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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히끄·냇길이·호호브로… 제주 작은 마을에 동물 스타가 모여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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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어느새 책 세 권이 된,‘마감 요정’들의 제주살이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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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동쪽의 조용한 마을, 오조리에는 동물 작가들이 산다. 각각 게스트하우스 ‘스테이오조’와 ‘슬로우트립’을 운영하는 이신아, 한민경씨, 일러스트레이터 이연수씨는 유기견과 유기묘를 가족으로 맞아 삶의 방향이 조금씩 바뀌었다. 세 사람은 이런저런 인연으로 연결돼 있긴 했지만, 동물을 키우면서 서로 만날 일도, 할 얘기도 더 많아졌다. 이들의 반려동물 히끄, 냇길이, 호이·호삼이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 스타이기도 한데, 거기 쌓인 이야기를 모아 낸 책이 ‘히끄네집’(이신아), ‘너와 추는 춤’(이연수), ‘호호브로 탐라생활’(한민경)이다. 돌담이 쌓인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걸으면 5분 내외로 닿는 거리에 사는 세 사람은 각자의 반려동물을 또 다른 이웃으로 여기며 산다. 지난달 29일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스테이오조에서 세 사람을 만나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세 분 모두, 각자의 반려동물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어요. 책 한 권 쓰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함께 사는 동물들은 어떤 도움을 줬나요?

이신아(신아): 히끄를 ‘마감 요정’이라고 부르기는 하는데, 사실은 도움이 안 돼요. 2주에 한 번 ‘애니멀피플’에 칼럼 마감을 하는데, 히끄가 키보드 누르고 다니고, 제가 화장실이라도 다녀오면 의자를 대신 차지하고 앉아 있고 그러죠.

이연수(연수): 냇길이도 그래요. 만화 그리려고 앉아 있으면 ‘날 쓰다듬어라’ 하듯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죠. 그럴 때, 마음이 바빠서 “넌 잠깐 기다려”라고 말하고 제 일에 집중하다 보면 문득 딜레마가 생기는 거죠. 냇길이 땜에 만화를 그리는 건데, 정작 냇길이가 지금 이 순간 원하는 건 해주지 못하니까요.

한민경(민경): 얼마 전 지인이 제가 책을 낸 것 보고, “나도 기록을 좀 남겨둘 걸, 아쉽다”고 말했어요. 생각해보니 많은 사람이 동물을 키우는데, SNS에 기록을 남기고, 그 가운데서도 책 제안을 받을 정도로 이름이 알려지는 아이들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아요. 감사할 일이죠. 저는 책 작업하면서 이 친구들에게 어떤 도움을 받았다기보다 끝나고 나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어요. 책이 나오고 나서 누구보다 우리 집 개들인 호이, 호삼이에게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너희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어'라고 말하고 싶은데, 이 친구들이 그 내용을 알아볼 수 없잖아요. 같이 만든 기록인데, 공유를 못 하니까 좀 속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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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그것도 오조리라는 작은 동네에서 SNS 동물 스타들이 나오고,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책이 나온다는 것이 이례적인 것 같아요. 오조리가 동물과 살기에 특별히 좋은 점이 있나요?

민경: 개 키우기 좋은 환경이에요. 산책하기 좋은 길이 많거든요. 제주도 곳곳이 너무 많이 개발되고 있어서, 다른 동네는 마을이라고 해도 신축 건물이 들어선 곳이 많아요. 그런데 여기는 원래 이렇게 생긴 오래된 마을이다 보니 외지인도 적고, 물론 저희도 외지인이긴 하지만 낯선 사람이 적고 조용하고 좋아요. 한쪽은 해안 마을 같고 한쪽은 조용한 호수 마을 같은 분위기도 좋고요.

세 분이 가끔 공동육아도 한다고요.

민경: 냇길이네는 하우스메이트가 있어서 히끄네와 제가 주로 공동 육아를 하는 편이에요. 육지에 가거나 여행 갈 때, 미리 상의하는 편이에요. 봐줄 수 있는 사람의 양해부터 구하고 비행기 표를 끊어요. 저는 히끄네에 밥을 주러 오는데, 옆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혼자 집 지키는 동물들에겐 위안이 되는 것 같아요. 제가 밥 주러 오면 히끄가 처음에는 아는 척도 안 하는데, 속마음은 안 갔으면 싶은 건지 밥 먹다 제가 있는지 뒤돌아보곤 하거든요. 화장실도 치워주고 낚시 놀이도 하기도 하고, 그러고 가면 저도 맘이 좀 편하죠. 저희 개들은 실외 배변을 해서 돌봐주는 사람이 하루에 3번은 와야 해요. 길게 보름까지 신아씨가 맡아준 적이 있어요. 그래서 한번은 훈련소에 맡기려고 한 적도 있었는데, 신아씨가 ‘보내지 말라고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다’고 해줘서 정말 고마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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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데, 동물과 손님들이 잘 지내는 비결이 있나요?

신아: 우선 저희가 먼저 조심해야 해요. 숙소 구조를 잘 모르는 손님의 부주의로 동물이 놀라거나 탈출할 일이 없도록 조심하는 거죠. 그런데 히끄는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혼자 손님 방에 들어가서 물건에 꾹꾹이(고양이가 새끼 고양이 시절처럼 엄마 젖을 빨며 앞발로 꾹꾹 누르는 듯한 행동을 하는 것)를 하고 있기도 하고요.

민경: 호이가 무는 습관이 있는 개라 늘 조심해야 해요. 게스트와 호의적으로 지내라는 뜻으로 이름을 호이라고 지었는데 적의에 가득 찬 개가 온 거죠(웃음). 많은 사람이 들고 나는데, 개들에게도 늘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아서 가급적 손님과 접촉을 거의 하지 않아요.

대신 오조리 러닝클럽을 꾸려서 같이 산책을 하는 거군요.

민경: 아침 7시45분에 저희 숙소 손님들과 동네 한 바퀴를 함께 걸어요. 숙소에 묵는 분들 가운데 10명까지 선착순으로 받는데, 보통은 서너명에서 많을 땐 7명 정도고, 1명이 신청해도 출발해요. 바닷길과 동네 골목 등 3~4가지 코스가 있어요.

러닝클럽의 규칙 같은 것도 있나요?

민경: 특별한 건 없고, 비가 와도 함께 달린다는 것, 그리고 사람 속도가 아니라 개 속도에 맞춰 움직이는 거예요.

이전에 동물을 길렀던 경험이 있나요?

연수: 서울 본가에서 보미라는 강아지를 키웠는데, 제주에 오기 얼마 전에 떠났어요. 처음 키운 개였는데,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모르고 키워서 미안한 것이 많죠. 그때를 교훈 삼아 냇길이에게 잘해주려고 애써요.

민경: 항상 개와 함께 있었던 것 같아요. 기억나지 않는 어렸을 적 사진을 봐도 제 키만 한 개들과 함께 있고 그랬죠. 당연히 같이 사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인생에서 만난 많은 동물 중에 어쩌다 이 친구들과 만나게 되었을까, 생각해본 적도 있나요?

신아: 두 분에 비해 저는 동물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어요. 지금도 히끄를 기르지만 다른 집 개, 고양이를 봐도 막 흥분하고 그런 편이 아니에요. 그래서 히끄는 그런 걸 초월한, 저에게 특별한 존재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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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동물과 함께 살면서, 길에 다니는 동물을 보는 시선에도 변화가 생겼나요?

민경: 두 마리를 키우면서 다른 개도 눈에 들어오니까, 제주에서는 정말 떠돌이 개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알게 됐죠. 들개와 유기견도 많고 주인이 있더라도 혼자 돌아다니는 개도 정말 많아요. 지금 '캐롤'이라고 이름 붙인 작은 백구를 임시보호 중인데, 제주의 떠돌이개 문제는 개인 구조자가 할 수 있는 선을 넘어 있어요.

연수: 시골 개들은 대부분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기르잖아요. 아마 잘 몰라서 그런 탓도 있을 거예요. 우리가 개와 교감을 나누고 애정을 주고받은 게 얼마 되지 않았잖아요. 그러다 보니 1m 줄에 묶여서 아무런 정서적 교류도 없이 밥만 딱 주다가 금방 팔아버리는 마을이 있는가 하면, 개가 지나가면 아는 척해주고 반가워해 주시는 분들이 많은 동네도 있고요. 이런 걸 보면 시골도 좀 변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캠페인 같은 걸 한다면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주/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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