집중할 수 있던 것에 대해 아내의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사실 집안 일에 신경을 많이 못써 아내에게 미안한 부분이 많죠. 하지만 아내가 오히려 아이들과 더 놀아주고, 많은 시간을 보내라고 해줬죠. 아내에게 많이 고맙고 미안합니다.” 육아를 하면서도 설씨는 아내와의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노력한다. 각자 퇴근 후에는 아내와 함께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서로의 안부를 확인한다. “아이들이 찾을 때도 아내와 이야기하는 중이면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아빠와 엄마가 충분히 이야기하지 못한 채 너희들과 놀아주면 아빠 엄마가 피곤한 상태로 너희와 놀아줄 수밖에 없어. 너희가 조금만 기다려주면 아빠 엄마가 30분까지 이야기를 끝내고 놀아줄게’라고 말하면 아이들도 수긍하고 저희를 찾지 않더라고요.” 설씨는 지속가능한 육아의 원동력 중 하나로 ‘부부끼리의 대화와 관계’로 꼽았다. “육아를 하다보면 아이 이야기밖에 안 하게 되는데, 그러면 배우자에 대한 관심이 없어지고, 외로워지는 거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계속 서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게 좋은 육아의 바탕인 것 같습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