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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생생확대경]"사이좋게 이끌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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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됐던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빈소(사진=한진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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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웬만한 대기업치고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형제간 다툼 한 번 없던 곳이 없다지만, 한진그룹이어서 더 눈살이 찌푸려졌다. 지난달 8일 별세한 고(故) 조양호 회장이 평생을 일궈놓은 한진그룹의 위상을 눈꼴사나운 갑질로 바닥까지 떨어뜨렸던 현아·원태·현민 삼남매가 상을 치른 지 한 달도 안돼 회사의 경영권을 두고 신경전을 벌인다면 누가 공감할 수 있을까.

조 전 회장이 별세한 뒤 8일 만에 장남인 조원태 사장이 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 회장에 올랐을 때만 해도 이런 상황은 예상 못했다. 당시 한진그룹은 조 사장의 한진칼 회장 취임을 두고 “그룹 경영권을 확보한 것”이라고 밝혔다.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차녀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도 동의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조 전 회장이 유언으로 “가족과 협력해 사이좋게 이끌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경영권 승계는 잡음 없이 마무리된 것처럼 보였다.

삼남매의 갈등은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발표로 드러났다. 한진그룹이 공정위에 자료를 내지 않아 동일인을 지정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동일인(총수)은 기업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인물로, 삼성그룹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각각 동일인이다. 특히 한진그룹이 “조 전 회장 작고 후 동일인을 누구로 할지에 대한 내부적인 의사 합치가 이루어지지 않아 동일인 변경 신청을 못 했다”고 소명하면서 사실상 경영권 분쟁을 시인했다.

두 차례의 자료 제출 연기. 그리고 더 이상 연기가 불가능한 최후의 데드라인(15일)을 이틀 남겨둔 13일. 한진그룹은 드디어 조 회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고 조 회장을 중심으로 계열사 범위를 확정한 자료를 제출했다. 공정위가 직권으로 동일인을 지정하고, 특수관계인을 고발하는 최악 사태는 가까스로 모면한 것이다. 하지만 한진그룹은 조 전 회장이 보유한 한진칼 지분(17.84%)을 어떻게 승계할 지에 대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점은 석연치 않다.

삼남매는 한진칼 지분을 2.3% 정도씩 거의 비슷하게 보유하고 있다. 누구도 우세하지 않다는 건 누구라도 총수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었던 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설 가능성은 애초에 적었다. 결국 아버지인 고 조 전 회장 지분을 장남이 상속하는 데 대한 ‘묵직한 대가’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들의 갈등이 봉합되더라도 곱게 볼 수 없는 이유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4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기억이다. 암으로 투병하신 어머니는 임종 직전 내 손을 꽉 쥐고는 무슨 말인가 하려 했다. 하지만 산소호흡기를 꽂고 있어 아무 말도 못 한 채 눈을 감으셨다. 끝내 듣지 못한 마지막 한 마디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 한켠이 먹먹하고 아려온다. 조 전 회장이 세상을 떠나기 전 온 힘을 다해 내뱉었을 마지막 한 마디. 너무 당연해서 흘려 들은 건가. 아니면 사이좋을 생각이 없었던 건가. 안타까워 얘기한다. 제발 “사이좋게 이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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