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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야권, 석달 공들인 마두로 축출 쿠데타… 거사 이틀전 정보 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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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장관·대법원장·대통령 경호사령관 등 포섭… 美도 지지

과이도, 서두르다가 실패… 여야 지지세력은 맞불 시위 계속

현대사 최악의 국가적 빈곤과 인권 유린 사태를 초래한 베네수엘라의 사회주의 독재정권을 몰아내려는 시도가 목전에서 좌절됐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겨냥한 반정부 시위 '해방 작전' 이틀째인 1일(현지 시각), 야권을 이끄는 후안 과이도 베네수엘라 국회의장 겸 임시 대통령은 수도 카라카스의 가두연설에서 "앞으로 계속 군인들을 설득해 우리와 뜻을 함께하도록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쿠데타가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향후 기회를 다시 노리겠다는 이야기다. 외신과 전문가들도 1일 "독재 정권을 국민의 힘으로 무너뜨리려는 꿈이 일단 무산됐다"고 했다.

이번 쿠데타는 전날인 30일 새벽 과이도 의장의 쿠데타 선언과 함께 수천명이 참가한 반정부 시위로 시작, 과이도를 지지하는 군인과 마두로 측 군부의 총격전으로 이어졌다. 최근 3개월간 계속된 베네수엘라의 '두 개의 정부' 대립 사태가 어떤 식으로든 종결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2일 현재 반정부 시위는 더 확대되는 것도, 완전히 잦아든 것도 아닌 교착 상태에 빠졌다. 미 싱크탱크인 워싱턴중남미연구소 데이비드 스마일드 연구원은 "군인·친정부 인사들의 대규모 이탈이 일어나지 않았고, 반정부 시위 참가자도 수천명에 그쳤다는 점에서 명백한 실패"라고 말했다.

이번 쿠데타는 사실 막후에서 상당한 외교적·물리적 준비 끝에 시도된 것이었다. 워싱턴포스트(WP)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일 "그간 베네수엘라 야권이 상당한 물밑 작업을 했으며, 미국 정부도 이번만큼은 쿠데타가 성공할 것으로 확신했다"고 보도했다.

다수의 미 고위관리들이 WP 등에 밝힌 바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야권은 지난 2월부터 블라미디르 파드리노 국방장관과 마이켈 모레노 대법원장, 이반 라파엘 에르난데스 달라 대통령 경호사령관 등 정권 유지의 키를 쥔 마두로의 최측근들과 함께 과도 정부 수립·운영을 논의하는 비밀 회담을 가져왔다. 과이도가 임시정부 수립을 선언하고 베네수엘라 국민의 참상이 세계에 알려지며 미국·유럽 등이 지지선언을 낸 지 한 달쯤 된 시점이었다. 과이도 측은 "마두로를 배신하면 정권 교체 후에도 당신들의 보직을 보장해줄 수 있으며, 원한다면 외국 망명도 허용하겠다"고 제안했고, 미국도 과이도를 통해 "쿠데타에 가담하면 당신들의 해외 자산에 대한 미국의 동결 조치도 풀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세 사람 모두 제안을 수용했다고 미국의 한 관리가 WSJ에 말했다. 야권은 5월 1일 이후 쿠데타 날짜를 잡기로 하고 타이밍을 엿보고 있었다.

조선일보

1일(현지 시각)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거리에서 방독면을 쓰고 수제 박격포 등을 손에 든 사람들이 반(反)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날 임시 대통령을 자처하는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축출을 위한 쿠데타를 선언한 이후 반정부 시위대 수천명은 이틀째 시위를 이어 갔다. 과이도 의장은 이날 “앞으로 우리와 뜻을 함께하도록 계속 군인들을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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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난달 29일 계획이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마두로가 쿠데타 계획을 눈치 챈 것 같다"는 전언이 들어온 것이다. 과이도 의장은 이를 미국에 급히 알리고, 거사 시점을 앞당기기로 했다. 이에 당초의 계획을 앞당겨 30일 새벽 쿠데타를 선언하는 동영상을 급하게 공개했다.

하지만 쿠데타가 설익은 상태에서 급히 시작되면서, 쿠데타에 가담하기로 약속했던 핵심 인물 세 명이 다시 마두로 쪽으로 돌아섰다. 특히 군부를 잡고 있는 파드리노 국방장관이 쿠데타에 가담하지 않은 건 야권으로서 뼈아픈 일이었다. 미처 준비되지 않은 채 거리로 나선 반정부 시위대는 파드리노 장관의 지시를 받은 군경의 유혈진압에 가로막혔다. 파드리노는 이날 밤 국영TV에 출연해 "야권의 쿠데타 시도가 미수로 끝났다"며 "내가 외국으로 망명한다거나 미국과 음모를 꾸몄다는 말은 다 가짜 뉴스"라고 말했다.

야권은 물론 트럼프 행정부도 혼선에 빠졌다. 이날 밤 미 백악관 NSC에서는 향후 대응방안을 논의했지만 별다른 해법은 나오지 않았다. WP는 "베네수엘라 사태 해법을 두고 적극적인 군사개입을 주장하는 볼턴 보좌관과 신중론을 내세우는 미 국방부·합참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상"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겉으로 마두로를 맹비난했지만, 내심으로는 미국의 군사개입이 막대한 전비 지출을 가져올 것을 우려했다"고 했다.

일부 전문가는 "야권의 쿠데타 실패가 곧 마두로의 승리를 뜻하진 않는다"고 분석한다. 마두로 정권을 지탱해온 군부 인사들과 정권의 핵심 인사들이 언제든 마두로를 배신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벤저민 게던 전 미 NSC 고문은 "측근들의 배신 가능성이 드러난 이상 마두로가 앞으로 밤마다 편히 잠들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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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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