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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일사일언] 제니 아줌마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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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안소정 '온천 명인이 되었습니다' 저자


어느 날 메시지가 왔다. 봄이 가기 전에 꼭 만나고 싶다며, 하룻밤 묵어가면 좋겠다고 했다. 다정한 마음에 이끌려 낯선 이의 집에 다시 발을 들이게 됐다.

초대장 발신인은 산골에서 조그마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제니 아줌마였다. 2년 전 여름, 우리는 손님과 주인으로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때 아주머니는 숙소 안내를 마친 뒤 이렇게 물었다. "저녁은 먹었어요?" 대책 없이 굶고 온 손님에게 아주머니는 든든한 밥상을 차려주었다. 고마워서 뭐라도 보답하고 싶었다. 마침 구석에 놓인 오디오가 눈에 띄었다. "음악 들으실래요?" 아줌마가 좋아하는 음악을 휴대전화로 틀고, 오디오에 연결했다. 방 안 가득 선율이 흘렀다. 우리는 가만히 노래를 들었다. 말 없이도 마음이 통하는 마법 같은 밤이었다.

"환영 선물이에요." 다시 찾은 아주머니네 식탁 위에는 말발도리 꽃이 하느작거리며 피어 있었다. 나를 기다리며 꺾어 왔다는 자그마한 들꽃이 세상 어느 것보다 아름다웠다. 그날 꽃을 곁에 두고 밤 깊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순셋과 서른 하나, 전혀 다른 삶이지만 대화는 놀랍도록 매끄러웠다. 몇몇 말에는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아무렴 어때, 좋은 일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말고" "더 가질 필요 없지, 이대로도 좋아" 그리고 "밥이 참 맛있네".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이 위로받는 시간이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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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종종 생각지 못한 인연을 맺어주곤 했다. 나를 둘러싼 익숙한 배경에서 떠나자, 나이며 직업은 사귐에 중요한 게 아니란 걸 깨닫게 됐다. 틀에 갇힌 마음을 자유롭게 풀어두니 자연스레 좋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지금 기분이 어떤지 얘기를 나누기만 해도 서로를 알기엔 충분했으니까. 덕분에, 올봄은 말발도리의 은은한 향을 배운 계절로 기억될 것 같다.




[안소정 '온천 명인이 되었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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