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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 (금)

4·27 판문점선언 1주년… '말말말'로 본 김정은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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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이 멀다고 하면 안 되겠구나" 냉면 나누며 화기애애 / 백두산 천지 올라 "이 물에 새 역사의 모습을 다 담그자" / 하노이 노딜 후 韓에 "민족 이익 옹호하는 당사자 돼야" / 푸틴과 만나선 "미국 태도에 달려… 모든 상황 대비할 것"

세계일보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지난해 4월 2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나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이후 꼭 1년이 지났다. 1945년 38선 획정, 1948년 분단, 그리고 1950∼1953년 동족상잔의 비극 후 거의 70년 만인 2018년 4월27일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손을 맞잡은 모습에 우리 국민은 물론 세계인이 열광했다.

그 뒤 1년간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판문점, 그리고 평양에서 2차례 더 만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김 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도 2차례 정상회담을 갖고 비핵화 방법론을 논의했다.

급진전하는 듯했던 남북관계 그리고 북·미관계는 올해 2월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빈손)로 끝나며 반전을 겪는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향해 “당신은 아직 협상할 준비가 안 돼있다”는 말을 남긴 채 회담장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북한은 4·27 판문점 정상회담 때와는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다. 한국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듯한 자세를 고수하며 미국을 향해선 날선 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다.

4·27 판문점 정상회담 1주년을 맞아 26일 그간 북한의 대응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김 위원장의 ‘말말말’ 형식을 빌려 키워드로 소개한다.

◆평양냉면

“어렵사리 평양에서 평양냉면을 가져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께서 편안한 마음으로 평양냉면을 멀리서 온… 아, 멀다고 하면 안 되겠구나…” (2018년 4월27일 판문점 정상회담 후 열린 만찬 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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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이 평양에서 가져 온 평양냉면을 문 대통령 등 남측 대표단에 대접하며 한 말이다. ‘아, 멀다고 하면 안 되겠구나’라는 발언에 온 국민이 폭소를 터뜨렸고 일약 유행어가 되며 ‘2018년 올해의 말’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화기애애했던 남북관계를 상징하는 키워드가 바로 평양냉면이다.

◆‘쉬운 길 아니었다’

“여기까지 오는 길이 그리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우리한테는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또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는데, 우리는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모두발언 도중)

김 위원장이 지난해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당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그리고 세계 언론을 향해 던진 말이다. ‘발목을 잡는 과거’, ‘그릇된 편견과 관행’ 등 표현은 그간 북한 지도자들 입에서 좀처럼 들을 수 없었던 매우 솔직한 발언이자 북한의 지난 과오를 인정하는 뉘앙스여서 커다란 주목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1차 북·미 정상회담은 북한 입장에선 매우 유리한 합의안을 도출하며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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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지

“백두산 천지에 새 역사의 모습을 담가서, 백두산 천지의 물이 마르지 않도록 이 천지 물에 다 담가서 앞으로 북남 간의 새로운 역사를 또 써 나가야겠습니다.“ (2018년 9월20일 문 대통령과 백두산 천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남북 간 평화 무드는 지난해 9월 평양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며 절정에 달했다. 문 대통령이 평양시민들에게 연설을 한 것이나 문 대통령, 영부인 김정숙 여사 등 남측 일행이 김 위원장, 리설주 여사 등 북측 일행과 함께 백두산 천지에 오른 것은 모두 한국인들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남북 정상이 민족의 성지로 통하는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손을 맞잡았을 때 통일이 눈앞에 다가온 듯한 환상을 느낀 이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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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한다면 자주권과 국익을 지키고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2019년 1월1일 신년사에서)

싱가포르 정상회담 때와 비교해 미국의 태도가 변했다. ‘북한에 너무 많은 것을 양보했다’는 국내 비판 여론이 거세진데다 러시아 스캔들 등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궁지에 몰린 탓이다. 기대와 달리 북·미 관계에 이렇다할 진척이 없자 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새로운 길’이란 키워드를 꺼내들었다. 그간 중단했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재개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풀이돼 한반도는 다시 격랑 속으로 빠져들었다.

◆‘시간이 없다’

“(비핵화 준비가 됐나) 준비되지 않았다면 여기 오지도 않았습니다. (비핵화를 오늘 발표하나) 우리가 충분히 이야기할 시간을 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1분이라도 귀중하니까.” (2019년 2월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직전 기자들 질문에 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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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북·미 정상회담에 임하는 김 위원장은 다급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담판에서 어떻게든 대북제재 완화를 이끌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영변 핵시설 폐기를 조건으로 내걸 요량이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대화할 시간이 ‘1분이라도 귀중하다’는 발언에서 김 위원장 심경을 읽을 수 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느긋했다. 북측 제안이 성에 차지 않자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존 볼턴 안보보좌관 등 핵심 참모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회담을 깼다. 장장 2박3일간 광활한 중국 대륙을 기차로 가로질러 베트남 하노이까지 달려간 김 위원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오지랖과 당사자

“(남측이) 외세의존 정책에 종지부를 찍고 모든 것을 북남관계 개선에 복종시켜야 합니다.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합니다.” (2019년 4월12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하노이 정상회담을 ‘노딜’(빈손)로 만든 미국을 비난하며 김 위원장은 한국에도 책임을 돌렸다. ‘외세의존에 종지부를 찍으라’는 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라는 요구다. 또 ‘오지랖 넓게 행동하지 마라’는 건 미국 눈치를 볼 것 없이 북한 편을 들라, 곧 남북이 ‘원팀’이 되자는 제안이다. 이는 남남갈등 유발과 한·미 동맹 와해를 노린 고도의 전략적 발언으로 풀이된다. ‘오지랖’과 같은 비(非)외교적 수사까지 동원한 점에서 북한이 국제사회의 오랜 대북제재로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기승전, 미국’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은 전적으로 미국의 차후 태도에 따라 좌우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상황에 다 대비할 것입니다.” (2019년 4월25일 북·러 정상회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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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북한의 관심은 미국에 있음이, 이른바 ‘기승전 미국’임이 판명났다. 김 위원장은 지난 25일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미국의 태도 변화가 시급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모든 상황에 대비할 것’이라고도 했다. 미국이 지금과 같은 대북제제 입장을 고수한다면 그동안 진행된 비핵화 및 평화협상의 큰 틀을 깰 수도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이맘때의 봄은 따뜻하기만 했는데 1년이 지난 지금은 ‘과연 여름이 오기는 할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꽃샘추위가 매서운 봄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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