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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공론장 부활에서 소수자 혐오까지…청와대 국민청원의 명과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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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친절한기자들] 자유한국당 해산 청원 계기로 돌아본 청와대 국민청원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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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해산 요구’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사상 최대 참여자 수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청와대 국민청원 제도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청와대에 특정 정당을 해산해 달라는 요구가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삼권분립 원칙’ 훼손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2일 오후 2시 현재 ‘자유한국당 해산 요구’ 청원은 168만명 이상이 동의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논란의 청원이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 까닭을 두고 국민들이 청와대에 실질적인 정당 해산을 요구한다기보다 ‘분노한 민심’을 보여주는 창구로 국민청원을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국회의원 선거가 1년이나 남아 ‘동물국회’를 되살린 자유한국당을 심판할 방법이 요원한 상황에서 차선의 소통 창구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토론은 사라지고 ‘숫자’만 남아버린 국민청원 게시판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자유한국당 해산 요구 청원을 계기로 <더(THE)친절한기자들>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명과 암을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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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잊혀진 권리 ‘청원권’의 부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2017년 8월19일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국정 현안 관련’ 내용이면 나이와 관계없이 누구나 청원을 올릴 수 있다. 게시 뒤 30일 동안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으면 정부와 청와대 관계자가 답한다.

반응은 뜨거웠다. 개설 한 달 만에 1만4천건의 청원이 올라왔고, 500일엔 청원 글이 47만여건에 달했다. 하루 1000건꼴인 셈이다. 2일 현재까지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 정부의 답변을 받은 청원은 모두 92건. ‘자유한국당 해산 요구’ 청원 등 6건이 기준을 충족해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게시판 개설 시점부터 지난해 4월13일까지 올라온 국민청원 16만건을 전수 분석한 자료를 보면, 정치개혁(18%), 인권/성 평등(10%), 안전/환경(7.7%), 육아/교육(7.4%) 순으로 많았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실제 법·제도의 개선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한 ‘윤창호법’, 불법 촬영물 유포 처벌을 강화한 ‘성폭력처벌특례법’을 비롯해 8년 만의 임신중절 실태조사 재개, 디지털 성범죄 수사 본격화 등이 그 사례다.

이런 의미에서 전문가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잊혀진 권리인 ‘청원권’을 부활시켰다고 평가했다. 이재근 참여연대 권력감시국장은 “10년 전만 해도 조례 개정을 하려면 밖에 나가서 사람들 이름, 주소 등을 받아야 했다. 국회나 정부는 청원권을 보장한다고 말만 했지 실제로는 보장하는 게 거의 없었다”며 “이제는 에스엔에스(SNS) 로그인만 하면 누구든 국민청원에 참여할 수 있다. 국민들이 자기 의사를 보다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긴 셈”이라고 설명했다. 김성배 국민대 교수(법학과) 역시 “지금까지 국가기관들은 청원에 대해 반드시 응답할 필요도, 원하는 대로 해줄 필요도 없었다. 이견을 검토했다는 간단한 통지만 이뤄졌기 때문에 아무도 청원을 하지 않았고 청원권이 유명무실해졌던 것”이라며 “이 잊혀진 권리가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부활했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동의를 받으면, 여론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청와대 게시판이 ‘공론장’이 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재근 국장은 “시민들이 의견을 표출할 때 예전에는 댓글을 달거나 다음 아고라에 글을 썼다”며 “하지만 지금은 국민청원에 집중되고 있고 사람들의 의견이 숫자로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말했다. 김성배 교수는 “국민청원에 글이 올라오면 국민이 한 번 더 관심을 갖게 된다. 버닝썬 사건도 국민청원을 통해 알려지면서 수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측면이 있다”며 “나쁘게 보는 쪽에서는 여론몰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일종의 여론 형성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과)는 “대통령이 직접 국민하고 소통하는 창구이고, 국민들이 의견을 내면 사안에 따라 폭발적인 관심을 받다 보니 행정민원이나 정책 민원을 넘어 국민의 목소리를 담는 장이 됐다”면서도 “다만 그 여론이 청와대 게시판에 모아지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선 의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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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혐오 표현과 엄벌주의 강화 통로 구실도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억지 주장이나 장난 글도 다수 눈에 띈다. 지난해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 멕시코전에서 장현수 선수가 수비 실수를 저지르자 ‘장현수를 배구선수로 바꿔달라’는 내용의 청원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청와대 국민청원이 ‘민주주의의 확산’이라는 애초 취지와 달리, 난민과 성소수자 등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표현하는 수단으로도 사용된다는 점은 문제로 꼽힌다. 실제 지난해 내전을 피해 제주도로 온 500여명의 예멘인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제주도 불법 난민신청 문제에 따른 난민법, 무사증 입국, 난민신청 허가 폐지’를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왔고 71만명의 동의를 받은 바 있다. 또 성소수자의 인권과 성적 다양성을 알리는 행사인 ‘퀴어축제’의 광장 개최를 반대하는 청원이 올라와 22만명의 동의를 받기도 했다.

사회적 문제에 대한 풀이를 엄벌주의 강화를 통해 해소하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실제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 정부의 답변을 받은 청원 92건 가운데 소년법 폐지나 보다 강력한 처벌 등을 요구하는 청원이 26건(28.3%)이나 된다. 4건 중에 1건 꼴이다.

20만명 이상 동의라는 ‘숫자’에만 방점이 찍히다 보니 그 과정에서 소수자가 소외되고 엄벌주의 강화같은 목소리에 시선이 집중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현미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과)는 “청와대 청원이 숫자만 의미 있는 것으로 답하는 방식으로 나오고 있다. 왜 목소리를 내야 하고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하는 지 내부 토론이 중요한데 그런 과정이 없다”며 “현재 국민청원에는 이런 토론 공간이 없고 동의나 비동의로만 의사를 표시할 수밖에 없어 아쉽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김 교수는 “그 결과 국민청원이 대의민주주의 실패나 무능을 감시하고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선도적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는 사실상 무시되거나 사회적 문제로 만들어지지 않는 형태로 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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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명이 최대 4번 동의할 수 있는 구조는?


일각에선 1명이 최대 4차례까지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의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개인정보를 필요로 하는 실명 인증을 하지 않고 소셜로그인을 통해 청원에 동의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소셜로그인으로 활용할 수 있는 포털과 에스엔에스(SNS) 계정은 네이버와 카카오, 페이스북, 트위터 등 4개다. 1계정 당 1번의 동의가 가능하기 때문에, 1명이 4가지 계정을 모두 활용하면 최대 4번의 동의 참여가 가능하다.

이 때문에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해서 168만명의 ‘자유한국당 해산 청구’ 참여를 숫자 그대로 봐선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정혜승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은 이에 대해 “이용자들이 많이 쓰는 소셜 로그인을 복수로 제공하는 것은 대다수 인터넷 서비스의 기본”이라며 “(청와대 국민청원이 모델로 삼은) 백악관 ‘위더피플’의 경우 이메일 인증을 통해 청원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인데, 위더피플도 여러 개의 이메일 계정으로 여러 번 참여가 가능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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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와대 권한 밖 청원 많아…국회 본연의 기능 찾아야


삼권분립에 따라 대통령이나 행정부의 권한 밖에 있는 입법권이나 사법권 등을 행사해달라고 요구하는 청원도 많다. 청와대의 답변에 한계가 따르는 배경이다. 청와대는 이른바 ‘곰탕집 성추행 사건’ 피고인의 아내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올린 청원 글에 대한 답변에서 “2심 재판이 진행되는 사건에 대해 청와대가 언급하는 것은 삼권분립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양해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국회의원의 임금을 최저임금으로 책정해 달라는 청원에 대해서는 “국회의원 급여와 수당은 정부가 관여할 수 없는 입법부의 권한”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전문가들은 결국 국회가 본연의 기능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회가 갈등조정 기능을 상실한 탓에 국민들이 청와대 청원으로 몰려오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재근 국장은 “국민의 의견을 받아 입법하는 기관은 국회다. 입법 등과 관련해 국회가 제도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청원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준석 동국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현재는 모든 사안이 청와대로 몰리기 때문에 청와대가 ‘답할 수 없다’고 하는 사안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라며 “국회 청원이 용이해져야 하고 국회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청와대 국민청원이 일부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제도 보완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11월 펴낸 현안분석 보고서 <미국의 ‘위더피플’ 사례를 통해 살펴본 청와대 국민청원의 개선방안>에서 미국의 국민청원 제도인 ‘위더피플’처럼 삼권분립 등에 반하는 요구를 담은 청원은 답변을 거부할 수 있거나, 청원 글을 공개하기 전 이메일로 150명의 참여자를 모집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이유진 이주빈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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