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9 (일)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ESC] 인간 실격? 표지 합격!···책이 온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커버스토리/종이책

책 표지 독자와 또 다른 만남

‘변신’, ‘인간실격’ 표지 여러 버전 인기

최근 표지 제작 ‘촉각가공' 등장해

지난 23일은 ‘세계 책의 날’

종이책 감각···색다른 즐거움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내용에 걸맞은 표지는 내 말이 세상을 걸어가는 동안, 독자들과 만나러 가는 동안 내 말을 감싸주는 우아하고 따뜻하며 예쁜 외투 같다.’ 줌파 라히리는 <책이 입은 옷>에서 표지에 대해 말한다. 같은 책에서 작가는 ‘날 잘 알고 내 모든 작품을 깊이 이해하며 소중히 여기는 누군가가 한 번만이라도 표지를 그려주면 기쁘겠다’고 했다. 독자 입장에서도 행복한 일이다. 정세랑의 <옥상에서 만나요>를 읽다가 그런 순간을 발견했다. ‘(표지를 그린) 수신지 작가님께는 작가님의 해석이 소설 가운데를, 소설을 썼던 때의 외로움 가운데를 관통하고 있어 울어버렸다고 고백해야 할 것 같다.’ 작가 후기에서 정 작가가 쓴 글이다. 좋아하는 표지에서 두 작가의 교감을 엿보는 기쁨이란!

프란츠 카프카는 <변신> 표지에 독자의 상상을 제한하는 구체적인 이미지를 넣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표지에는 바퀴벌레, 지네, 거미 등 다양한 곤충 이미지가 등장한다. 노르웨이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를 표지로 해 당혹감과 공포를 표현한 <변신>도 있다.

<변신>처럼 많은 이들이 읽는 고전의 표지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따라가 보는 것도 숨 가쁜 현대사회에서 재미있는 ‘느린 여행’이다. 완독하지 않은 사람들도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라는 문장은 익숙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표지를 모아봤다.

한겨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인간실격>은 에곤 실레 하면 역으로 이 책을 떠올릴 정도로 대표적인 표지다. 민음사는 지난해 여름, 다자이 오사무의 사진을 서울 지하철 2호선 초록색 라인으로 형상화한 표지로 꾸민 한정판 ‘메트로 북’ 시리즈를 내놓기도 했다. 소와다리 출판사는 1948년 일본 치쿠마쇼보 출판사에서 발간한 <인간실격> 초판 디자인을 복원했다. 새로운 독자층을 기다리는 파격적인 표지도 있다. 위즈덤하우스의 ‘비주얼클래식 시리즈’는 홍승희 작가가 그린 탐미적인 일러스트가 표지를 장식한다. 표지의 미소년은 <인간실격> 서문에서 묘사하는 유년기, 청년기, 노년기의 사진 세 장 중에 두 번째인 교복차림의 미청년을 떠올리게 한다. 공포 만화의 대가 이토 준지가 재해석한 만화 판 <인간 실격>과 미모를 비교해보자.

한겨레

한겨레

종이책 표지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각들도 있다. 반짝반짝, 보들보들, 올록볼록. 표지의 완성은 제작 단계에서 ‘후가공’ 공정이 맡는다. 지난 18일, 파주의 후가공 업체 ‘제이오’ 공장에서 한겨레출판전문학교 강사이자 김영사 제작관리본부 차장인 박상현씨를 만났다. 책 몇 권을 싸 들고 가서 어떤 후가공을 거쳤는지 물었다. <작은 겁쟁이 겁쟁이 새로운 파티>의 표지는 보송보송 보들보들하다. 최근 많이 쓰이는 후가공으로 ‘촉감가공’이라 부른다. 콧기름이 묻은 손으로 만지면 대번에 지문이 찍히지만, 벨벳 같은 부드러움이 손에 착 감긴다.

한겨레

한겨레

가장 일반적인 후가공 조합은 무광 라미네이팅가공 표지 위에 부분유브이(UV·자외선 건조 잉크)를 올리는 방식이다. <아무튼, 스릴러>는 부분 유브이가공으로 영문 제목의 ‘i’에서 핀 조명의 노란색 불빛을 표현했다. 표지 구상 단계부터 후가공 효과를 염두에 둔 디자인이다. 만화책 <리버스 에지>에서 반짝이는 물고기는 은색 홀로그램 박 가공(금박, 은박 등 색 홀로그램 박을 찍는 것)을 했다. 제작공정 대부분이 최신설비로 자동화되었지만, 박 가공만큼은 수십 년 된 레터 프레스 장비를 쓴다. 박을 찍는 면도 사람 손으로 정확하게 맞춰야 한다.

지난 23일은 ‘세계 책의 날’이었다. 이번 ESC는 전자책이 미치지 못하는 종이책의 감각을 따라다녔다. 오목한 글자들의 촉감을 느낄 수 있는 그리운 활판인쇄 공방을 찾아가고, 수작업으로 책을 만드는 예술제본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작은 동네서점에서 느긋하게 책을 고르며 책을 만난 장소의 기억을 더 했다.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종이를 여러 장 묶어 맨 물건.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기록하여 꿰어 맨 것. 문자나 그림을 체계 있게 담은 물리적 형체. 고대의 기록물은 파피루스나 양피지 두루마리 형태였다. 이후 양피지 가운데를 접고 여러 겹으로 겹쳐 표지를 씌운 코덱스(codex) 형태가 우리가 아는 책과 가깝다. 인쇄술과 제지술의 보급으로 지식이 대중화하고, 책의 개인 소유가 가능하게 되면서 수요가 생기고 책은 상품으로 거듭났다. 글쓴이가 죽어도 글은 책 안에 담겨 긴 세월을 건넌다. 정보를 기록하고 휴대하고 운반하는 보편적인 저장 물건으로 가장 오래된 형태. 책은 신비한 종이 묶음이다.



한겨레

[▶네이버 메인에서 한겨레 받아보기]
[▶한겨레 정기구독] [▶영상 그 이상 ‘영상+’]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