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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아탈리 칼럼] 프랑스 음식이 프랑스인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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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문화는 프랑스 정체성 핵심

공장 음식과 혼밥 풍조 물리쳐야

중앙일보

자크 아탈리아탈리에아소시에 대표 플래닛 파이낸스 회장


한 나라의 정체성은 영토·언어·역사·세계 문화에 기여한 것 등으로 구성된다. 프랑스는 이 모든 영역에서 고유함을 발현하고 있다. 독자적인 영토, 이성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 1000년 전부터 세계적으로 중대한 사건의 한가운데를 관통해 온 역사, 예술 전 분야에 대한 공헌이 있다. 그렇기에 나는 ‘프랑스의 우수성’에 대해 중도를 아는 감각, 이성에 대한 열정, 취향 존중 등으로 정의한 적이 있다.

그러나 세상의 어떤 국가도 그 우수성을 마냥 간직할 수는 없다. 프랑스의 우수성도 세계 문화 발전이나 역사에 참여한다는 거창한 의식 없이 그저 일상 속에서 그 우수성을 향유하며 그것을 보호하고 지켜줄 수 있는 보통의 국민 없이는 유지되지 못할 것이다.

프랑스 대통령이 ‘프랑스인으로 사는 법’이라고 멋지게 칭한 프랑스의 우수성을 살리는 기술은(정체성을 지키려는 모든 다른 국가와 지역에도 이 기술은 존재한다) 여러 행동 양식을 포함한다. 그런데 내가 볼 때 프랑스 음식보다 프랑스인으로 사는 법을 잘 보존하도록 하는 것은 없다. 프랑스 음식이야말로 프랑스가 보유한 모든 탁월함을 떠받치는 힘이다. 프랑스 음식이야말로 프랑스인이 지키고 발전시켜야 할 대상이다.

프랑스 미식 문화는 최소 400년 전부터 인위적인 맛을 멀리하고, 신선한 재료만을 사용하며, 본래 재료의 풍미를 없애는 진한 소스와 양념을 쓰지 않는 것으로 정의됐다. 프랑스는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한 적이 없음에도(프랑스 이전 요리 강국이었던 중국, 아랍권 국가, 이탈리아는 그랬다) 전 세계로부터 미식 모델로 인정과 찬사를 받고 모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심지어 네덜란드인·영국인·미국인들이 차례로 세계의 경제·정치권력을 독차지했던 때에도 말이다.

프랑스 미식 문화는 단지 먹는 것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식사하며 보내는 시간, 식사 중 이루어지는 대화, 식사하는 방식까지도 포함된다. 프랑스에서는 연애도, 가족 관계도, 사업도 음식 없이는 이뤄지지 않는다. 일찍이 프랑스인들은 농촌 지역에 사회를 일구었다. 바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점으로부터 멀어지는 일이었으므로 손해가 컸다. 그 덕에 바다에서의 승리는 다른 나라들이 누렸다. 농촌에서는 시간이나 자연의 산물에 다른 의미가 부여된다. 바로 그와 같은 식사 자리와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를 기반으로 건축에서 과학까지, 문학에서 정치까지 프랑스가 탁월함을 보이는 전 분야가 구성됐다.

오늘날 프랑스가 음식과 삶의 인위적인 변형에 맞서 다른 나라들보다는 더 잘 싸우고 있기는 하지만 프랑스인으로 살아가는 법은 우리 삶을 부수는 산업 시스템 앞에서 위협받고 있다. 산업 시스템은 갈수록 공장식으로 만들어진 재료를 이용한다. 보다 더 짧은 시간에, 타인과 나눔의 여지가 점점 더 줄어든 식사를 강요한다.

그러니 프랑스인으로 사는 법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음의 단순한 원칙을 지킬 필요가 있다. 건강 문제로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되도록 자기 집으로부터 150㎞ 이내에서 생산된 신선한 재료로 차린 식사를 한다. 혼자서 식사하지 않는다. 빨리 식사하지 않는다. 수입의 더 많은 부분, 자기 시간의 더 많은 부분을 조리와 식사에 투자한다. 식사 시간을 대화와 창조적 활동에 활용한다. 우리 식사가 다음 세대에 미칠 영향을 생각한다. 이상이 내가 ‘긍정 미식’이라고 이름을 붙인 음식 먹는 법이다.

이것은 일회성 행사가 아니다. 태초부터 음식과 언어와 문화와 권력은 한 데 섞여 있었다. 식사의 법도를 보존함으로써 우리는 프랑스의 우수성을 전 영역에 걸쳐 제대로 수호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우리가 전 세계에 기여하는 길이도 하다.

자크 아탈리 아탈리에아소시에 대표·플래닛 파이낸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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