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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 (금)

동반자살 아닌 타살… 아이들은 부모도, 죽음도 선택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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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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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정 비관 부부, 자녀와 극단 선택
‘자식 생사 부모에 달렸다’ 인식서 비롯
7년간 230건 추정… 정확한 통계 없어
“가족 보호할 사회적 안전망 갖춰야”


생활고 등을 비관해 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잊을 만하면 터지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동반 자살’로 묘사해 동정론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은 올해 언론 보도로 알려진 것만 7건이다. 비극이 되풀이되는데도 같은 유형의 사건이 매년 얼마나 발생했는지 공식 통계조차 없다. ‘부모가 자녀 생사를 좌우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바꾸고 적극적인 예방책을 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경찰에 따르면 전날 경기 시흥에서 네 살, 두 살 두 자녀와 함께 숨진 30대 부부는 생활고 탓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남편 손모(34)씨가 개인회생을 신청했으나 채무 등 경제 사정이 나아지지 않아 가족과 함께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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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도 세 자녀와 함께 목숨을 끊으려다가 자녀 한 명을 숨지게 한 40대 남성이 징역 5년, 아내가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에 따르면 부부는 사업 실패로 형편이 어려워지자 아홉 살, 일곱 살 쌍둥이 등 세 자녀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자살을 시도했다. 또 3월에는 경기 화성과 부산, 충남 공주에서 30대 부모가, 2월에는 전남 여수에서 50대 부모가 10대 자녀를 데리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1월 서울 강서구에서는 10대 자녀 두 명과 40대 부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제난을 비관한 부모가 자녀들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자녀를 부모와 분리된 개인으로 보지 않는 사고방식 탓에 비극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뒤 자살하면 “오죽하면 부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갔겠느냐”는 식의 동정론이 일기도 한다. 신은정 중앙자살예방센터 부센터장은 “자녀 살해는 자녀의 의사에 반하는 명백한 범죄”라면서 “동반자살이 아닌 ‘자녀 살해 후 자살’로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자녀 살해 범죄의 정확한 현황은 공식통계가 없어 파악할 수 없다. 부모를 해치는 존속 살해와 달리 자녀 살해는 일반 살인으로 분류된다. 2014년 서울경찰청 소속 정성국 박사 등이 경찰 수사 자료를 분석해 쓴 논문에 따르면 자녀 살해는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총 230건으로 추정돼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이 중 부모가 자살한 비율은 44.4%였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자녀 살해 후 자살은 가장이 다른 가족의 생명을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여기는 가부장주의에 뿌리가 있다”며 “국가도 이런 인식을 인정하기 때문에 자녀 살해 범죄 관리에 소홀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자녀 살해를 단순 자살이 아닌 심각한 아동 학대의 문제로 보고 파산 등 위기 가정의 아이들을 적극 발굴해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부센터장은 “부모들이 자신이 죽고 나면 자녀도 제대로 살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비관해 범죄를 저지르는 만큼 가족을 보호할 사회적 안전망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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